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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만난 그녀와 모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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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 도중 우연히 만난 그녀


마법도 잘 쓰고 똑똑하고 무엇보다 아름답다

나는 그녀의 도움으로 소드마스터가 되기도 했다

우리는 머지 않아 결혼했고

완벽에 가까운 결혼 생활을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사실은 드래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이제야 말하는 거야?”

그것도 그녀의 입으로 직접.

“돌아갈 때가 되었어.”

어쩐지 너무 늙지 않는다 했지.

나는 이제 늙어 이렇게 병상에 누워 있는데

아직도 기껏해야

중년 정도로만 보이는 게 이상하다 했지.

그냥 이상하게도 내 눈에 콩깍지가

참 오래 가는구나 싶었는데.

“미안해. 속일 생각은 없었어.”

“날 사랑하긴 했어?”

“원래 드래곤은 다들 이래.

인간 세상에 나가 사람을 만나고

그때마다 새로운 자신을 연기하는 거야.

그래서 유희라고 하는 거야.”

“날 사랑하긴 했어?”

“날 원망해도 좋아. 넌 그래도 돼.”

“날 사랑하긴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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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하나만 말해줄게.”

그녀가 내 손을 붙잡았다.

“당신은 내 생애 가장 긴 유희였어.”

그녀는 그렇게 나를 떠났다.

그녀가 떠난 집을 치우다

그녀의 방에서 몇 가지 책을 발견했다.

전부 인간의 수명에 관한 것이었다.

유한한 인간의 수명을 늘리기 위한 허무맹랑한 연구들.

아마 그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멍청한 짓이었을 것이다.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죽었다.

그녀가 떠나간 하늘을 바라보며.

제국력 577년.

내가 죽은 지 15년 뒤.

나는 어째서인지 15살 소년의 몸으로 전생해있었다.

그녀는 말했다.

드래곤은 유희가 끝나고 나면

자신의 둥지로 돌아가 긴 잠에 빠진다고.

다른 누군가 찾아오지 않는 한 깨지 않으며,

그동안 지난 유희를 되새기는 깊은 꿈을 꾼다고.

시골 농부의 아들이 된 나는

집을 나서 모험가 길드에 찾아갔다.

농기구와 바꾼 낡은 검 한 자루를 허리춤에 차고.

길드의 접수원이 물었다.

형식적인 질문이었다.

“모험가가 되려는 이유는 뭔가요?”

오래전 꿈 같은 이야기다.

드래곤과 사랑을 했다니.

하지만 그렇기에.

오래전 꿈처럼 잊혀지기 전에,

그녀도 그것을 그저 꿈으로 묻어두기 전에.

나는 가야한다.

“드래곤의 둥지를 찾고 싶습니다.“

그녀의 둥지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드래곤의 둥지가 어디에 있다는 얘기 같은 것은

전생에도 지금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다.


허나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모든 도서관을 뒤져보고,

드래곤이 나타났었다는 소문이

조금이라도 도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찾아갔다.

그러던 중 한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마을사람들로부터

광인 취급을 받고 있는 여자였다.

그러나 나는 그녀와 채 몇 마디도 나누기 전에

그녀가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나와 같은 종류의 사람이었다.

그녀 역시 폴리모프한 드래곤을 사랑했었다.

비로소 서로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난 우리는

밤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때론 공감하고,

때론 술잔을 엎을 만큼 몸을 흔들며 키득거렸다.

우린 한마음 한뜻으로 소리 높여 건배했다.

“그깟 드래곤이 뭐라고!”

하지만 그 뒤의 하지 않은 말이 무엇인지는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 잘난 것은 드래곤이 아니다.

그 사람이지.

깊은 밤, 끝내 그녀는 내 품에 안겨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녀를 위로할 수 없었다.

같은 상처를 가졌으니

서로를 위로할 수 있을 것이란 사람들의 생각은 틀렸다.

오히려 같은 상처를 지닌 사람들은

서로의 그 상처가 얼마나 아플지 알기에

감히 어떤 위로도 하지 못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뿐이었다.

그녀가 기댈 수 있게.

그녀가 바닥까지 쓰러지는 것만큼은 막을 수 있도록.

다음날 아침, 그녀는 내게 반지 하나를 건넸다.

“그가 준 반지에요.”

“이걸 왜 내게….”

“그에게 전해주세요.

나라는 사람과 만났다는 걸 잊지만 말아달라고.

그것마저 안 된다면

그냥 그의 둥지 한구석에 몰래 버려주세요.

드래곤의 둥지에는 보물들이 많대요.

그 보물들 사이에 버려주세요.

이 작은 반지도 몰래 보물 취급을 받을 수 있게요..”


그녀의 반지를 소중히 받아들었다.

“나 더 이상은 그 반지를 갖고 있을 자신이 없어요.”

그녀는 내게 웃어보였다.

나는 바쁜 발걸음으로 마을을 떠났다.

애써 웃어보인 그녀의 미소가 또 허물어지기 전에.

그녀는 말했다.

‘그 사람은 늘 자신의 고향이

대륙 서쪽 킬바인 산맥이라고 했어요.

그땐 그냥 허풍인 줄만 알았는데..’

킬바인 산맥.

