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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 사랑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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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때는 남중에서 공학으로 바뀐 1학년 때. 난 여자1도 모르고, 여자란 생물은 낯설고 어렵고 난해하고 이해하기 힘들고 다가오면 어쩔 줄 모르는 미지의 생명체 그 자체였음. 그래도 나도 남자라고, 미지의 생명체, 합 반 30명 중 16명 중 한 명에게 시선이 갔음.

이게 꽤 놀라운 일인 것이 난 여자가 다가오면 음소거 모드가 자동 발동되고, 다가오면 눈부터 사람과 허공 어딘가로 향하고, 말을 걸어서 대답을 할 때 3초에서 4초에 딜레이가 생겼기에 내게 여자는 굉장히 불편한 존재였음. 반대로 남성은 굉장히 편했고, 자연스럽게 난 더욱 남자와 소통을 중시하고 교감 활동을 했음.

그래서 학기 말 롤링 페이퍼나, 친구의 인상 같은 학급 이벤트에서- 미지의 존재들에게 나는 - '남자들과 함께 있을 때는 즐거워 보인다.' , '다가가기 어렵다', '다음 학기에는 친해지자', '잘 모름' 등등 이런 평가가 주를 이루었음.

나 또한, 같은 반 여자 애들에 평가에서 '알 수 없음' 으로 복사 붙여넣기함.ㅋ

그 당시 나는 여자에게 인기를 얻고 싶지도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았으며, 굳이 관계를 맺기에 껄끄럽고, 같이 있기 싫고, 내 공간에 들여 오지 않았으면 싶고, 걍 서로 닭과 소의 관계 정도로만.

그러니까, 같은 축사에서 닭과 소과 서로 교감 따윈 안 하고 지들 끼리끼리 밥 먹고 놀고 하는 그런 느낌으로 보내기만을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바랬음.

그런 어느 날. 1학기 내게 도움을 준 미지의 생명체 하나가 있었음.

다른 반 친구에게 교과서 빌리러 다른 반에 갔는데, 문 앞을 미지의 생명체 셋이 막고 비 도덕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음.

문 막고 지들 끼리 대화하며 통로를 막아, 두 개의 문중 하나의 문을 막고 서서 원활한 인구 이동 활동을 저해하고 있는 거임.

지금이라면 '이노오옴!' 할테지만, 당시에 나는.

'아. 어쩌지?'

반대 쪽 문으로 가면 될 것 같지만, 그 곳은 미지의 생명체가 자신의 터전을 라인이라 문을 넘어서도 친구가 있는 좌측 끝 모서리 쪽으로 향하기가 굉장히 임파서블했음.

'아. 어쩌지?'

그저 나는 멍하니, 저들의 반 사회적이고 비 도덕적인 행태가 끝나기를. 예비 종 울리기 전에, 제발 비켜주기만을 심적으로 빌고 또 빌었음. 초조하게 1분, 1초가 타들어가면서 내가 교과서를 빌릴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을 줄어가고... 애타는 심정으로 가만히 어서, 저 '매점 빵이 어쩌고' '연예인 누가 어쩌고', '김태희 어쩌고' 하는 무의미한 정보 교환이 끝나기를 기다렸음.

"야. 길 막지 말고 좀 비켜."

그때.

"애 못 지나가잖아." "어?" "아, 그래?" "아, 미안. 몰랐어."

같은 반 미지의 생명체 H가, 시원하게 내 문제를 해결 해줌.

"..."

얼떨떨하게 열리는 공간으로 빠르게 지나가고, 나는 친구에게 교과서를 빌릴 수 있었음.

H.

그래, 이 생명체가 처음으로 내게 '이성'이 된 미지의 생명체, 그러니까 여자임.

