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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가 시를 잘쓰는줄 안다. 근데 황제다.

유머1 months ago아님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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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성군 이였던 건륭제.

건륭제는 예술을 좋아하해 그림을 수집하거나 시 감상하거나 쓰는걸 즐기는 황제 였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이 걸륭제가 시를 쓰는 건 좋아 했지만 문재가 형편없어 드럽게 못 썼다는 것.

걸륭제의 처참한 시 실력이 잘드러난 일화가 있다.

어느해 겨울, 건륭제는 총애하던 시인 심덕잠 등 여러 신하들과 함께 항주 서호로 갔는데 마침 눈이 내렸다. 눈꽃이 바람이 휘날려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이를 보자 시흥이 일은 "대시인" 건륭제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시구를 읊었다.


"일편일편우일편(一片一片又一片, 한 송이 한 송이 또 한 송이)"


사람들은 이 싯구를 듣고는 모두 '좋다'고 소리쳤고 역시 황상의 솜씨는 비범하여 한마디를 하니 천하가 깜짝 놀랄 정도라고 아부를 했다. 원칙도 없는 아부의 소리를 들으면서 건륭제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하여 그는 계속하여 읊었다.


"삼편사편오륙편(三片四片五六片, 세 송이 네 송이 대여섯 송이)"


이제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것이 '시'라면, 어린아이라도 하루에 몇 편씩 쓸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아무도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계속하여 밀물처럼 호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떠받들리기 좋아하는 주인에게 아부를 계속한 것이다. 건륭제는 기운이 나서 뒷구절을 또 읊었다


"칠편팔편구십편(七片八片九十片, 일곱 송이 여덟 송이 아홉열 송이)".


이 싯구까지 나오자 모두 멍해졌다. 설마 이 어르신이 숫자를 세는 것은 아니겠지. 설마 뒤이어지는 마지막 구절이 "백편천편만만편(百片千片萬萬片, 백송이 천송이 만만송이)"는 아니겠지? 이것도 시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막상 건륭제 역시 여기까지 읊은 후에 더 이상 시구를 잇지 못했고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서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바로 이런 난감한 순간에, 심덕잠이 일어나 무릎을 꿇으면서 말했다.


"황상의 시는 너무나 좋습니다. 바라옵건데 신이 개꼬리로 담비를 잇도록(狗尾續貂)해주십시오."


마침 난감한 처지였던 건륭제로서야 당연히 윤허할 수밖에. 그리하여 심덕잠이 마지막 구절을 완성시킨다.


"비입매화도불견(飛入梅花都不見, 매화꽃으로 날아 들어가니 모두 보이지 않네)"


이 마지막 구절로 인하여 전체 시의 품격이 살아났다. 그리하여, 건륭제는 크게 칭찬하면서 그에게 담비가죽 옷을 하사했다. 그리고 이 시는 건륭제의 소유로 되었다. 이 시는 청패류초(淸稗類鈔) 순행(巡幸) 에 나오는 일화라고 한다.

근데 여기서 더 큰 문제가 있었으니 중국에는 그림을 수집하면 그 그림 옆에 시를 쓰고 자기가 주인이라고 도장을 찍는 문화가 있었는고 예술품 수집을 즐겨 했던 건륭제 그러한 일을 즐겨했다.

조맹부의 걸작인 "작화추색도(鵲華秋色圖)"에도 건륭제의 흔적이 많은데 여러 도장을 찍고 시를 적는 등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을 정도다.


심지어는 북송의 휘종이 직접 그린 "계산추색도"라는 걸작을 수집하고 나서, 상술한 "고고정도"에 찍힌 것과 동일한, 큼지막한 인장을 찍어놓고, 여러 자잘한 인감을 찍은 뒤, 좌측 상단부에 자신의 엉터리 시까지 적어놓았다.

거기에 건륭제는 시를 쓰게는 겁나게 써서 생전에 남긴 시가 무려 ‘4만’ 편이 넘는 시를 썼는데 당나라 시절 활동한 ‘2000명’이 쓴 시를 모은 선집 ‘전당시’에 들어간 시들이 48000수 미만인정도를 보면 말그대로 그냥 시를 찍어내는 수준. 그것도 매우 형편 없는 시들을 말이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시를 대신들에게 선물로 주는 것은 물론, 조선 사신에게도 하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원래부터 청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던 조선 사신들은 이를 돌려보면서 비웃었다고...


심지어 문화 대 혁명때 이 건륭제의 시 대부분이 소실 됬는데 남아있는 양이 엉청나게 많았던지라 지금도 책 몇권 분량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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