온통 바위뿐인 험하디 험한 산맥.

게다가 가는 길에는

온갖 마물이 득실거리는 오지 중의 오지.

사실상 제국의 영토도 아니기에

제대로 된 지도조차 그려져 있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가야했다.

어쩌면, 같은 드래곤이라면

다른 드래곤의 둥지를 알지 않을까.

헤메고 더듬거리고 수없이 넘어지면서도

나는 끝내 드래곤의 둥지를 찾아냈다.


그녀가 사랑했던 드래곤의 둥지는 깊은 동굴 속에 있었다.

마침 드래곤은 잠들어 있지 않았다.

나는 당당히 그 앞에서 다가갔고,

황금색 찬란한 비늘을 자랑하는 그 드래곤이

먼저 내게 말을 걸었다.

“아, 인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필멸의 존재가 당도했구나.

이곳까지 온 것을 보니

분명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져왔겠지?”

나는 그녀의 반지를 보여주었다.

“당신을 사랑하는 여인의 반지입니다.

이만하면 흥미롭겠습니까?”

그가 흥미를 보였다.

그가 역시 황금색으로 빛나는 동공을 가늘게 뜨고

내가 내민 반지를 유심히 쳐다봤다.

“흥미롭군. 내가 준 것이 맞아.

이름도 기억나는군. 셀레느.

그녀가 아직도 날 사랑하던가?”

“이제까지는 그랬습니다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잊지는 못 할 것입니다.”

“가엾어라. 이럴 때면 드래곤이란 종족으로

태어난 것이 비참하게 느껴진다네.”

“어째서입니까.”

“금방 그녀를 잊고 말거든. 본의 아니게도.”

짧은 수명이 필멸자의 족쇄라면 기나긴 삶은

우리 드래곤의 고질병과도 같다며 그가 한탄했다.

“권태, 우리 드래곤의 영원한 동반자여.”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한 그가

반지를 가져가더니 물었다.

“소원 하나 들어주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져온 필멸자에게

그 정도도 못해줘서야 될까.”

나는 답했다.

“드래곤의 둥지를 찾고 있습니다.”

그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내를 찾고 있다는 내 이야기를.

그는 반지를 보았을 때보다

몇 배나 더 흥미로워하며 내 이야기를 캐물었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 그는

고양이가 가르릉거리는 듯한 소리를 내며 즐거워했다.

“좋아, 도와주지. 흥미로워. 아주 흥미로워.”

그 드래곤의 본명이 뭔지, 어디 사는지도 모르기에

단번에 찾아갈 수는 없겠지만

유희가 끝난 시기를 바탕으로 수소문해보면

분명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그는 단언했다.

더불어 선심쓴다는 듯이 덧붙였다.

“이건 소원으로 안 치겠네. 무척 흥미로웠거든.

내가 가고 싶어서 가는 것이니

소원으로 치면 안 되지. 안 그런가?”

그는 드래곤 중에서도 제법 강하고

영향력이 있는 축에 속하는 듯했다.

막무가내로 다른 드래곤들을 찾아가 정보를 알아냈고,

가끔은 자고 있는 드래곤의 귓가에

브레스를 불어넣으며 깨우기도 했다.

허나 워낙 가진 정보가 없다시피 했기에

진척이 쉽진 않았다.

결국 인간의 형태로 변해

인간 세상에서 또다시 정보를 수소문하기도 해야 했다.

“왜 이렇게 열심히 도와주시는 겁니까?”

내가 묻자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흥미롭지 않나.”

그는 그 흥미라는 것에 무척이나 집착하고 있었다.

“흥미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까?”

“자네는 잘 모르겠지만

기나긴 삶을 산다는 것은 제법 힘든 일이네.

무슨 짓을 해도 언젠가는 결국 잊어버리고 말지.

아무리 많은 일을 하고 아무리 많은 일을 겪어도

시간이라는 풍화작용 앞에

남아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아.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내 나이쯤 되면

슬슬 두려워지기 시작한다네.”

드래곤에게도 두려운 것이 있는 걸까.

나 역시 그의 말에 흥미가 동했다.

어쩌면 그와 함께 다니던 나날 동안

그를 닮아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두려운 것입니까?”

“오, 그야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지.”

“그게 무엇입니까?”

“바로 내가 무엇인지 잊어버리는 것.”

그가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나라는 존재 자체를 잃어버리는 일은 없겠지.

어찌 잊겠나.

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황금색 비늘을.

하지만 ‘나’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야.

내 개인적인 견해지만

‘나’를 유지하는 것은 이 몸뚱아리가 아니라


수백년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쌓아온 기억이라는 것이 내 생각일세.

그런데 그런 기억들이 점차 사라져간다?

세월을 못 이긴 왕궁 옛터의

모래와 돌맹이처럼 부스러져버린다?

그것만큼 두려운 것이 어디 있겠나.”

“그래서 그렇게 흥미로운 것을 찾아다니시는 겁니까?”

“그렇지. 내게 이런 일들은 그저 흥미거리가 아니야.

말하자면, 하나의 표식과도 같은 것이지.”

“표식이라면..?”

“드높이 솟은 오벨리스크처럼

그 얼마나 세월이 지나도

결코 스러지지 않는 확고한 표식.

