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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하는 기독교와 팽창하는 이슬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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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이슬람의 새로운 지도자로 알리가 선출되기 이전 3대 칼리파였던 우스만이 이슬람 세계를 통치했을 당시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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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만은 메카의 기득권이었던 쿠라이시 부족들 중 우마이야 가문에 속했던 사람이었으며, 그의 가문을 등에 업으면서 강력한 통치 체계와 안정적인 재정을 통해 이슬람 세계의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구축과 함께 코란을 정형화하여 교리를 표준화하는 등의 업적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통치 과정에서 무함마드의 예언을 적은 글인 '코란'을 집대성하는 과정에서 쓸데없다고 판단하는 기록들을 말살하는 정책을 펼치면서 많은 무슬림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으며 지속되는 개발 정책, 토지 규제의 폐지로 점점 아랍을 세속화 시킨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아랍의 순수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알리를 지지하는 세력들과 지속적인 대립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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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런 상황에서 새로 개종한 무슬림에 대한 차별적인 세금에 결국 이집트를 중심으로 봉기가 발생하였고, 봉기한 세력들이 메디나에 와서 40여 일간 우스만의 집 앞에서 농성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때 우스만은 알리에게 중재를 요청하였고, 알리는 자신의 아들을 우스만의 호위에 붙여주고 중립을 취하면서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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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중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스만이 이집트 출신 무슬림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되고, 결국 칼리파를 정하기 위한 회의가 소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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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스만의 통치로 인해 아랍은 이미 세속성과 순수성을 추구하는 두 파로 갈라지게 되었으며, 5개월 간의 대립 끝에 더이상 아랍의 분열을 볼 수 없었던 알리가 칼리파 제안을 받아들임으로써 최종적으로는 알리가 칼리파로 선출이 된다. (이때의 분열에 더해 차후 기존 칼리파의 존재의 부정 여부로 인하여 결국 아랍은 시아파와 수나파로 갈라져버린다.)

그러나 이후 무함마드의 아내였던 아이샤와 우마르의 사촌이었던 마르완, 그리고 시리아의 총독이었던 무아위야 1세까지 모인 반알리파들은 알리를 지지하는 친알리파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로 인해 알리는 우마르가 정복했던 지역들을 시작으로 통제권을 잃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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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계속된 전쟁으로 지친 양측은 협상에 돌입하려고 하나 무아위야 1세 측에서 시리아와 이집트에 대한 자치권 확보를 위하여 협상을 틀려는 시도를 하여 파토가 나고, 이후 시리아, 이집트 연합과 그 외 아랍 세력의 국지전 양상으로 내전이 지속된다.

그러한 상황 속 기도를 하던 알리가 살해당하고, 그의 장남이자 무함마드의 맏딸 파티마의 하산 이브 알리가 임시 칼리파로 선출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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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알리의 세력들은 점점 통치권을 상실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상황에서 무아위야 1세의 협상 요청을 결국 받아들이고 무아위야 1세에게 칼리파의 자리를 넘겨주면서 많은 무슬림들의 피와 함께 이 내전은 종료된다. (이 내전은 훗날 1차 피트나 내전으로 불리게 된다.)

그렇게 예루살렘의 성산에서 즉위식을 치룬 무아위야 1세는 자신의 근거지인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정한 우마이야 칼리파국의 건국을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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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마이야 칼리파국은 이후 무아위야 1세의 사망을 기점으로 또다른 분쟁을 겪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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