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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정글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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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10시 어제보단 이르다. 남들은 슬슬 잘 준비를 하는 시간 난 잠에서 깬다.. 


 익숙한 뻐근함.. 전날 외출을 한 뒤 롤을 해서 그런지 몸이 평소보다 더욱 무겁다. 뭐에 홀린 듯이 컴퓨터 전원을 누르고 롤 클라이언트를 킨다.


 ‘조씨육성아이디’ 하늘이 버린 저주받은 아이디.. 하지만 진짜 저주받은 건 내 아이디가 아닌 5년간 매일 15시간동안 켜져 있어야 하는 내 컴퓨터일 것이다. 자다 깨서 몽롱한 채로 개인/2인 랭크 게임 버튼을 누르고 큐를 돌린다.


 손풀기 일반한판? 그런 건 내게 사치다. 내겐 시간이 없다. 얼른 마스터를 찍어버리고 이 지긋지긋한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 내 유일한 롤 목표.


 수락버튼을 누르고 픽 창에 들어가자 우리 팀의 탄식소리가 담긴 환청이 들린다. ‘아.. x발..’ 이퀄라이저 깔린 내 전적 보지 말아 줬으면..


 애써 그런 생각들을 무시하고 팀원들 닉네임을 드래그 후 Ctrl + c, 그리고 미리 켜놓은 Fow 전적검색 사이트에 Ctrl + v 후 엔터.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 통계를 토대로 벤픽을 지휘한다면 승리는 따놓은 당상이다. 지금만큼은 DRX 씨맥 감독에 빙의해 우리 팀 전력분석에 들어간다.


 탑.. 가렌만 289판 승률 53퍼.. 최근전적 2연승후 3연패.. 불길한 기운이 느껴진다. 협곡에서 이 친구를 건드리는 순간 육두선인의 모습을 한 신성왕 가렌의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하지만 잘만 달래 게임에 집중하게만 시킨다면 1인분 이상은 해주는 친구임이 틀림없다.


 미드.. 모스트123에 키아나, 탈론, 판테온. 정글하는 입장으로서 너무 고마운 친구다. 이번 판 미드의 어디까지 핥아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자주 보던 이퀄라이저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 이 친구는 5분 안에 게임을 끝내는 친구였다. 상대가 되었든.. 우리가 되었든.. 전적에 20분이 넘어가는 게임이 없었다. 게임 속 게임 ‘정글 누가 먼저 오나’ 게임을 하는 친구였다. 하지만 난 이미 미드의 개가 되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개의치 않고 바텀의 전적을 보는데..


 어라? 왜 서폿이 없지? 안타깝게도 이번 픽에선 우리 팀에 서폿 유저가 없었다. 거기에 우리 팀 원딜은 228판 115승 113패 다이아 현지인. 만약 게임이 이대로 시작된다면 바텀에선 사이버 토론현장이 열린 채로 게임이 끝날 것이다.


 ‘어쩌지.. 닷지 해야 하나’ 잠시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3포인트와 5분의 시간낭비.. 어떻게 생각하면 별거 아니지만 한시가 바쁜 나에게는 그럴 여유 따위 없다. 더욱이 나는 지금 승급전이다. 강등을 발판삼아 다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란 말이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던 중 희망의 불빛이 보였다. 서폿에 걸린 친구의 전적에 노틸러스가 있는 것이었다. 6판 승률 50퍼 kda 2.18 나쁘지 않다. 걸어볼만 하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엘리스 벤을 하던 그 때 고요하던 채팅창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 뭐야 서폿이네? 혹시 서폿하실분 있나요? 저 탑 유저라 서폿 잘 못함 ㅋ” “....”


 30초간의 정적 기다리다 지친 서폿은 체념한 듯 서폿 픽을 하려는 것 같았는데 잠시만 세나? 다급하게 전적 창을 뒤져본다.


