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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CK 플레이오프 리뷰] 다시 돌아온 T1과 젠지, 분위기는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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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을 끝으로 LCK 서머 스플릿의 모든 정규 일정이 끝났다. 오로지 결승만이 남은 가운데, 뜨거웠던 혈전의 순간을 통해 봄날의 리턴 매치가 성사되기까지의 치열했던 순간을 돌아보고, 봄과 조금 달라진 여름 분위기를 알아볼 수 있는 관전 포인트를 살펴보자. /장태영(Beliar) 필자, 편집=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 1경기 : 젠지(1위) vs. 리브 샌드박스(3위)

  "눈이 즐겁고, 온몸이 짜릿했던 매치"라는 한 줄 평이 적절할 만큼 싸움 하나는 진짜배기인 두 팀의 맞대결은 순수한 체급과 세밀한 조종에서 갈렸다.

1. 변수를 끌어내지 못한 상수 ‘체급’

젠지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를 뚫고 올라온 리브 샌드박스의 경기를 마치 현미경처럼 분석한 듯한 밴픽을 들고 나왔다. 리브 샌드박스는 정규시즌부터 탑 탱킹과 ‘프린스’ 이채환의 딜링을 중심으로 시원한 한타를 여는 것이 장기인 팀이었다.

프린스의 전력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젠지의 전략적 방향성은 자연히 플레이오프 1라운드부터 DRX에게 집요하게 공략당했던 ‘도브’ 김재연의 탑 라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출처 : LCK)  

아트록스와 트런들로 구성된 안티 탱커 조합과 소위 강제 이니시-한타가 가능한 오공-아무무 조합을 받아치기 위한 아지르의 픽은 리브 샌드박스의 정석적 조합 시너지를 흔들게 만드는 묘수였다.

한타와 탱킹이 모두 마음처럼 쉽지 않은 게임에서 ‘프린스’ 이채환의 활약은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닌, 당연한 체급 간의 경쟁구도인 ‘상수’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밴픽 구도로 변수를 창출한 젠지는 손쉽게 리브 샌드박스를 흔들 수 있었다.

어쩌면 리브 샌드박스가 생각한 유일한 변수는 도브였을 수도 있다. 도브는 시즌 전체 지표만 놓고 봐도 분당 평균 CS 수급률, 분당 골드 수급률 모두 최하위를 달리지만, 탑 라이너 중 가장 좋은 평균 어시스트(경기당 6.6), 리그 2위의 킬 관여율(64.7%)을 보였다. 그만큼 팀 파이트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선수였다.

도브가 잘 버텨주면서 젠지와의 대치전 양상을 그려낼 수 있었다면, 변수 창출력을 통해 프린스라는 상수의 영향력을 비약적으로 높여줄 수 있는 키가 됐을지도 모른다. 결국, 젠지는 3세트를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변수로 변수를 차단했고 무난히 결승에 올랐다.

2. 문제는 조종사였을까? ‘제리’와 ‘아트록스’

(출처 : LCK)

1세트에서 4세트까지 모두 제리가 등장했다. 플레이오프 포함 8연패에, 정규 시즌에서는 프린스 ‘이채환’ 전까지 4명의 조종수(쌈디, 테디, 헤나, 구마유시)를 만났음에도 7연패를 이어갈 만큼 라인전에 취약하다는 단점을 여실히 드러냈던 챔피언이었다. 하지만 ‘룰러’ 박재혁이 다루면 다르다는 것을 젠지는 여실히 보여줬다.

제리는 정규 시즌에서 7연패를 한 전적이 있고 (좌) 플레이오프를 포함한 기간에는 8연패라는 성적을 보였다 (우)


물론, 리브 샌드박스가 들고 나온 '닐라'라는 파훼법은 3세트 승리를 통해 절반의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1-2세트의 주도권을 잡고 뒤흔든 건 ‘룰러’라는 특급 조종사의 활약 덕분이었다.