2. 이 친구, H는. 대다수의 쉬는 시간 그냥 혼자 엎드려 잠. 수업 성적은 상위권. 주변에 친구들이 꽤 있음. 매일 어째서인지 피곤해 함. 잠을 자지 않을 때는 반 애들과 교류를 하거나, 때때로 다른 반에 놀러감. 대외적인 사교 관계는 두루 넓고, 남자 여자를 가리지 않고 친한 친구가 많음.

이게 한 달 간 내가 관찰을 한 결과였음.

당시 나는...'벨코즈' 같은 성향이 있었는데, 일단, 문제를 발견하면 그것에 원인, 작용, 반작용, 해결법을 차례로 마인드 맵을 만들고 처리했음.

지금은 '아 시~발' , '또 뭔데 시~발'하고 처리하지만ㅋㅋ

인물 적인 관찰이 끝나고, 내 머릿 속 카데고리에서 'H' 생명체의 대략적인 분석이 끝났음. 보통이라면 여기서 끝.

'그래. 그런 사람이군.'

이 정도에서 내 관심은 멈추는데-

'더 알고 싶어.'

호기심이 멈추지 않았음.

이 친구는 다이아몬드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미래가 온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중국의 경제 발전으로 세계 대국인 미국의 경제 상황에 영향을 주는 현재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까? 한국의 복지 정책에 대해서 과도하게 생각할까, 아닐까? 새로운 대통령이 누가 당선 되었으면 싶어할까?

내가 관심을 두는 분야에, H의 의견을 듣고 싶어졌음.

하지만, 직접 다가가는 것은 내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음. 그렇기에 지켜봤음.

평소 행동, 화법, 취향, 타인과의 대화로 정보를 습득하면서 혼자 유추하고 상상하고 상상하며-

"어, 커플!" "하지말라고!"

H가 처음으로 반 애와 사귀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둘이 사귀는 모습까지도. 그저 지켜봤음.

그리고 깨달게 되었음.

'아, 좆같네.'

지켜만 보는 것으로는 더는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3. 학년이 바뀌면서, 반이 바뀌었고. H는 옆 반으로. 나는 대학 입시 전문 반으로 이동이 되었음. 뭐, 꽤 공부는 치는 편이었고 당시에.

H에 반이 바뀌고, 주변에 분위기가 묘하게 입시 쪽으로 몰아가는 상황이었음. 자연스럽게 주변 분위기에 편승하며 나는 H에 대한 관심이-

줄긴 개뿔, 쉬는 시간마다 옆 반 가고 점심 시간 끝나면 H가 무조건 매점 가는 거 알고 점심 안 먹고 매점에서 빵 먹으면서 대기탐 ㅋ

그러다가, 소식이 들려왔음.

"H 깨졌대."

왜 깨졌는지 모르겠는데, 헤어졌다는 이야기.

'아.'

아...

'신은 존재하는 구나.'

매일 밤마다 기도를 하면 이루어지기는 하더라. 성당 잘 다니기를 잘 했다. 그래, 내가 헌금을 매주 얼마나 꼬라 박는데, 시~발 하느님 감사합니다! 헌금 만세! 황금 만능주의 만세!

존나 신나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음.

"......내가?"

내가, H의 남자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때까지도 난 미지의 생명체는 어려운 존재였음. 그래서- 연애학 어플, 연애학 글 조오나아 많이 습득하면서, 여성이 보는 채널, 드라마, 영화, 음악, 등등- 여자 관련 된 것은 죄다 머리에 때려 넣기 시작했음. 여자들이 좋아하는 이상형, 외모, 인기 스타일, 브랜드, 선물, 연애썰, 커뮤니티 기타 등등. 걍 여자 치고 나오는 것은 다 봄ㅋ

사회적인 입지를 얻기 위해서는, 주변의 평판이 중요하고, 그래서 나는 2학년 2학기부터 미지의 생명체와 교류를 시도하기 시작함.

폭 넓은 대인관계를 형성하는 H는 당여하게도, 우리 반에도 친구가 있었고 나는 그 친구부터 천천히 접근을 시도했음.