내가 그곳에 그 시간에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내 머릿속의 강렬한 기억.

나는 그러한 것들을 찾아다니는 걸세.

설령 필멸자를 내 등에 태우는 한이 있더라고 말이야.”

그가 날개를 접고 하강하기 시작했다.

“보게! 하리온 협곡이 보이는군!

저곳에 자네의 아내가 잠들어 있으면 좋으련만.”

내가 필멸자인 탓인지


그의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그의 말에 동의했다.

결코 스러지지 않을 단 하나의 기억이라.

그래.

그 어찌나 소중하지 않을까.

나는 세찬 바람에 시린 눈을 가리며 답했다.

“네. 저도 동감입니다.”

그녀를 찾을 단서를 발견한 것은 아주 우연한 일이었다.

“잠깐. 자네 그 검술.. 어디서 익혔지?”

틀림없이 그녀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찾아갔던 한 동굴.

하지만 그곳에는

드래곤이 아닌 고위 마물이 잠들어 있었다.

나는 그간 실력이 모자라

쓰지 않던 검술을 사용하여 놈을 처치했다.

그런데 그때, 그 검술을 본 그가 물은 것이다.

“아내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아내? 아내? 그 아내가

지금 우리가 찾고 있는 그 드래곤이 맞겠지?”


“전 딱 한 번만 결혼했습니다. 누구와는 다르게.”

“하, 이럴 수가. 드래곤 날개 밑이 어둡다더니.”

“왜 그러십니까.”

그가 답답하다듯이 소리쳤다.

“자네의 그 검술!

그건 드래곤이 창안한 것이란 말일세!

그것도 특정 종족에서만 전승되어 오는!”

아주 오래 전, 그녀가 내게 알려주었던 검술.

그저 낯설고 독특한 검술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왜 미처 이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럼 이제 정말로 그녀를 찾을 수 있는 겁니까?”

“그렇지! 그렇고 말고! 아, 물론

지금까지 우리의 수색이 물거품이 되기는 했지만.”

“물거품? 어째서입니까?”

여느 때처럼 그가 나를 등 위로 태워주며 말했다.

“그녀가 있는 곳은 산이 아니야.”

단숨에 높이 날아오른 우리의 눈가에

구름이 스치고,

그가 힘껏 휘저은 날개짓에 구름이 흩어졌다.

저멀리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보였다.

“그녀는 바닷속에 있네.”


그가 말했다.

“그녀는 해룡이거든.”

아주 오래 전,

그녀와 가끔 호수나 계곡에서 수영을 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녀를 수영으로 이겨본 적이 없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당신은 나 수영으로 절대 못 이길걸?”

우리는 제법 커다란 범선을 하나 구입해 몸을 실었다.

“그냥 날아가면 안 됩니까?”

“어디부터 어디까지 날아가야 할 줄 알고?

게다가 바닷바람을 맞으며 나는 것은

썩 유쾌하지 못하거든.”

그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멋들어진 선장 모자도 비스듬이 쓰고 있었다.

“아, 예전 생각이 나는구만.”

“혹시 그 추억 속 오벨리스크에 해적질도 있습니까?”

“비슷한 걸 했지. 훨씬 더 낭만 넘치는 걸 말야.”

그때, 한 선원이 다가와 물었다.

“선장님! 준비 끝났습니다! 출발할까요?”

“기다리던 말이로구만! 가지! 푸른 바다로!”

“넵! 출발!!”

요란한 함성과 함께 배가 바다로 나아갔다.

그 열띤 바다사나이들의 외침에

나도 괜히 가슴이 울렁거렸다.

아니면 이게 바다의 마술이란 걸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딘가 가슴이 두근거려

부둣가에서 조개를 캐던 소년마저

무심코 배에 몸을 실게 만든다던 그 마술.

“아참, 중요한 걸 하나 빼먹었군.”

“뭡니까?”

“배의 이름을 안 정했어.”

“그게 중요한 겁니까?”

“중요하지, 중요하고 말고.

자네는 자식에게

이름조차 안 지어주는 부모가 될 셈인가?”

자식이라.

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

그녀가 자식을 가질 수 없는 몸이라는 것을 알기 전.

문제는 몸이 아니라 드래곤이었다는 것 역시 알기 전,


나는 종종 그런 설레발을 치곤 했다.

우리 자식 이름은 아들이면 올리버,

딸리면 올리비아가 어떻겠냐고.

혹시 별로면 셀리온, 셀리아는 어떻냐고.

나는 바닷바람에 옛 생각을 실어 웃어넘기며 물었다.

“그럼 제가 배 이름을 지어도 되겠습니까?”

“오,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나?”

“올리비아 어떻습니까. 아니면 셀리아.

배 이름으로는 여성의 이름이 좋다던데.”

내심 올리비아가 더 맘에 들었다.

하지만 그는 내 작명이 마뜩치 않았던 모양이다.

“못 들은 걸로 하지. 끔찍하구만.

그런 이름이면 피할 태풍도 맞는다네.

그냥 내가 짓는 게 낫겠어.

보자, 내 오랜 경험으로 돌이켜 봤을 때

배 이름은 가능한 단순하고 직설적인 것이..

아, 그래!”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그가 야심찬 미소를 지었다.

