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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롤판의 “페르소나 실험”은 어디까지 왔나

자유6년 전be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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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스포츠의 출발점을 논할때, 가장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게임은 누가 뭐라해도 스타크래프트일 것입니다. 그 스타리그의 역사에 있어서도 2007년은 참으로 특별한 해입니다. 김택용이 마재윤을 잡았던 년도 이기도 했고, 택뱅리쌍 시대의 서막을 알리기도 했으며, 중계권이 협의되고 프로리그 주 5일제가 정식적으로 자리를 잡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무렵, 페르소나가 EVER 07 스타리그의 공식맵으로 채택됩니다.



 

[2007 에버배 스타리그의 공식 맵 Persona, 스타팬이라면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페르소나라는 맵은 지형만으로 놓고 봤을때는 별 문제없는 힘 싸움 맵으로 보이지만, 이 맵에는 곳곳에 중립 다크스웜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다크스웜은 해당 지역내의 모든 원거리 공격을 무효화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근거리 공격을 주로 삼는 저그에게 있어서 매우 호전적인 요소였습니다. 여기에 테란 대 테란전에서는 다크스웜의 존재가 서로의 공격을 상쇄시켜주는 역할을 하면서 서로 무한 잠그기를 하게되는 지루한 양상의 경기도 만들어 냈습니다. 평균 스타크래프트의 한 경기는 10분에서 20분사이인데, 이 곳에서는 74분동안 스타리그 최장시간 경기도 나오게 되었습니다.


“왜 페르소나에 중립 다크스웜이 쳐지게 되었나?”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테란 대 저그의 경기양상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근 1년넘게 테란과 저그의 양상은 “원배럭 더블커맨드 대 3해처리”가 주구장창 나오는 판도였습니다. 간단하게 롤로 비유하면, 1년 내내 탑라인에서 레넥톤과 쉬바나만 나왔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군요.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는 2001년 이후로 단 한번도 밸런스 패치가 이뤄지지 않은 게임입니다. 선수들은 몇 년간의 연구 끝에 경기를 이기기 위한 최적의 빌드, 조합, 운영을 찾아내기 시작했고, 결국 메타의 고착화가 된것입니다. 그러나 맵퍼들은 부동하는 스타리그의 메타에 변화를 줘보고 싶었습니다. 페르소나의 제작과 함께 메타를 바꾸기 위한 도전적인 선택, 일종의 “실험”을 단행한 것이죠.

그러나 결국 “페르소나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일부 프로게이머들은 공개적으로 페르소나의 밸런스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맵과 맵퍼를 디스했고 지루하고 일방적인 경기양상을 보던 유저들 역시 불만을 성토해냈습니다. 결국 페르소나는 한 시즌만 쓰이고 교체되게 되며, 이때를 기점으로 공식맵들도 더 이상 독특한 시도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메타를 바꾸려는 노력보단 기존의 선수들이 원하는 밸런스를 5:5로 맞춰주는데 더욱 주력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스타리그는 2007년을 기점으로 고착화가 더더욱 심해졌고 당연히 그 이후의 밸런스 패치 또한 없었습니다. 이 무렵부터 정상권에 진입한 이영호, 이제동, 김택용 등은 스타1 리그가 끝나는 2012년까지도 최고의 자리에 위치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2017년, 스타크래프트가 리마스터 될 때 블리자드는 전 프로게이머들이 밸런스에 대한 피드백을 요청했을때도 그들은 밸런스의 조정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고착화가 된 게임에서 더 이상의 진화는 불필요하다는 의견들이였고, 블리자드는 그들의 바램대로 조금의 밸런스 패치 없이 리마스터를 출시하였습니다.

 

라이엇 게임즈의 끊임없는 “페르소나 실험”

지난 주, 레딧을 비롯한 해외 롤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될 만한 영상이 올라왔습니다. 북미의 전설적인 원딜 더블리프트가 그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꾸준히 진화하는 게임의 이면 (The Downsides of a Constantly Evolving Game)” 이라는 클립은, 최근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 롤의 메타와 밸런스에 대한 더블리프트의 솔직한 심경을 담아냈습니다.

이 영상에서 더블리프트는 너무 잦은 패치와 밸런스의 변화가 프로들에게 적응할 기회를 주고 있지 않다고 얘기합니다. 메타 적응을 위해 필요한 지나치게 긴 스크림 시간 때문에, 프로게이머들이 더 많은 컨텐츠를 만들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는 얘기와 함께 말이죠.