 이런 미1친놈을 봤나 세나 2판 0% kda 0.89 이기긴 글렀다. 첫 번째 픽부터 조진 것을 알아차린 친구가 있다면 닷지 해주겠지. 하지만 거짓말처럼 하나둘 씩 픽을 하기 시작한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벤픽은 계속 되었고 상대팀 픽은 탈론, 렉사이가 나왔다. 미드 2:2에 힘을 싣고 그 후 바텀이나 탑 3 or 4인 다이브구도를 보는 픽.. 쉽지 않다.. 벌써부터 030세나와 옐로우슈즈만을 들고 있는 미드가 눈에 들어온다.. 그래도 아직 희망을 놓긴 이르다. 상대팀 미드가 개 버러지 탈론에 구데기 렉사이면 이길 수 있다. 불안한 마음을 추스르고 벤픽 창을 다시 보았다.


 다음 픽은 우리 팀 원딜과 탑. 아펠리오스가 벤 되어있는 상태에서 1티어 미스포츈을 한다면 이 게임 걸어볼만 하니 시2발! 노머고가 떴다. 진정하자.. 잘 큰 노머고만큼 까다로운 챔피언이 없기 때문에 내가 애지중지 키울 키아나 or 판테온 or 탈론과 함께 바텀을 판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탑은 예상했던 대로 점화 가렌.. 가렌친구야.. 장인의 노련함을 보여줘!


 그렇게 우리 팀 3픽까지 픽을 마치고 상대팀 픽 차례가 돌아왔다. 쓰레쉬와 카시 픽.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커즈를 1등으로 만들어줬던 카시 렉사이의 미친 시너지, 부동의 서폿 적폐 쓰레쉬에 어디로든 로밍다니기 쉬운 탈론.. 저쪽은 이번 게임에 전 재산을 건 게 틀림없다. 절망에 빠져있던 그 때 우리 팀 탑이 한마디를 꺼냈다. 그래 너도 알고 있었구나.. 이 게임이 벤 픽부터 답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애초에 만나지 말아야 했던 것을.. 그런데 예상과 달리 이 녀석은 내 머리를 울리는 미2친 소리를 하고 있었다.


 "아.. 탑 카시네 ** 정글님 탑갱 많이 좀 와주세요. 전 잠시 담배 좀 피고 옴 도핑ㅋ” 


 하.. 저 자식은 가렌 픽하는 것과 상대 탑 보는 것 말고는 생각이란 것을 안하는 놈이구나. 호응 수단이 없는 가렌으로 갱을 많이 와달라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이냐.. 더군다나 카시가 아펠리오스를 벤하고 저 쪽 5픽이 모데카이저를 벤 한 것으로 보아 원딜 카시가 분명한데 왜 저런 헛소리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각종 나쁜 언행과 함께 물어보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참아야지.. 하마터면 내가 승급전인 것도 까먹고 되돌리지 못할 채팅을 할 뻔했다.


 그리고 나와 우리 팀 미드 픽 차례가 오고 그마저 이상한 픽을 하면 주저없이 닷지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상황 우리미드는 불행중 다행으로 키아나를 픽했다. 


 이제 내 픽만 남았는데.. 나까지 ad를 해버리면 올ad가 되버려 상대 탑이 괴물이 될 픽을 하고 끝도 없는 방어템만을 갈 것이다.. ap이면서 탈론, 렉사이의 카정에 안당해 주고 갱킹은 강력하며 이니쉬도 좋은 챔피언이 뭐가있을까.. 답은 하나뿐.. 포식자 그라가스다. 이 게임 내가 집도한다. 라이엇의 견제로 이러한 수렁에 빠졌지만 난 절대 개의치 않는다. 난 마스터를 찍고 다른 의미있는 일에 전념할 몸이란 말이다. 날 이제 그만 놔줘 라이엇.


 그리고 상대팀의 마지막 탑 픽만이 남았는데.. 탈론, 렉사이, 카시, 쓰레쉬 좋은 조합이지만 강한 이니쉬를 걸기엔 시야를 먹고 걸어야하는 제약이 있다. 이즈리얼, 세나로 포킹과 유지력을 둘다 잡고 그라가스 키아나 가렌으로 한번에 덮치면 아무것도 못할 조합. 할 수 있다. 현지인의 힘을 보여주자 친구들 우리는 팀이다. 그리고 기도하자 제발 상대팀 탑 개벌레 챔프 하길! 하늘이시여! 제발!! 세트. 시빨 누가좀 닷지해줘 못 이겨 이거 진짜로.. 얘들아.. 얘들아.. 얘들아?? 3..2..1..


 나는.. 오늘도 정글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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