그가 내 어깨를 두드리더니

난간 위에 높이 서서 선원들에게 소리쳤다.

“다들 들으라!



이제부터 우리 배 이름은 사랑의 추적호다!”

끔찍하구만.

한 선원이 물었다.

“이유라도 있습니까!?”

“있지! 그야..”

나는 올리비아가 백 번 낫지 않냐며

갈매기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는데

그가 갑자기 내 어깨를 잡아끌었다.

“여기 우리 부선장님께서 아주 사랑에 목이 마르셨거든!

근데 뭐라더라? 그 사랑이 바다 밑에 있다던가?”

선원들 사이에서 한바탕 큰웃음이 터져나왔다.

“아이고, 그러셨구만!

어쩐지 급하게 출발하신다 했지!

아무렴, 가야지!

거 뭐 인어인지 사이렌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랑한다면 가야지!

근데.. 거 자식은 낳을 수 있나?”

“설마 어인은 아니겠죠, 부선장님!?”

그들의 그 농담 섞인 물음에

나는 미소지으며 이렇게만 답해주었다.

그냥 댁들이 본 그 어떤 여자보다도

아름답다고만 해두겠습니다.”

휘익 휘익 하는 휘파람 소리.

야유와 환호가 한 데 섞인 고함 소리.

찰박이는 파도 소리.

까악대는 갈매기 소리.

“가자! 바닷속으로!”

언제 챙겨온 것인지

생전 본 적 없던 레이피어까지 치켜들며

소리치는 그의 목소리.

나는 그와 나란히 난간에 기대었다.

“아주 입이 싸십니다.

드래곤 찾으러 간다고도 말하지 그러셨어요.”

“그건 안 되지. 사기가 떨어지잖나.

자네나 드래곤을 사랑하지 보통은 무서워한단 말일세.”

참나.

“그럼 바닷속으로 가자는 얘기는 사기가 오릅니까?”

“오른 것 같은데?”

선원들은 어느새 정체 모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자, 떠나자, 바닷속으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미녀 찾으러-”



말을 말지.

“그리고 어지간하면 미리 말을 해두는 게 낫거든.

비록 이렇게 농담으로 받아들일지언정 말야.

갑자기 이제부터 우린 바닷속으로 간다고 하면

보통 충격을 먹더라고.”

“예?”

“음?”

“아니, 아니.. 잠깐만

지금 그러면 정말로 이 배로 바닷속까지..”

그가 내 등을 세게 후려쳤다.

“쉿.”

남몰래 윙크하는 그의 눈동자가

순간 드래곤의 그것처럼 묘하게 반짝였다.

“혹시나 들으면 사기 떨어지네.”

“선장님! 선장님! 크라켄, 으악, 사람 살려!

크라, 크라켄입니다, 선장님!”

“자, 떠나자, 크라켄 뱃속으로-”

“선장님!!”

드래곤.

그 인간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존재여.



내가 아는 한 드래곤은

내가 아는 그 무엇보다 사랑스러운 존재였으나,

내가 두 번째로 알게 된 드래곤은

내가 아는 한 그 누구보다 정신나간 생물이었다.

“내가 말했지 않느냐! 우린 바닷속으로 간다고!”

나는 그의 명령대로

쉴 새 없이 커다란 돛대를 도끼로 찍고 있었다.

“대체 이게 뭐하자는 겁니까!?

정말로 크라켄 뱃속으로 들어가는 겁니까!?”

“가야지!

자네는 배가 바닷속으로 가는 걸 봤나?”

“못 봤죠!

크라켄 아가리로 달려가는 배도 못 봤구요!”

“나는 봤네!

그리고 크라켄 뱃속에 들어가서

바다 깊은 곳까지 가는 배도 보았고!”

그가 조타석에서 뛰어내리며

내가 연신 내리찍고 있던 돛대를 걷어찼다.

쿵!

“좋아! 계속 하게!”

그 충격에 돛대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앞을 향해 기우뚱 기울어졌다.

아직 부러져 쓰러지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것만으로도 선원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으아악! 피해! 피해! 돛대가 쓰러진다!”

“피, 피할 곳이 없어! 배가 박살날 거야!”

배 위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앞에는 크라켄의 아가리.

머리 위로는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돛대.

선원들은 급기야 폭풍이 몰아치고

번개가 내리꽂히는 그 파도 사이로

뛰어내리려 하고 있었다.

“이, 이건 미친 짓이야! 말이 안 된다고!”

막 난간을 넘어가려는 선원 한 명을 붙잡아

뱃전으로 도로 내던지며 그가 소리쳤다.

“그래! 네놈들이 정녕 바닷속으로

아까운 목숨을 내던지고 싶다면 그렇게 해라!

하지만 내가 이것 하나만은 약속해주마!

내 말을 듣고 날 따라오기만 하면

네놈들은 모두 인어와 하룻밤을 보낼 수 있을 거다!”

“이, 인어!?”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선원들에게 인어란 단어는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저, 정말입니까!?”

“그래! 원하면 1인당 2명씩 붙여주마!”

“두, 둘씩이나!?”

우왕좌앙하던 선원들이

조금씩 침착해지기 시작했다.