더블리프트가 말하는 비디오 게임의 변화는, 사실 기존의 전통적인 스포츠들이 추구하던 방향에 비해 말이 안될 정도로 진보적입니다. 축구 골대의 길이를 2주에 한번씩 패치를 통해서 바꾼다고 생각해봅시다. 공격적인 축구를 하는 팀들에게는 대환영이겠지만 수비위주의 팀들은 당장이라도 보이콧 선언을 할지도 모르겠죠. 혹은 시즌 도중에 야구공의 반발력을 늘린다면? 농구게임에서 농구공이 두개가 된다면? 팀들부터 시작해서 팬들, 그리고 경기를 중계하는 미디어나 그 외에 스포츠에 이해 관계가 있는 많은 곳에서 심한 반발심을 느낄 것입니다.

더블리프트의 유튜브 비디오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날의 다큐멘터리 “세계를 설명하다(Explained)”의 최신 에피소드에서는 이러한 e스포츠의 독특한 면을 일반인들의 눈으로 담아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에 응한 라이엇 게임즈의 e스포츠 디렉터 “Riot Chopper”는 리그오브레전드의 이스포츠 시스템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와 농구를 비교하자면, 라이엇은 농구를 발명한 창시자이자, 리그를 주관하는 NBA이고, 그것을 유통하는 ESPN이다. 세가지의 역할을 한번에 다 하고 있는 셈이다.”



창시자이자 주관사이자 유통사. 비단 라이엇 게임즈 뿐만 아니라 e스포츠화를 성공시킨 모든 게임들이 이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오버워치 리그에서부터 최근 e스포츠로도 성공을 꿈꾸는 포트나이트까지, 게임사들은 그들이 가진 e스포츠 팀에서 리그의 시스템과 일정을 관리하고 있고 그들의 의도에 맞춰서 많은 것들을 컨트롤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1년전 스타리그가 게임 제작사인 블리자드의 간섭없이 온게임넷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던 것과는 다르게 말이죠.

이는 e스포츠와 전통적인 스포츠의 가장 큰 차이를 부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전통적인 스포츠에서 규칙을 마음대로 바꾸려면 수많은 이해관계에 놓인 조직들을 설득시켜야 할 것이며, 거기에 따른 시간과 비용, 그리고 날카로운 반응들도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는 이미 과거에 고착화가 불러올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2014년에 잠시 겪었습니다. "노잼톤과 또바나" 같이, 당시 “고정픽”이라고 부를 수 있는 챔피언들이 그 어떤 때 보다 많았던 시즌이였고 이에 따른 사람들의 원성섞인 불만도 심심찮게 나오던 해였습니다.


LCK 및 롤챔스, 2014시즌 픽률 65% 이상 챔피언의 갯수
2014 윈터 4 – 엘리스, 애니, 루시안, 리 신
2014 스프링 6 – 리 신, 쓰레쉬, 카직스, 룰루, 레넥톤, 쉬바나
2014 썸머 5 – 리 신, 카사딘, 쓰레쉬, 코그모, 룰루
2018 썸머(진행중) 2 – 녹턴, 조이


라이엇은 이러한 고착화를 이겨내기 위해 프리시즌에 대대적인 개혁을 함은 물론, 2016년부터는 미드시즌 업데이트를 통해 프리시즌만큼의 대격변을 선보이면서 유저들과 게이머들에게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합니다. 마치 주기적으로 새로운 “페르소나 실험”을 하는 셈이 된것입니다. 팬들과 게이머들은 이에 익숙해 진 것처럼 보였으나, 이번 2018시즌에는 그 실험의 주기가 너무나도 빨라져서 팬들뿐만 아니라 프로게이머들 마저도 이 변화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혹자는 적응력 또한 좋은 게이머 및 게임단의 기준이라고 얘기합니다. 얼마나 새 메타를 빨리 파악하고 그것에 맞는 최고의 전략을 가져오는 것이 강팀의 필수조건이 되버린 것이죠. LCK를 휩쓸고 있는 그리핀이 가장 좋은 예가 될 수 있을겁니다. 그러나 정석적인 방식대로 승리를 쟁취하다 급격하게 무너지는 기존의 강호들이 무너지고 너무 빠른 변화속에 선수들의 전성기 역시 빠르게 소모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변화가 무조건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소리를 내다 : 진화한 e스포츠 속에서 발견한 또 다른 미덕