한편 ‘도란’ 최현준의 아트록스도 눈여겨볼 만한 선택이었다. LPL, LCK, LEC 등 메이저리그 내에서 아트록스의 외면이 계속되며, 서머 전체에서 8차례 밖에 등장하지 않았던 아트록스는 전 구간에서 유지력 감소라는 너프를 받아 픽에 의문부호가 붙을만 했다. 

지만 도란은 과감히 선택했고, 실력으로 증명해냈다. 오로지 도란에게만 웃어주던 서머 통계도 한 몫했다. 4연패를 기록하는 와중에, 유일하게 연승을 이어간 아트록스 조종사는 리그에서 오직 ‘도란’ 뿐이었다.

1세트에서 잘 큰 ‘룰러’의 제리가 활약하는 데에 판을 깔아준 것은 다름 아닌 아트록스의 존재감이었다. ‘도란’의 아트록스는 열리지 않는 한타를 기다리며 묵묵히 죽어도 버틴다는 자세로 임한 ‘도브’의 세주아니와 큰 격차를 벌리며 손쓸 수 없게 커버렸다. 4세트 ‘도란’의 아트록스는 8/0/6을 기록했는데, 이번 플레이오프 최단 시간 경기에서 눈에 띄는 과성장을 보인 데에는 오브젝트 싸움에서의 조급함을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 주효했다.

둥지 수성에 힘쓴 도브와 크로코의 위치와 달리 도란은 이후 끊임없이 아랫쪽으로 움직이며 한타 구도를 만들었다 (출처 : LCK)


#2경기 : T1(2위) vs. 담원 기아(4위)

  다전제의 묘미는 뜨거운 싸움을 오래 볼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치밀한 전략이 오가는 구도를 다양하게 볼 수 있다는 매력도 있다. 양 팀 희비를 가른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준비해온 전략’이었다.

1. 티원의 ‘준비해온 전략’ - OP보다는 변수 차단

티원은 5세트 내내 ‘루시안’과 ‘레나타 글라스크’를 고정밴으로 가져갔다.

루시안과 함께 조합 시너지를 내는 나미(루나미 조합)가 숱한 패배로 메리트가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리그 전체의 분위기와 팀 내 사정은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서머 시즌 들어 크게 떨어진 바텀 조합의 파괴력과 어느 정도의 체급이 확보된 팀의 루시안-나미 파괴력은 티원 바텀 조합의 게임 영향력을 크게 줄일 우려가 컸다.

티원은 레나타 글라스크의 변수 창출력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한타 싸움에서 답을 찾으려 하는 티원 입장에서 레나타의 궁극기는 도그 파이트 중심의 조합을 꾸려온 상황에서 모든 구도를 뒤집어버릴 수 있는 변수였다.

그렇다면 “유미에 대한 경계심은 왜 낮았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정답은 없겠지만, 유미를 묶는 것보다, 유미를 통해 메타 픽을 나눠먹는 것에서 발생하는 이득을 더 높게 여겼기 때문이라 추측해볼 수 있다. 1세트와 5세트처럼 노틸러스 밴을 통해 유미를 적극적으로 카운터치기 위한 전략을 담원 기아가 선보였음에도 티원의 선택은 유미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제리-유미나 시비르-유미와 같은 조합이 지닌 고점을 제어하느냐, 고점을 차지하느냐의 치열한 논쟁에서 티원은 ‘고점을 선점한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2. 담원의 ‘준비해온 전략’ - 열대과일 바구니

(출처 : LCK)


무릇 다전제에서 전략/전술을 담당하는 코치와 선수들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소위 ‘날카로운 빌드’를 짜서 상대를 당혹스럽게 할 것인가, 아니면 정석대로 붙어 자웅을 겨루는 ‘단기 접전’에 모든 것을 걸 것인가. 언더독의 위치에 놓였을 때 이러한 딜레마는 전략가의 머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담원의 선택은 결국 당혹스럽게 만들기였다. 그것도 매 세트마다. 마치 담원의 전략은 사과나 배, 참외와 같은 햇과일 바구니보다 두리안, 멜론, 자몽, 파인애플, 키위, 바나나가 잔뜩 담긴 열대 과일 바구니와 같았다.

