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많이 잊혔지만 1960년~1970년대에 "욕쟁이 스님"으로 유명한 분이 계셨다.
화엄법사(華嚴法師) 춘성(春城 1891년 ~ 1977년)스님이 바로 그분.
기골이 무척 장대하여 깡패나 경찰들도 스님의 위세에 눌렸을 정도.
그의 기행문을 알아보도록 하자
1.
지하철을 타던 중, 예수쟁이가 나타나 그에게 '죽은 부처 말고 부활한 예수를 믿으라'고 하자,
스님이 그들에게 부활이 뭔지 물었다.
이에 예수쟁이들은 부활이란 죽었다 살아나는 걸 뜻한다고 답했는데,
그러자 춘성스님은 "그렇다면 너희들은 밤에 죽었다가 아침에 살아나는 내 ㅈ을 믿어라. 내가 살면서 죽었다 부활하는 것은 ㅈ밖에보지 못했다.
늬들이 말하는 "부활"이 죽었다 살아나는 것이라고 했으니 내 ㅈ을 믿어라!"고 답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은 스님의 말에 빵터졌고, 예수쟁이들은 그 말에 당황해하며 그냥 가버렸다고 한다.
2.
하루는 제자가 스님에게 질문했다.
“스님 백척간두에서 다시 한발을 더 내디면 그 다음 경계는 어떤 것입니까?”
“야 이놈아, 내가 떨어져 봤어야 알지”
3.춘성 스님이 입적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후학이 스님에게 물었다. "열반에 드신 후에 사리가 나올까요, 안 나올까요?" 스님은 "필요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후학이 다시 물었다. "스님, 사리가 안 나오면 신도들이 실망할 터인데요" 라고 하자 춘성 스님 왈
"시발 놈의 자식아! 신도 위해 사냐?"
4.
6.25전쟁 동안 스님이 떠나지 않고 지켰던 망월사. 전쟁이 끝나고 나자 급히 보수할 곳이 생겨서 사찰 근처의 나무 몇 그루를 베어 보수를 하다가, 산림법 위반으로 경찰서에 끌려가 조서를 받을 때다.
경찰이 본적을 물었다. "우리 아버지 자x(신두)".
경찰이 주소를 묻자 "우리 어머니 보x"라고 답했다.
5. 그는 이불이 '부처를 멀리한다(離佛)'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하여 평생 이불을 덮지 않고 살았는데,
한번은 절로 수행하러 온 사람들이 추위를 견디다 못해 온갖 값비싼 이불을 반입해 들어오다가
춘성에게 들키자
"수행하는 자가 따뜻한 잠자리를 가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야 이 놈들아! 그거 당장 내놓거라!"
라고
일갈하고는 모두 불태워 버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스님에게 반항하지 않았다.
6.6.25 전쟁이 터지고 3일만에 수도 서울이 점령당했다. 너도 나도 살겠다고 피난 가기 바빴다.
스님들이나 수도자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 역시 살기 위해서 피난을 떠났다.
그러나 춘성 스님은 몇명의 상좌들과 수도자들을 데리고 의정부 망월사를 지키고 있었다.
1953년 6.25 전쟁이 휴전하고 피난을 간 스님들이 되돌아왔지만 나 혼자 살겠다고 도망친 것이 죄스러워서 춘성 스님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춘성 스님은 되돌아온 스님들에게
"야 이 개 x같은 놈아.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는구나. 살아서 반갑다"
라며 반가워하였다. 한편 일부 스님들은 혼자 살겠다고 도망간 스님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된다고 했지만 춘성 스님은 언급하지 말라며 불문율에 붙였고,
이후로 누구도 혼자 도망간 스님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