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칼리파를 세습제로 바꾼 뒤 강력한 권력을 바탕으로 유지될 줄 알았던 우마이야 칼리파국은 아이러니하게도 무아위야 1세의 사망 이후 시아파에 의해 알리의 차남이었던 후세인을 칼리파로 선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다시 갈라지게 된다.
문제는 이때 칼리파의 직위를 물려받은 야지드 1세는 이슬람을 결집시키려는 시도 없이 군대를 끌고 와 그대로 후세인을 포함한 그의 일가족을 살해해버렸고, 결국 이 움직임은 이븐 주바이르를 중심으로 시아파를 다시 결집하게 만들면서 2차 피트나 내전이 발발하고 만다.
그렇게 내전이 진행되던 683년, 야지드 1세가 전염병으로 급사하게 되고, 그의 젊은 아들이었던 무아위야 2세가 칼리파의 직위를 물려받게 된다.
한편 칼리파직을 물려받고 곧바로 개혁을 펼침과 동시에 칼리파 정통성 문제를 공동체의 결정에 맡기기로 하고, 필요하다면 칼리파직을 포기할테니 전쟁을 멈추자 제안을 한 무아위야 2세의 제안에도 이븐 주바이르는 무아위야 2세의 의중에 의심을 품으면서 이 제안을 거절하며, 내전을 더욱 심화된다.
그렇게 1년 뒤, 무아위야 2세마저 급사하고, 이로 인해 우마이야 칼리파국은 후계자 문제로 인해 시리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이슬람 지역들에 대한 통치권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이때 3대 칼리파였던 우스만의 측근이자, 전쟁에서 크게 활약했던 마르완 1세를 우마이야 칼리파국은 옹립하였고, 이후 마르완 1세의 전술과 정치력으로 우마이야 칼리파국은 끝내 다시 부활하여, 그의 아들인 아브드 알 말리크에 의해 가까스로 내전이 종료된다.
그러나 불행은 겹쳐서 온다고 이제는 다른 나라에서 동전을 이유로 전쟁을 선포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