허나 그중 여전히 공포에 질려 있는,

방금 막 바다에 빠지려 했던 선원이

울며불며 통곡했다.

“전 싫어요! 그,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다리가 없잖아요!”

“누가 그랬지?”

“예?”

“다리가 없다는, 그 얘기를 어디서 들었냐 이 말이야.”

“그, 그야 사람들이 그렇게..”

그가 여태 쓰러져 있는 선원을 일으켜 세웠다.

“그건 사람들이 바닷속 인어를 못 봤으니 하는 말이지.

바닷속 인어는 말일세,

내가 본 그 어떤 인간 여자보다도

아름다운 다리를 가지고 있다네.

생각해보게.

자네는 남자 인어를 본 적 있나?

아니면 들어본 적이라도 있나?”

“아, 아뇨.. 없는뎁쇼..”

“그럼 인어는 어떻게 번식을 할까?”

“그, 글쎄요..”

“답은 인간 남성일세.

선원이 인어에게 납치당했다는 얘기는 들어봤겠지?”

“네..”

“이상한 일 아닌가? 자네 말대로 다리가 없다면

하룻밤을 보낼 수 없을 텐데,

뭐하러 납치를 하냔 말일세.”

“그, 그러게요.. 그럼 혹시 체외수정을..”

“해마 같은 소리하지 말게.

그게 아니라, 바로 인어에게도 다리가 있다는 것이지.”

“저, 정말입니까?”

“내가 뭐하러 거짓말을 하겠나?”

그가 부러진 판자에

마법으로 불을 붙여 횃불을 만들었다.

장대 같이 쏟아지는 그 빗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그 횃불 아래

그가 은근한 목소리로,

하지만 모두가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인어는 물 속에서만 다리를 만들 수 있다네.

생각해보면 참 야릇한 일이지 않나?

오로지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서만 만드는 다리라니.

상상을 해보라 이걸세.

안 그래도 아름다운 그 인어가

오로지 네놈들과 자기 위해서만 만드는 다리..

걷기 위해서도, 서기 위해서도 아니라

네놈들의 허리를 끌어안기 위해서만 만드는 다리…”

한순간 두려움도 있고

횃불 근처에 홀린 듯 모여든 선원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콰광!

배 바로 옆에 벼락이 내리쳤다.

한순간 눈이 부셔 눈을 감았다 떴다.

그가 선원들에 둘러싸여

손가락 2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그게.. 1인당 2명씩.”

쐐기였다.

귀를 찢는 천둥보다도

더 크게 선원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1인당 2명! 1인당 2명! 1인당 2명-!”

“나는 갈 거야! 인어 볼 거야!”

때마침 나의 도끼질도 빛을 보아

돛대가 서서히 쓰러지기 시작했다.

나는 소리높여 물었다.

“인어고 나발이고 이젠 어떡합니까!”

씨익 미소를 지은 그가 언제 만들었는지

양손 가득 횃불을 들고 나눠주기 시작했다.

“이제 네놈들이 할 일은 간단하다!

크라켄이 우릴 씹어삼키지 못하도록

횃불을 높이 쳐들고 촉수든 이빨이든

죄다 쫓아내는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이 횃불은 결코 꺼지지 않는다!

두려워마라! 거대한 문어에겐 없지만

우리에겐 있는 것이 있다! 그게 무엇이냐!”

“1인당 2명!”

“빌어먹을! 난 네놈들이 맘에 든다!

가라, 위치로!

뱃전에 서서 이 배를 부수려는 것은

무엇이든 쫓아내라!”

동시에 그가 배 위로

충돌하기 직전인 돛대를 낚아채더니

창던지기 선수처럼 냅다 앞으로 내던졌다.

끼에에에이익!

돛대가 크라켄의 피부를 뚫고 박혔다.

크라켄이 기괴한 비명소리를 지르며

크게 아가리를 벌렸다.

“지금이다! 바닷속으로 가는 문이 열렸다!”

결연한 표정의 선원들이 일제히 뱃전에 자리를 잡고

횃불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떠한 두려움도 없이

머리 위를 오가는 촉수들을 내쫓았고,

저들을 씹어삼키려는

크라켄의 이빨 사이로 횃불을 들이밀었다.

그들은 더 이상 선원이 아니었다.

가슴 속 꺼지지 않는 믿음으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맞서 싸우는 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전사, 아니, 사랑의 추적자들이었다.

“1인당 2명-!”

그가 내 곁으로 돌아왔다.

“낭만적이로군.”

“혹시 저번에 해적질보다 낭만적인 것을 했다는 것이..”

“보고 있는 이걸세.”

“이젠 놀랍지도 않군요.

근데 정말 사실입니까? 인어에게 다리가 있다는 게.”

“아, 물론이지. 아까 내가 한 얘기는 모두 진짜일세.”

“1인당 2명이란 약속도?”

“그럼.”

이걸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추잡하다고 해야 할지.

“그렇게까지 해서 이들을 데려가야할 이유가 있습니까?

솔직히 혼자 힘으로도 충분히 가능하잖습니까.”

“이유가 있긴 하지.”

“뭡니까? 혹시 또 뭔가 이상한 꿍꿍이가 있는 건..”