그렇다고 작업치거나 그런게 아니라- 끼리끼리 어울린다고, 이 친구도 존나 핵인싸라서 ㅋㅋ 반에서 인기인이었고, 내가 친한 친구도 이 친구랑 친했기에 나도 편승해서 자연스럽게 소통을 시작했음. 당연하게도 이 친구는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자는 친교주의 성향이라, 나도 꽤 가까워졌음.

그러면서 H와도.

"어...안녕?" "안녕? 오늘도 책?" "아, 어."

이 정도 대화가 가능한 상태까지 왔다-!

내게는 굉장한 진전이었고, 어쩌면.

'어쩌면 내가?'

그런, 우매한 착각을 품기 시작했음.

뭐, 중간에 이것저것 이벤트는 건너 띄고.

고백을 하고 싶었음. 내가 얼마나 관심이있고, 얼마나 지켜봤고, 내 마음이 어떠하고, 얼마나 간절한지. 절박했음. 굉장히. 직접 말하기는 힘들고, 나는 하나의 노트를 매일 일기쓰듯 편지를 적었음.

2학년 2학기, 나는 그 노트를 학기가 끝나는 날 건네줬음. 던지듯이 주고, 그저- 그저, 뭐라고 할지 궁금증과 의문이 가득한 채 누구보다 늦게 학교를 나섰고-

"......"

학교 옆 쓰레기 더미 위에 버려진 노트를 발견했음.

아, 그런 거야. 내 마음은.

4. 3학년 신학기. 애들 사이에서는 나와 관련된 이야기도 떠돌았고, H는 아무런 말이 없었음. 인사도 없었고, 그저-

'다시 처음으로.'

아니, 더 나쁜 상태로. 어디서 부터 잘 못되었고, 무엇이 틀렸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 굉장히 난해 한 문제. 학교와 주변 분위기는 수능에 대한 위기 의식을 강조했고, 어쩌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묻어둘 수는 없겠는데?'

내게는 그렇게 흘려 보낼 수 가 없었음. 답은 직접 대면 해야 하는 것. 그러나-

"야, H 누구랑 사귄대."

묻기도 전에, 용기를 내기도 전에 이미 H는 다른 사람과 연애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음. 내게 선택지는 '그래도 물어 보느냐', '아니면 그냥 없었던 일처럼 보내느냐'. 처음에는 그래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

저번과 달리, 어느 때와 달리, 평소와 달리, 너무나 즐겁게 웃는 얼굴을 보니까.

'시~발.'

잿 가루 뿌리는 짓 같아서 그저, 그렇게.

나는, 그때 담배를 처음으로 접하고, 술도 접하기 시작했음. 모의고사 제끼고 피씨방 가고. 걍 정시 본다고 중간, 기말 다 찍고 자고. 과제 버리고.

응, 타락했어.

성적 개판 나서 입시반에서도 2학기 때 내쫓기고ㅋㅋ

"너, 진짜 대학 안 갈 생각이야? 갑자기 왜 그래?"

선생님들도 애가 왜 이러냐, 늦 사춘기 왔나 이러고.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늦게 사춘기가 왔는지도.

시간은 간다고, 수능 날이 다가 왔음. 100일 쯔음 남으니까, 친구들도 잘 안 놀아주고..50일 즈음 되니까 전부 나름 공부를 하더라. 그래서 나도 하고 수능봄. 결과는 뭐 적당해.

중요한 것은 H가 1지망 떨어지고, 3지망에 붙어서 어디 대학 갔다는 정도의 소문.

'그렇구나.'

그런데 슬슬 3학년 2학기 끝나가는 때, 졸업식 날 또 들려온 소식이.

"깨졌대."

근데 보통 이 쯤에 많이 깨지긴 했어. 대학이 갈리고, 어쩌고 저쩌고 해서.

"...그래?"

듣자마자 나는 그냥-

"교실에 아직 있었네?" "어?"

바로 H가 있는 교실로 향했음. 반에 몇몇 사람 있는 것 같았던 것도?