1세트 야스오-세나, 3세트 모르가나 & 스웨인, 4세트 탑 요네, 마지막 5세트의 탑 아지르, 미드 야스오, 원딜 하이머딩거까지. 마치 “필살기를 준비해오겠다”라고 엄포를 둔 ‘쇼메이커’ 허수의 말이 블러핑이 아니란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담원 기아는 준비한 과일바구니를 폭탄처럼 풀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과일바구니가 너무 풍성한 탓이었을까? 꾹꾹 눌러 담은 과일바구니의 소재가 한낱 나뭇가지라는걸 잊은 듯, 마지막 세트에서 너무 많은 걸 구상한 담원 기아의 의도는 결국 대치전 양상만 잔뜩 그리며 팽팽한 싸움만 이어가다가 허망하게 끝나버렸다.

뭘 바라고, 뭘 원하는지는 누구나 알듯이 승리와 결승 진출로 분명해졌지만, 결과를 얻기 위한 더 치밀한 수싸움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했었어야 했지 않았을까? 격하게 흔들렸던 티원의 뱃머리를 생각하고, 늦게나마 몸이 달아 올랐던 담원 기아의 체급을 생각했다면 다소 아쉬운 전략이 되어 버렸다.

 

#3. Road to Gangneung, 젠지와 티원의 관전포인트

 

젠지 - 매서운 리헨즈의 AP 서포터, 계속될 수 있을까?

(출처 : LCK)


젠지의 하체 라인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핵심 서포터 ‘리헨즈’ 손시우의 유미는 조금 달랐다. 유미 플레이어라면 무릇 신화템으로 챙기는 월석 재생기보다 루덴의 폭풍을 활용하며 유미의 AP 딜을 극한으로 올리고자 했다. 덕분에 유미의 딜 지표 역시 ‘카엘’ 김진홍을 크게 압도하며 바텀 라인에서의 화력 싸움에 크게 기여했다. 

생존력이 낮은 유미에게 AP 딜 보강은 양날의 검과 같다. 팀 파이트 기여도는 화력 싸움에서 큰 이득이 되지만, 좁아지는 시야 반경과 라인전 수적 열세는 큰 맹점으로 돌아온다.

리헨즈의 선택은 자신의 플레이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 과감한 결정이었다.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평가받은 서머 시즌 티원의 바텀 듀오를 상대로도 AP 유미를 비롯한 딜 위주의 템트리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젠지의 결승전 관전 포인트로 리헨즈의 아이템 빌드를 주목해보자.  

티원 - 설명이 필요한 밴픽은 반복될까?

3세트 담원 기아 대 T1의 밴픽 구도 (출처 : LCK)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밴픽 역시 게임 구도의 절반 정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단적으로 무얼 위해 뽑았는지 설명하기 난해한 픽이 연달아 등장했다. 제리-유미가 모조리 풀린 상황에서, 제리-유미를 먼저 고르지 않았던 것은 1세트와 5세트처럼 1페이즈에서 최대한 유미를 선점하려던 모습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라 설명이 어려웠다. 4픽에서 선정된 리산드라 또한 가위바위보 싸움에서 먼저 가위를 보여주고 보자기를 내어주길 기다리는 모습이 되어 바위를 낼 거라는 치밀함이 잘 보이지 않았다.

티원의 우승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해진 결승전에서 우리식 정석을 생각하는 고집은 아집이 될 수도 있다. 설명이 필요 없는 밴픽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진 격전의 순간, 티원의 선택은 그 어떤 관전포인트보다도 주목해봐야 할 부분이다.

3줄 요약 1. 모두가 입모아 말하는 '초'(超) 바텀 메타 2. 재성사된 룰러 vs 구마유시 매치 3. 승자는 누굴까요? (사실, 유미를 더 많이 가져가는 팀이 이기지 않을까요? 원딜보다 강한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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