그가 선장 모자를 벗고

물에 젖은 머리를 쓸어넘기더니

또 그 의뭉스런 미소를 지으며 내 등을 두드렸다.

“뭐.. 가면 알걸세.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래서.”

뱃전을 두들기던 빗소리가 조금씩 잦아들고,

크라켄의 이빨이 우리 머리 위를 스쳐지나갔다.

달빛도 더는 들지 않고

주변을 밝히는 것은 여태 꺼지지 않은 횃불뿐.

뱃머리가 물결을 헤치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스쳐지나가지 않고, 사방에 가로막혀서.

툭툭.

그가 조타석에 올라 칼끝으로 난간을 두들겼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가 선포했다.

“잘했다, 제군들.

우린 지금 무사히 크라켄의 뱃속에 들어왔다.”

“정신이 드나?”

배가 크라켄의 목젖에 부딪혔었는지

나는 정신을 잃었었고

그 드래곤은 나를 부축하고 있었다.

“나머지 인원들은 어떻게, 살아는 있습니까?”

“저쪽을 보게나.”

“인어 2명! 인어 2명! 인어 2명! 인어 2명!”

걱정할 필요가 없는 선원들이네

“그래서 말인데,

자네 내가 왜 크라켄에게 먹히자고 한 줄 아나?”

그렇다.

드래곤하고 크라켄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막말로 바다 속에서

드래곤의 둥지를 찾을 방법이 있기는 할까?

“궁금한 모양이군.

사실 크라켄은 드래곤한테 기생하는 생물이란 말이지.

우리가 먹다 남긴 걸 먹는 비루한 생물.

그러니 항상 드래곤의 곁에 살거든.

크라켄 옆에는 드래곤, 유명한 상식이네.”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크라켄은 안 먹습니까? 크잖습니까?

드래곤이 많이 먹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리고 한숨을 내쉰다.

필시 안타까운 사연이 있으리라.

“맛이 없어. 더럽게”

“예?”

“그리고 더 더러운 사실은

드래곤의 둥지에 가기 전,

한 달동안 우리가 크라켄을 먹으며 지내야한다는 거지.

밥 대신 살을, 물 대신 피를.”

어? 분명 식량을 넉넉히..

“식량 먹을 생각 말게나. 분명 부족할테니.”

“우욱 씹. 대체 이게 뭔 맛-“

“선장 제대로 된 것좀 먹읍시다!”

“킬바인 산맥의 숲이 그리울 정도입니다.”

“숲이라! 그 아름다운 땅,

그것 또한 그립구만!

하지만 이곳의 광경도 만만치 않을걸세.

잘 들어라!

식량은 적어도 크라켄 배 밖으로 나오고 사용한다!

이제 곧 해저다.”

정말 바다밑에 땅이 있긴 한가보다.

“그게 느껴지시는군요.”

“괜히 드래곤이 아니네.

또 크라켄이 슬슬 빨라지기도 했고.”

그 말대로 자신의 위장을

퍼먹어도 반응 없던 크라켄이 빨라지고 있다.

정말 바다의 바닥에 도달했나보다.

이제 곧 그녀를..

“하지만 이 상태로 바로 갈 수는 없네.

우선 배를 조금 수리도 해야 하고.”

그가 선원들을 불러모으며 말했다.

“그럼 어디로 갑니까? 이 깊고 깊은 바다에서.”

드래곤이 웃는다.

꽤나 신나하는 표정이다.

그래 드래곤들은 웃는 표정들이 꽤나 닮았구나.

“어디긴! 말하지 않았는가? 인어를 보러가야지!”

“그런데 선장 어떻게 갑니까?

계속 이 크라켄을 타고 갑니까?”

“우리 찾아갈 필요 없네.

때가 되면 그들이, 우리를 찾아올걸세.”

쩌적

쩌저적

끼에에엑

크라켄이 울부짖고 저 너머에서 빛이 흘러들어온다.

그리고 동시에 물이 넘쳐들어온다.

“으아악! 배가 흔들린다. 아무거나 붙잡아라!”

한명 한명 물에 휩쓸리고 나도 쓸려나갔다.

그리고 부드러운 손이 내 몸을 만진다.

사람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그리고 내 입속에 밀어넣어진 달콤한 액체.

그걸 마시자 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따라와라”

손짓하는 그를 보니 몸은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눈,

그리고 제집인 것 마

헤엄치는 그 모습이 퍽 아름다웠다.

“헛! 어서오십시오.

인어들의 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사랑의 추적호 여러분.”

“거 이름 참..”

“왜? 잘 지었구만. 그리고 어떤가?

참 아름답지 않은가? 이 언어들의 마을은.”

“머무실 동안 극진히 대접하겠습니다.

이 쪽으로 와주십시오.”

아름답다.. 정말 아름답기는 한데

“왜 저희가 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시는지요.”

뜨끔

“그럴리가 있겠느냐?

자, 모처럼의 휴식이다.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겨라!”

어찌나 힘들었던건지

선원들은 이미 인어들 사이에서 하와와 거리고 있었다.

대충 둘러보고 가려고 할 때

“자네도 즐겨두게. 어차피 오래 있을 곳이 아닐거야.”

라고 말하며 그는 떠났다.

