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햇살이 창문을 통과해 들어온다. 빛은 열기를 달아오르게 하여 오직 뜨거운 공기만이 건물 안에서 순환하도록 만든다. 후덥지근한 열기와 찐득한 습기가 건물을 강타한다. 그리고 그 건물 안에는 건물의 주인이자 식당을 운영하는 아리가 있었다. 식당의 주인인 아리는 아무 손님이 없어 텅 비어버린 식당에 덩그러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열기를 잊고자 아리는 오른손으로 부채질하고 있었다. 누구도 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은 아리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오지 않는 식당에는 그 누구도 이 날씨에 자의로 열기를 들이마시고 싶지 않다는 결의가 꼬여있었다. 아리는 옷 사이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느꼈다.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을 손으로 한번 쓸고는 아리는 주방으로 향했다. 벽에 붙어 있은 냉장고를 열고는 아리는 냉장고 안으로 손을 뻗었다. 이내 아리는 무언가를 집었고 그곳을 빼내었다. 아리는 냉장고에서 꺼낸 물통을 가지고 싱크대로 갔다. 미리 설거지 된 컵 하나를 집었다. 컵에 물통에 있던 액체를 담았다. 주황색이 물결이 컵을 가득 채웠다. 아리는 컵에 담긴 오렌지 주스를 벌컥 마셨다. 그러나 오렌지 주스 하나쯤 먹는다고 당연히 시원해질 이유는 없었다. 아리는 끝없는 더위에 싫증이 나고 있었다. 그만 이 식당에 나와 시원한 곳이라도 떠나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리는 잠시 그것을 고민하다 이내 그만뒀다. 숨을 무겁게 만드는 습기는 옷을 입으나 마나 그 더위를 완전히 전달하고 있었다. 아리는 잠시 옷이라도 벗을까 고민하다 그것도 그만두었다. 아리는 식당 한가운데에 서서 한숨을 쉬었다. “하…내가 왜 이런 데에서….” 아리는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강렬한 햇살과 한결같은 습기에도 바닥은 그다지 뜨거워 보이지 않았다. 왜일까 오히려 아리는 그 바닥이 시원해 보였다. 아리는 별생각 없이 그 바닥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두 팔 두 다리를 쫙 편 채 마치 침대라도 되는 듯 누워버렸다. 누군가 찾아오면 그때 일어나면 되겠지 하고 아리는 생각을 멈춰버렸다. 생각보다 뜨거운 바닥에도 아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젠 일어서는 것 마저 지쳤다. 아리는 눈을 감았다. -드르륵 구미호 식당의 미닫이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아리도 정신이 들었으나 이내 무시하기로 했다. 지금은 너무나도 피곤한 몸이었다. 그러나 미닫이문을 연 이가 아리를 불렀다. “아리. 아리. 아리!” 아리는 여전히 비몽사몽 했다. 세상 모든 색깔이 꺼멓게 보였고 여전히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아리의 시선이 우연히 문을 연 사람에게로 갔다. 삿갓을 쓰고 상의는 없이 푸른 천을 두른 남자. 아리는 곧 그 남자가 누군지 알게 되었다. 아리는 본래 여우처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야스오?” “그래 나다.” 야스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그나저나, 옷 상태가 뭐야?” 아리는 자기 옷을 보았다. 땀에 흠뻑 젖어 옷은 축축 늘어져 있었다. 아리는 어색한 미소를 짓곤 재빠르게 주방으로 도망쳤다. 그런 아리를 본 야스오는 혼자 킥하고 웃었다. 잠시 후 옷을 갈아입은 아리가 다시 야스오 앞에 나타났다. “왜 온 거야? 내가 찾으려고 할 땐 귀신같이 안 보이더니.” 아리는 야스오를 째려보고 있었다. “자, 그건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주문받아야지.” 야스오의 뻔뻔한 얼굴에 아리는 한쪽 입꼬리만 올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결국 아리는 음식을 만들기로 했다. 잠시 후 그릇을 들고 온 아리는 야스오가 있는 식탁에 올려두었다. “자 이제 말해주시지?” 야스오는 째려보는 아리를 무시한 채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아리는 눈을 찔끔 감고 다시 말했다. “좀 말해줄레?” “좋아. 왜 내가 널 피해 다녔는지 말해주지.” 야스오는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그웬이 말하더군. 그때 웃을 수선 받은 후에 그웬은 나한테 아리를 피해 다녀 달라고 했어.” “뭐어!?” 아리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야스오는 킥하고 웃었다. “아마도 이런 이야기를 원했겠지. 네가 어떻게 그리고 왜 이런 곳에 식당을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웬은 아마도 충분히 만족하겠군.” “아니…잠시만. 그럼 그웬이 나한테 실을 주면서 일부러 쫓게 했다는 거야?” “그렇겠지. 꽤 재밌는 이야기인데? 꼬리 달린 여자가 흠뻑 젖은 채 식당에 누워 있는 꼴도 보고 말이야.” “으….” 아리는 창피한 듯 뺨을 붉혔다. 야스오는 혼자 웃고만 있었다. 뭐가 재밌냐는 듯 아리는 야스오를 째려봤고 야스오는 잠시 헛기침을 한 뒤 입을 열었다. “그럼. 이야기는 누가 전할까?” “난 싫어. 내가 왜 이야기를 전해해야.” “흠. 네가 전하지 않더라도 내가 전하면 그만이야. 네가 땀에 흠뻑 젖….” “그만.” “그래. 뭐. 그럼 내가 이야기 전하러 갈게. 아 그나저나 이거.” 야스오는 허리 줌에서 무언가를 집곤 식탁 위에 올렸다. 마개가 있는 대나무 통이었다. 야스오가 입을 열었다. “이건 술인데…음…꽤 비싼 거지. 장인이 만든 거니까.” 아리는 대나무 통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무언가 계속 당하는 느낌만 들었는데 갑작스레 선물이라니. 아리는 아리송한 기분에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따스한 기류가 심적인 영향을 받았을 무렵 야스오가 입을 열었다. “이걸로 얼굴 인사는 끝났네. 나중에 나 찾아보고 싶으면 찾아와. 그때는 안 피할 테니까.” “내가 널 왜 찾으러 가!” “전에는 찾으러 다녔으면서?” 야스오는 구미호 식당에서 나와버렸다. 아리는 덩그러니 놓인 식탁 위 대나무 통과 국수 접시를 보았다. 왜 일까 아리의 기분은 묘했다. 고마워해야 할지 싫증을 내야 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아리는 그런 자신이 한심한 듯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대나무 통의 마개를 열곤 술의 향기를 맡아보았다. 술의 향연이 그리움을 남기는 듯 했다. 아리는 한숨을 쉬곤 마개를 닫았다. 그러나 향기는 여전했다. 야스오가 떠난 자리에서도 그 자국이 향기를 내고 있었다. 아리는 그 향기를 들이마셨다. 묘한 기분이 풀리는 듯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찾아왔다. 아리는 혼자 고개를 젓고는 식탁 위에 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그러나 주방으로 걸어가는 도중에도 옷의 땀이 묘한 냄새를 내듯 뜨거운 땀이 심장에서 일렁였다. 어쩌면 그리움이 아닐지도 모른다. 가장 바라고자 하는 게 앞에 있었을지도 몰랐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