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시절 브론즈 5로 시작해, 20 살 때 챌린저를 찍으면서 있었던 일을 두서 없이 부족하게 글을 써봤습니다.
간단 요약: 1. 초등학교 때 롤을 시작해서 브론즈 5로 시작 2. 배틀그라운드 때문에 롤을 접었다가 현재 프로게이머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과 중학교 2학년 때 전학와서 롤을 다시 시작. 3. 중3 다이아 1을 찍고, 국제학교 다니면서 롤 마스터 찍고 (250점) 롤을 다시 접음 4. 영국 대학교 와서 롤을 다시 시작해 11월 달 그랜드마스터 찍고, 2024년 1월 챌린저를 찍음 5. 나는 쓰레기지만 그래도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고, 이 목표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라는 인간,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설명할 때 게임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다. 어머니가 말해준 일화 중 하나는 유치원을 다니는 생도 시절, 닌텐도를 하다가 새벽까지 게임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유치원에서 일어나지 못했다고 부모님께 전화가 갔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는 닌텐도, 위, 휴대폰 게임을 즐겨했지만 부모님께서 게임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게임 시간 제한이 있었다. (시간 제한이 있었지만 게임을 더 하고 싶어서 거짓말을 많이 했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리그오브레전드 일반 게임에 입문하게 되었다. (징크스라는 캐릭터를 했던 기억이 있다.) 입문했던 기억이 긍정적이었기에, 리그오브레전드에 빠지게 되었다. (리그오브레전드라는 게임을 편의를 위해 롤이라고 칭하겠다.) 초등학교에서 롤에서 있는 티어(랭크)가 높을수록 우상의 대상이었다. 남학생들 대부분이 롤이라는 게임을 했고 내가 전학을 갔을 때 물어 봤던 게 롤을 하냐는 질문이었다. 그 때 닉네임을 물어봤었는데 게임 닉네임이 동욱낭인 게 부끄러워서 닉네임은 알려준 것은 시간이 좀 지나서였다.
롤이라는 게임이 매력적이게 다가온 이유는 운 및 확률적인 부분이 존재하지만 실력이 승패를 좌지우지 하는 공평한 게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슈퍼 플레이를 했을 때 오는 재미도 컸다.) . 중학교 때 까지 게임은 하나의 수단이어야 했지만, 즐거움을 위한 삶을 윤택하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도구였지만, 나는 게임하기 위해 살았다라고 해도 무방하다. (스스로를 게임 중독자라고 정의한다.) 중학교 때 시험에서 백점을 맞았을 때 처음으로 들었던 생각은 일주일은 게임해도 부모님이 뭐라하시지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공부는 나에게 있어서 흥미를 주는 요소가 아니었다.
배틀그라운드 게임을 하느라 롤을 접었었지만, 중학교 2학년 현재 중국에서 프로게이머를 하고 있는 친구가 전학을 왔다. 그 친구는 그 시절 다이아 2였었고, 브론즈였던 나는 과거 롤을 했던 나에게 우상이었다. 그렇게 그 친구의 전학을 통해 나는 롤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학교 끝나고 그 친구와 함께 pc방에 가는게 일상이었다. 부모님이 집에 계시면 게임을 하지 못하거나 게임 할 수 있는 시간에 제약이 있어서 주로 PC방에 가서 게임을 했다. PC방에 갔다가 나오는 길 떡볶이를 먹으면서 서로 장난 식으로 프로게임머가 되면 쓰는 닉네임에 대해서 이야기 했던 기억이 있다. 앞에 T1을 붙이고 닉네임을 만들며 장난식으로 이야기 했었는데 그 친구는 2년 후 T1 2군에 입단했다. 그 친구는 나에게 롤 스승이었고 나는 그 시즌 브론즈에서 시작해 다이아 2를 가게 되었다.
나도 프로를 생각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친구처럼 마스터를 찍고 진지하게 고민하려고 했지만 중 3 시절 다이아 1에 마무리하고 운 좋게 국제학교에서 고등학생 생활을 보냈다. 그 학교는 나에게는 구원이라고 표현한다. 게임 밖에 모르던 나에게 세상을 알려줬고, 공부의 재미를 깨닫게 해 주었으며 신앙을 쌓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초자아(도덕률, 양심)를 형성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 학교가 좋았던 이유가 기숙사학교 였기 때문에 주말과 방학 때 게임을 해도 부모님이 터치하지 않아서 좋았다. . 중학교 시절 잠을 잘 못자서 좋지 않았던 몸 상태는 국제학교에 들어가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몸 상태도 많이 좋아졌고 사람과의 교류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공부와 학교 생활이 나에게 있어서 더 중요해졌고 고3 때 게임은 거의 접고 공부에 집중했다.
나에게 국제학교라는 환경은 열등감을 느끼기 좋은 환경이었다. 열등감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지만 아돌프 아들러라는 심리학을 공부한 이후 나에게 있어서 열등감은 우월성을 추구하게끔 하는 자극제였다. 어렸을 때부터 승부욕이 너무 강해서, 지는 것을 싫어했다. 학교 선배와의 체스를 했을 때 졌었는데 코피가 났었다. 아마 교감 신경계과 과하게 활성화 된 것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최선을 다했지만 실력적으로 패했을 때 느껴지는 그 감정은 아프면서도 나를 더 나아가게끔 하는 자극제였다.- 이런 개인적인 성향이 롤 티어를 올리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 개인적으로 평가하기에 공부를 열심히 했고 영국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영국 대학교에서 다시 게임에 빠지게 되었다. 하나의 도피이며 도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국 대학에 왔을 때 마스터였었던 나는 EUW서버에서 11월달 700점으로 그랜드마스터를 찍을 수 있었고 2024년 1월 31일 챌린저를 찍었다.
그랜드마스터를 찍었을 때 성취감을 느꼈고, 그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 다시 방학 동안 챌린저를 가기 위해서 게임을 공부하다시피 했다. 룬 특성을 외우고 분석하고 공식을 만들며 프로게이머 방송을 주로 너구리, 칸, 제우스 개인 방송을 보면서 더 나은 경지를 위해 노력했다. 롤이라는 게임에서 주로 우디르, 크산테, 제이스, 이렐리아, 아칼리, 사일러스, 요네를 하는데 각 챔피언 마다 개인적으로 그 챔프에 유명한 유투버 영상과 솔랭을 통해서 숙련도를 늘렸다. 우디르- 오브크 크산테- 크산테클레드(김명치) 제이스 – 김망치 이렐리아,아칼리 – 이렐킹 사일러스 – 초비 요네- dzukill, pzzang, 가로우, 릉빵이 주로 시청한 프로 개인방송 – 너구리, 칸, 제우스 브론즈 5에서 실버, 골드, 플레, 에메랄드, 다이아, 마스터, 그랜드마스터, 챌린저까지 오는 여정을 자세히 서술하면 게임에 대한 내용이 많아져 지루해질 것 같아서 생략하고자 한다. (구도에 대한 데이터를 쌓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마에서 챌린저를 찍을 때 들었던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챌린저를 찍으면 더 이상 나에게 이 게임은 의미가 없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목표가 없어질 나는 챌린저를 찍는게 두려웠다. 그래서 시대가 돕고 운이 좋아서 찍은 챌린저는 나에게 있어서 한 지점이다. 현생을 살기 시작해야 하는 지점, 게임 밖으로 살아가야 하는 지점이고 난 그 문을 열려고 한다. 재능보단 노력으로 챌린저를 찍은 나의 인생은 이제 시작하고자 한다. 살고 싶기 때문이다.
끝까지 읽어주신 분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게임에 대한 질문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