“그래서 왜 저희만 같은 방에 있는 겁니까?”

“전부 다 자네가

인어와의 동침을 거부했기 때문아닌가!

나도 남정네하고 같이 자고 싶진 않네!”

“그러면 그쪽은 왜 거부했습니까?”

“자네가 셀레느를 상기시켜주었잖나.”

뭐? 당신은 왜, 기억도 제대로 못하면서

“나도 오랜만에 기억해낸 사람을 두고

다른 이를 취할 정도로 금수는 아니라네.”

“드래곤이면 금수 아닌가요?”

“나가.”

쳇 쪼잔한 사람 같으니라고.

몸집과 달리 속 좁은 구석이 있다.

며칠 후 그가 말했다.

이제 바다 속의 폭풍이 멈추었다고.

둥지로 갈 수 있다고.

“둥지로 가는 길이야 배만 튼튼하다면 어렵지 않다네.

드래곤의 둥지 주위에

얼쩡거리는 미친 놈은 없으니.”

“저보고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그 말을 반쯤 믿으며 둥지로 향했다.

깊고 깊은 바다 옆의 드래곤이 사용하는 마법이 없다면

자신의 몸조차 인지할 수 없는 바다.

‘이런데 살고 있으니 수영을 잘할 수 밖에.’

의외로 그 둥지 내부는 밝으며 또한 쾌적했다.

무언가 부서지고 망가진 흔적만 뺀다면.

아니 정확히는 둥지 전체가 그러했다.

“이거 완전 박살났네.

제법 스트레스가 심해보이는구나.

부끄러울 정도야, 같은 드래곤으로써.”

“그런건 중요치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어디있는지 겠지요.”

그 넓은 둥지에는 아무런 생명조차 없었다.

다른 둥지에는 가득히 쌓여있던

금은보화도 술도 고기도 없었다.

“한발 늦었나보군.

어쩌면 그녀는 자네와 헤어지자 마자

바로 유희를 즐기러 갔을지도 모르겠어.”

드래곤이 즐기는 유희라.

사람을 만나고 자신을 연기하는 것.

“왜, 환멸했는가? 우리 드래곤들에게?

필멸자들의 감정을 가지고 노는

탐욕스러운 불멸자들에게?”

“이제와서 화낼 기운도 없습니다.

전생에 이미 다 화냈습니다.

그녀에게 못 들은 답을 듣는다.

쭉 그런 생각 뿐이었습니다.”

내 말을 들으며 삐뚜름한 표정을 짓던 그는

이내 크게 웃고는 소리쳤다.

“그래야지! 내가 선택한 인간이라면

그 정도는 돼야지! 포기하지 말게나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있으니.

자네도 아직 어리잖나?

그녀가 사라질 일은 없으니

계속 찾으면 되지 않겠는가?

“그렇네요. 여기서 드래곤식 마인드를 깨닫고 갑니다.”

이제 다른 여행을 준비할 시간이다.

선원들은 바로 떠니지는 않겠지만.

2주가 지나고 돌아가는 배에는

절반 정도의 선원만 남아있었다.

“저들이 이곳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모르지. 잊을 수 있을지 아닐지.

그리고 누군가처럼 죽고 나서도

잊지 못해 다시 찾아올 수도 있고.”

“낭만적이네요.”

그 후의 여행은

하나하나가 이야기가 될 만한 흔한 여행이었다.

영겁의 세월동안 한 열차 내에서

서로와 헤어지기 싫어서 한 몸이 된 사람들이 있었다.

기생생물에 감염된 소녀와 함께 살아가는 소년이 있었다.

흡혈귀를 주인으로 모시며 살아가는 메이드가 있었다.

배척 당하는 반요와 사랑하는 무녀가 있었다.

화성에서 온 외계인과 사랑하는 군인들도 있었다.

“어엿한 사내가 되었구나.”

“뭐, 그때는 잘 쳐줘봐야 소년이었으니까요.”

갑자기 왜 이렇게 뜸을 들이시는 걸까?

말주변도 없는 사람이.

“지금까지의 여행이 어땠는가?”

“나름 즐거웠습니다.

괜찮은 선장도 있었고, 여러 사랑이야기도 들었고..또-“

“나는 진지하게 물어보고 있는걸세.

그 많은 경험을 하면서도 느낀게 없단 말인가.

무수히 많은 아름다운 여인들부터 시작해

산과 바다를 메울 정도의 제화,

듣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신비로운 야사까지.

이것들을 보고도 왜 느끼지를 못하는가?”

그깟! 파충류년이 뭐가 좋다고!

인간따위, 드래곤과 이루어질리 없잖은가!”

그가 이리 감정을 내비친 적이 있던가.

“자네가 이런다고 그녀가 알아주기나 할까?

일부러 자네를 위해

내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보여주었거늘

왜 알지를 못하는가, 왜!”

늘 상상하던 끝이 벌써 찾아온 것일까.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래 이제는 그만둘 때다.

이 의미 없는 여행도. 그리고..

이 멍청한 드래곤에게 진실을 알려주자.

“저도 묻고 싶은게 있습니다.

아니 묻고 싶은게 있어.”

“뭐라?”

항상 굼근했었어.

“너, 킬바인 산맥에 사는 드래곤이 아니지.”