"있잖아." "어?"

근데, 눈에 안 들어왔음.

"나 너 좋아해. 나랑 사귀자."

바로 고백했음.

"어어?"

당연한 반응이었음. 사귀던 남자랑도 대학 갈려서 헤어진 마당에, 갑자기 친하지도 않던 애가 와서 고백을 박는게. 그것도 2학년 때 그렇게 찼던 남자를.

"나?" "어." "나?"

이해가 안 가는 표정이었음.

"너...나, 알아?" "난 잘 알아." "......아니, 하."

어이 없다는 듯 쳐다보는 H에게 그때 내가 말 했음.

"다음에 보자."

그리고 그 날 졸업식이 시작 되었고, 더는 말을 섞지 못하고- 그렇게 고등학교가 끝이 났음.

5. 나는 서울에 대학이 참 많음. H가 있는 대학교에서, 내가 있는 대학교까지. 가장 흔한 대중 교통으로 2시간이 걸리는 거리였음.

나는 입학식을 검색하고, 거기로 갔음.

우리 학교 입학식? 알바노 ㅋ

아침 7시 30분에.

"어? 뭐야?" "어우, 청춘이다~"

이런 반응을 꿋꿋이 이겨내며, 기다렸음. 그리고.

"어?" "입학 축하해."

꽃다발과 테이크 아웃한 좋아하는 라떼 하나. 주고 돌아갔음.

주에 세 번. 아침에 좋아하는 안개 꽃이 섞인 계절 꽃다발, 라떼 때로는 초콜릿 때로는 자갈치 과자. 만날 때도 있고, 못 만날 때도 있고. 못 만날 때는 다른 요일.

주에 세 번 중, 만나는 경우는 주에 한 번.

"어..이거 좀 부담스러워. 안 그랬으면 좋겠어."

그렇게 거부를 당할 때도 있었고.

"근데 또 왔어?"

어이 없어 할 때도 있었고.

"너 이러지 마."

진짜 귀찮아 할 때도 있었고.

"부담스럽다니까."

정말 싫어할 때도 있었지만.

"어. 나 너한테 완전 호구니까, 그냥 받아. 그리고 그냥 기분 내."

나는 주에 세 번가서 한 번은 전달했음.

세 달 간 내리 그러니까, 학사 경고 통보가 오고 그랬지만-

"너, 근데 어떻게 내가 올 줄 알고 있는거야?" "응? 그냥." "???"

H는 어리둥절해 하기도 했음.

"내 시간표 어떻게 알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

그냥 대기 타는 거지 뭐. 그렇게 두 달 넘어가고 세 달 쯤 되었을 때. 이른 시간에 만났어.

"너, 너....헐."

7시 40분 쯤 됐나? 그 때 내가 서 있는 것을 보고 H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보더라. ㅋㅋ 그때 H가 총학 선거 인원 되어서 일찍 학교에 나오게 되었다고 하더라고.

"너, 이 시간부터 기다리는 거였어?" "응." "10시나..11시나...9시까지?" "응." "너..."

H는 말 없이 가만히 보다가, 갑자기 울더라.

"너, 세 달 동안 그런 거야? 진짜? 왜 그래?" "좋아하니까."

난, 여자를 몰라. 다른 여자는 전혀 몰라. 인터넷이고 뭐, 그런 걸로 많이 지식만 우겨 넣었지만, 존나 쓸모 없는 것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다가갈 수 있는 방법론. 그건 하나 밖에 없었어.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냥 기다리는 것 밖에 없잖아?" "내가 안 오면?" "안 오는 거지 뭐."

그리고 결론은.

"진짜 내가 그렇게 좋아?" "응." "그래, 그럼. 사귀자."

사귀게 되었음.

그리고 1년 반 정도 사귀고 헤어짐.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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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댓글로 했던 이야기 재탕이긴 한데. 시~발 좀 더 뚜렷하게 생각나서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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