체르노빌은 우크라이나가 소비에트 연방 구성국이였을때, 우크라이나 북쪽에 위치한 4호기 발전소였다. 그리고 이 발전소는 크고작은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는 점이다.
8년 간 운영되어왔던 이 발전소는 기술적인 문제로 비상 정지를 71번이나 할 정도로 매우 불안정 하였지만, 오히려 소련 당국은 이 발전소를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발전소로 홍보하기도 하였다,
참사의 시작은 어떤 작업자로 인해 시작 되었는데, 사고당일 새벽에 체르노빌 안정성 검사를 위해 원자로 출력량을 720mw까지 내릴려고 하였지만, 작업자의 조작미숙으로 출력량이 거의 정지상태까지 내려가게 되었다. (심지어 안정장치도 끄고 작업했다)
당황한 작업자는 출력량을 원래 목표였던 720mw로 올리기 위해 제어봉을 30개중에 24개를 뽑아버렸는데도, 원자로는 출력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결국 1986년 4월 29일 새벽 1시, 불안정한 원자로에 제어봉을 거의 다 뽑아버렸는데도 돌아오지 않던 출력량은 갑자기 원래 출력량의 100배인 30만mw로 치솟기 시작했고, 당황한 작업자는 제어봉을 다시 삽입하기 시작한다.
이후 땅이 흔들리는 폭발과 함께 1200톤 원자로 덮게가 날아갔고, 히로시마 원폭의 400배에 가까운 방사능이 쏟아져 나왔다.
이후 소련 정부의 대책이 더 황당했는데, 처음에 소련 정부는 이 사실을 숨겼다가 스웨덴쪽에서 평소 20배가 넘는 방사능이 검출되자 그제서야 체르노빌의 폭발 사실을 알렸다.
체르노빌 주민들은 원자로 폭발 3일 뒤에서야 피난을 갔고, 북쪽으로 부는 바람때문에 방사능 피해는 벨라루스로 전역으로 퍼지게 되었다. 이 일로 벨라루스는 독립 시위가 나기도 하였다.
결국 최고 사고등급 7등을 판정을 받은 체르노빌은 군인과 소방관을 총 동원해서 원자로 봉쇄작업에 투입했고 이중 대다수가 피폭되어 사망했다. 게다가 2호기도 폭발할뻔 했는데 겨우 비상정지를 시켜서 폭발을 면했다.
소련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는 에너지 부족을 이유로 4호기를 제외한 나머지 3개의 발전소를 가동했는데 이중 심하게 손상된 2호기에 화재가 나며 나머지 원자로를 모두 가동 중단했다.
참사 30년 이후 사고지점에서 30km 떨어진 곳에서도 방사능때문에 숲이 붉게 변하기도 하였고, 그때 살던 주민들중 여성은 수염이 굵고 검해지거나 아이들은 면역체계가 붕괴하고 기형아를 낳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