“..”

그래 킬바인 산맥에 사는 드래곤이라면

빈말로라도 그곳의 숲이 아름답다 하지 못하리라.

애초에 그곳은 돌 밖에 없는 곳인데.

“그리고 산에 산다는 드래곤이

그렇게도 바다 속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

드래곤은 둥지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다면서.”

한참을 멍하니 있던 녀석은

모든 것을 포기하는 듯한 심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여행을 하며

만난 이들과 닮았다.

“..그래, 킬바인 샌막에 사는 녀석은

항상 둥지 밖으로 싸돌아 다니거든.

예전에 헤어진 여인을 잊지 못해서.

찾아가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면서도

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가끔 미친듯이 날뛰곤 한다.

참 드래곤 답지 않은 녀석이야.”

그런 것이었나.

“그래도 보물들을 끔찍이 아끼는 녀석이니 모르지,

너가 가져다둔 그 반지를 보고

이번에야 마음이 바뀌어 결심을 할지 어떨지.

그 녀석 기억력은 좋거든.”

서로 힘겹이 말을 이어 나갔다.

“..언제부터 의심했느냐.”

“너가..올리비아를, 셀리아라는 이름을 듣고

지은 표정을 봤을 때부터였어.”

“하..하하 그딴 실수로 들켜버리다니.

그럼 처음부터 들켰었던 거구나.”

나도 놀랐다. 너가 그 이름을 기억했음을.

“왜? 왜 알자마자 바로 잡지 않았느냐?

바로 너의 눈 앞에 있었는데.”

“그때는 확신이 없었고,

그 후에는 너가 왜 숨기는지 궁금했으니까.”

녀석은 웅얼거리면서 말했다.

쉽사리 말하지 못했다.

“사람의 수명을 늘리지는 못했다.

하지만..하지만 사후에 장난질을 칠 수는 있었지.

그래도 처음에는 반신반의였다.

그리고 그대가 다시 태어난 것을 알게된 것도

수년 후.

미친 드래곤을 찾기는 힘들지만

미친 사람을 찾기는 쉽더구나.”

소문이 쫙 퍼졌어.

한 미친 소년이 드래곤의 둥지만을 찾아다닌다는 소문이.

“포기시키고 싶었다. 타의가 아닌 자의로.

더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가 이루어질 수 없을 거라는

다른 이들의 사랑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 놈의 남자는

어찌나 한 여자를 잊지 못하고 계속 찾아다니는지.”

환멸했느냐? 환멸했지?

그렇게 물어보고 그 드래곤은 모습을 바꾸었다.

금빛 눈을 가진 내가 알던 모습으로.

“이제는 절대로 그대의 삶의 개입하지 않으마.

그래,

불멸자와 필멸자가 만나서는 안 되는 거였어.

그럼 안녕히,

내 오랜 유희이자 유일하게 두번이나 경험한 유희여.”

잡아야한다.

이제와서 놓칠까보냐.

이미 한번의 삶을 너에게 바쳤는데.

“잠깐! 약속을, 그 맹세를 기억해줘.”

“뭐? 내가 그대와 무슨 약속을 했다고 그러느냐?”

“분명 너에게 반지를 주었을 때 맹세했을거야.

하나의 소원을 이루어주겠다고.

여행과는 별개로.”

드래곤의 맹세는 필멸자와는 달리

어떻게 해서든 지켜야 하는 것.

“이제와서 무슨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냐.

나는..이미 한번 너를 버렸는데..”

“그 때 듣지 못한 대답을 들려줘.

나를.. 나를 사랑했어?”

뭐?

이..이..

“이 미친 새끼야!

평생을 같이 남아달라고 할 수 있을텐데

뭐? 사랑했어?

드래곤의 소원이면 나를 죽일 수도 취할수도 있는데

그깟 대답이 뭐가 중하다고!

너를 버린 파충류의 의중이

뭐가 중요하다고 그런 말을 하는거야!”

몇번을 몇번을 미친듯이 소리친다.

너는 항상 그래왔다.

항상 다른 감정을 앞세워 답을 피해왔지.

이번에는 꼭 들어야겠다.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어.”

비가 내리는 것은 눈물을 가리기 위함이라.

“으흑..그래.. 드래곤은 욕심쟁이거든..

너를 죽기전에도 죽고나서도 가지고 싶었어.

영원토록 다른 것에 눈길을 주지 않는 모습을 보며

나도 여자를 바랬어.

그래..사랑했다. 사랑했다고 이 바보야!”

“그래, 그러면 우리의 삶이 거짓이었을지언정

감정만은 진실이었구나.”

혹시 다시 한번 내 마음을 받아주겠어?

울던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었고

안아줄 수 있었다.

“드래곤은..욕심쟁이야.

이번에는 놓지 않을거야.

다시 너가 죽고나면 같이 죽어서라도 쫓아갈테니까.”

그리고 언제나 이종간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났을테지만..

어떤 시골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 노부부가 있었다.

아내는 기이할 정도로 늙지 않았지만

그들은 항상 행복했다고.

그리고 언젠가 때가 된 순간,

하나의 실로 자신들을 묶은 한 부부는

한날 한시에 서로를 바라보며 영원히 잠들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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