급변하는 유저의 입맛을 맞춰주기 위해 필요한 끊임없는 진화와 게임의 정석화를 위해서라도 어느정도는 필요한 고착. 이것의 중간점을 잡는 일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닐겁니다. 프로게이머, 게임회사, 일반 게이머, 거기에 e스포츠의 팬들까지 모두 만족시키는 합의점을 찾는 것은 e스포츠의 20년간의 역사동안 누구도 제대로 성공시키지 못했고, 앞으로의 미래에도 확답할 수 없는 난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라는 한 영화의 표제로 이 글을 마무리하기엔, 글을 적고 있는 제가 생각해도 뚜렷한 답이 생각나지 않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 주제에 대해서 얘기하는 이유는 뚜렷한 솔루션을 제안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이 주제를 토론되는 지켜보며 과정에서, e스포츠의 또 다른 가치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직접적이면서 투명한 소통입니다.

 



더블리프트가 올린 이번 영상은 따지고 보면 전례가 없던 행동이었습니다. 프로게이머가 매드무비나 하이라이트 등으로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영상을 올리고, 간혹 스트리밍 도중에 자신의 생각을 푸념하듯이 내뱉은 적은 있을지언정, 밸런스나 게임의 본질, 리그의 시스템과도 같은 거시적인 주제들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의견을 낸다는 것은 그 전까지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더블리프트의 시도는 많은 이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고, 앞으로 사람들에게 소비할 새로운 컨텐츠 영역을 제시하고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프로게이머”라는 독특한 직업을 정의해주는 새로운 방식이라고도 생각이 듭니다. 프로게이머는 선수이기도 하지만, e스포츠 판을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인플루언서(Influencer)이기도 합니다. 르브론 제임스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같은 각 종목의 간판스타가 SNS나 광고를 통해 팬들과 호흡하는 것이 기존의 스포츠의 접근이였다면, e스포츠 게이머들은 그것을 뛰어넘어 리그의 시스템과 철학, 그 외에도 많은 자신의 의견들을 거리낌 없이 내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쩌면 2007년과 2018년의 e스포츠사이의 가장 큰 차이일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지금의 이런 뚜렷한 의견 제시 자체는 11년전에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페르소나의 맵 제작자인 Forgotten_님은 페르소나라는 맵을 출시하면서 정성들인 제작 노트를 올렸습니다. (https://pgr21.com/?b=6&n=32178) 제작의도부터 레벨 디자이너로서 밸런스를 조정하려는 이유, 그리고 상세한 제작기까지 “페르소나 제작노트”는 그 어떤 글들보다 정성을 들여 쓴 글이였고 글을 읽은 많은 사람들의 호평과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습니다. 프로게이머들을 비롯한 그 당시의 여론은 “스타리그의 양산화”에 더 찬성하는 입장이였고, 결국 페르소나 제작노트는 그 이후에 어떠한 진전있는 피드백이나 토론을 남기지 못한채, 밸런스 조절에 실패한 맵퍼의 최후변론쯤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페르소나는 EVER07 스타리그 이후로 사용되지 않았으며, 맵퍼들의 제작노트 또한 이때 이후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2018년이 되어서 여론은 바뀌었고 사람들은 더 이상 스타리그에서만큼의 고착화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페르소나 실험”은 계속되고 있고,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 또한 진화했습니다. “게임이 급변해서 재밌다”라는 소위 밸런스 진보주의자들과, “너무 많은 변화가 게임의 수명을 깎는다”라는 보수주의자들은 서로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교환하며 토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한국보다는 토론 문화가 더 활성화된 서양쪽에서 나온다는 것이 조금은 부럽기도 합니다. ㅠ)

어떤 복잡한 현상에 대한 답을 찾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고려해야 할 여러 요소들이 있으며, 그것을 다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에 따른 미래를 예측하기도 힘들겠죠. 다만, 그 과정에 있어서 모두가 투명하고 깨끗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면, e스포츠는 그 만으로도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신경 쓰는 주제에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길 희망해봅니다.

 

 

*이 글은 OP.GG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고 있지 않으며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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