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티아누스 2세가 코와 혀가 잘린 채로 헤르손으로 쫓겨난 695년, 그는 헤르손에서 복수를 계획하며 피눈물을 흘리면서 지지자들을 결집하고 있었다.
한편 그가 쫓겨난 이후 698년에 황제에 즉위한 티베리오스는 아나톨리아와 그 주변에 대한 육상병력과 지상병력을 증강하였고, 획일화된 지휘체계를 갖추어 나갔다. 그와 동시에 아르메니아 지역에 대규모 공세를 가하면서 일부를 되찾기도 하였고, 703년, 704년에 잇따른 우마이야 칼리파국의 침공도 물리치게 된다.
그러한 사이 지지세력을 모으기 시작하여, 헤르손 총독의 선에서 관리가 불가능할 지경으로 세력을 확보한 유스티아노스 2세를 두고 볼 수 없었던 티베리오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고, 이내 제국의 사절단으로부터 보고를 받게 된다.
사절단)전임 황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헤르손에서 하자르족 영토로 넘어가더니 현재 하자르족과 연대하는 중이고, 심지어 그쪽 족장의 여동생과 결혼 후 아이까지 임신한 상태라고 합니다. 티베리오스)그 수장이라는 남자.. 이브지르라고 했었지? 돈을 가족보다 더 중시할 사람인 걸로 아는데 한번 매수해봐. 사절단)그러면 황궁의 병력도 데려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704년, 가만히 뱃속에서 나올 아이를 기다렸던 유스티아노스 2세에게 사절단이 찾아왔고, 호위 및 감시를 해줄 호위병을 붙여준다는 명목으로 암살할 계획을 꾸미게 된다.
하지만 이 상황을 예상했던 유스티아노스 2세는 그날 밤, 호위병들 등 뒤로 다가가 그대로 목을 졸라 죽인 뒤, 아내인 테오도라를 두고, 헤르손으로 비밀스레 넘어가 결사단을 꾸리고 그대로 콘스탄티노폴리스 성벽까지 진격하게 된다.
유스티아노스 2세)성벽을 열어라! 수비병, 시민들)어딜 들어오려고 하느냐! 너같은 폭정을 일삼던 버러지는 필요없다. 유스티아노스 2세)하.. 이 방법은 안쓰려고 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성벽을 열 수 없으나 예전 궁전이 현재의 궁전과 이어진 걸 이미 알고 있던 그는 밤중에 옛 궁전을 통해 기습하면서 하루 아침에 다시 황제로 복위를 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안지나 티베리오스와 레온티오스가 다시 그의 앞에 끌려온다.
유스티아노스 2세)내가 너희들을 위해 읊어줄 구절이 하나 있다. 티베리오스, 레온티오스)이미 네놈에게 당한 수모는 훗날 시민들이 기억할 것이다. 유스티아노스 2세)어딜, 죄수가 말을 하는데 끼어들어! '니가 사자와 독사를 밞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누르리라.' 이게 내가 너희들에게 전할 말이다. 여봐라, 저 죄인들을 엄벌로 다스리고, 삼족을 멸해라!
그렇게 두 장군 출신 황제들의 목을 성벽에 내걸었고, 그의 즉위를 도운 시민들과 정교회에 대한 숙청을 집행한 즉시 불가리아 왕국을 찾아가 자신에게 군대와 제국군의 주둔 장소를 알려주었던 테르벨을 찾아가 그를 카이사르(부황제)로 임명한다.
이후 테오도라(유스티아누스 1세의 아내도 테오도라인 걸 보면 참..)와 그의 아들 티베리오스(이름은 똑같다. 생각해보면 자기 아들 이름이랑 같아서 죽여버린 것 같기도 하고..)를 왕궁으로 부른 뒤 황후와 황세자의 직위를 주게 된다.
하지만 그의 타고난 망나니 기질은 10년 간의 와신상담에도 불구하고 어딜 가질 않았고, 제국 밖의 이곳 저곳을 정벌하러 다녔다. (불가리아를 공격했다 된통 당해서 철수하기도 하고, 헤르손에서 자신을 압송하려던 이브지르의 세력을 족칠려다 나중에 반란의 씨앗을 만들기도 한다.)
그 정벌 사이에는 로마 교황청에 대한 공세도 있었으며, 이후 로마 교황이 직접 동로마로 건너갔는데 의외로 교황을 극진히 대접하고, 교황청과 정교회의 화합과 개혁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자세히 보면 그냥 분조장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의 악행을 결국 부메랑이 되었고, 결국 711년 헤르손에서 거병한 바르다네스가 필리피코스로 이름을 바꾸고 반란을 일으켰고, 결국 그는 암살을 당함과 동시에 테오도라와 어머니인 아나스티시아 태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일족이 멸족당하게 된다.
그 이후 혼란기를 거치면서 동로마의 국력은 쇠약해지기 시작하고 결국 떨어진 황권은 추후 엄청난 외교적 참사를 낳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