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들이 무성히 자란 숲속. 나무와 풀들과 태양의 빛이 합쳐져 따스한 초록빛 냄새를 내는 동안 한 여자가 숲을 걸어가고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스하게 느껴지는 숲속에서 야생동물이든 인간이든 서로를 주시하며 서로에게 위협감을 느끼지 않도록 거리를 둔다. 그중 동물인지 인간인지 분간하기 힘든 여자가 있었다. 바스타야 종족의 여자. 구미호 아리였다. 아리는 울창한 숲속을 건너고 있었다. 잡초든 기름진 토양이든 그것들을 밟아가며 발걸음을 옮겨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문뜩 아리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짧은 실이 풀들 사이로 눈에 띈 것이다. 분명 저렇게나 얇은 실이라면 풀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텐데 그런데도 자기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아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 실로 다가갔다. 너무나도 가벼워 한 잎사귀 위에 놓여 있는 실을 아리는 잡아당겼다. 그러자 아리는 공중으로 치솟았고 나뭇가지가 보일 정도가 돼서야 아리는 공중에 멈췄단 걸 느낄 수 있었다. 아리는 당황해하며 자신의 아래를 보다 그제야 자신이 그물에 묶였단 걸 깨달았다. 자신이 잡아당겼던 것과 똑같은 실로 된 그물이었다. “어…? 날 잡으려는 사람도 있나…?” 풀들이 흔들리며 드디어 무언가 잡혔단 걸 깨달은 그웬은 수풀에서 빠져나왔다. 원래 그물이 있던 자리에 선 그웬은 금은보화라도 찾은 듯 신나 보였다. “하! 드디어 잡았다!” 아래에서 들려온 발랄한 목소리에 고개를 내린 아리는 자신 아래 인간 여자가 있는 것을 보았다. 아리는 조용히 들리지 않게 혼잣말했다. “저건…뭐지…?” 그사이 그웬은 신나서 흥얼거리고 있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그웬은 천천히 뒤 돌아 그물을 내릴 실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웬의 뒤에서 누군가 착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 너 누군데 날 잡으려 한 거야?” 아리는 그웬을 향해 두꺼운 눈빛을 보냈다. 그웬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마치 햇빛이라도 받은듯 아리의 눈빛에 옴짝달싹 못 하는 뜨거운 열기 받고 있는 듯 했다. 그웬은 당황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하하….” 애써 무심한 척 웃어 보려는 그웬을 노려보는 아리가 입을 열었다. “너, 왜 날 잡으려는 거지?” 아리의 손엔 여우 불 3개가 둥둥 떠 있었다. 그웬은 웃어 보이며 상황이 더 나빠지질 않길 바라고 있었다. “그…그야….” “뭐? 나한테 현상금이라도 걸려 있나?” 그웬은 다급함을 느꼈다. 그웬은 바짝 손을 모아 붙이며 머리를 숙였다. “이…이야기를 해줬으며 해서…!” 아리는 그웬의 말에 눈썹을 치켜세웠다. “이야기…?” “야…야스오가 재밌는 이야기를 해줄 거랬어…!” 깃털처럼 그웬은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웬 공방을 운영하던 와중 야스오가 그웬 공방을 찾아왔다. 야스오는 웃을 수선 받고는 그 비용으로 지불해야 할 이야기를 아리가 대신 지불할 거라고 한 것이다. 결국 그웬은 야스오의 말에 따라 아리와 관계가 있던 야스오를 통해 실을 쓸 수 있었고 그 실을 통해 아리를 찾아왔다. 아리는 여전히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는 그웬은 약간 고개를 돌리며 눈맞춤을 피하려고 했다. “어휴…됐어. 이야기는 야스오한테 받아. 내가 수선 받은 게 아니잖아.” 그웬은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아리가 이야기해주길 온몸을 통해 보여주려는 듯 했다. 아리는 그런 그웬을 보고는 황당해하다 이내 그런 그웬이 재밌어졌는지 웃음을 터트렸다. “푸핫. 뭐야 어린 아이같이 떼쓰는 거 같아 보이네.” 그 말에 그웬은 뜨끔 해 하다 고개를 좌우로 돌곤 입을 열었다. “그…그럼 해주는 거지…?” “어…음…생각 좀 해봐야 할 거 같은데….” 석연치 않은 아리의 반응에 그웬은 애가 탔다. “제발…! 야스오가 정말 재밌는 이야기하라고 했단 말이야!” 아리는 재밌다는 듯 싱긋 미소를 짓고 있었다. “흐음…잠시만 공방 운영한다고 했지?” 그웬은 드디어 아리가 말해줄 거라 믿으며 눈을 밝혔다. “어? 어! 왜? 옷 수선해줄까!?” “흠…마침 내가 해진 옷 딱 하나가 있긴 한데…. 네 공방이 어디 있는데?” 아리는 그웬 공방의 위치를 듣곤 결심하듯 말했다. “좋아. 가는 길이니까 옷도 수선 할 겸 이야기 해줄게.” 그웬은 그 말에 신이 난 듯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아리는 그런 그웬이 어린아이를 보는 듯했는지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귀여운 걸 보며 아마도 모두 똑같이 미소가 지어지는 듯했다. 울창한 숲속을 지나며 아리는 그웬에게 대 몰락에서의 이야기를 해줬다. 그사이에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특히 야스오에 대해 자세히 들려주었다. 처음엔 냉소적이고 감정이란 찾아보기 힘든 태도였지만, 아리와 동행을 하며 야스오는 점차 인간적인면을 찾아갈수 있었다. 그러나 함께 일행을 하던 도중 아리는 흡정 욕구를 떼어낼 수 없어 홀로 활동하게 됐다. 그럼에도 둘 사이의 관계는 전혀 멀어지지 못했다. 불안정한 인간이 다시금 새로워 질 때 서로에게 느끼는 것이 분명하지 못했을지라도 감정이라는 것이 둘 사이를 밀착시켰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 야스오는 아리에게 이야기의 지불을 대신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웬은 혼자서 그런 생각을 해가며 아리가 해준 이야기를 되새김질 했다. 그리곤 이제 막 마무리된 옷을 들고 미닫이문을 열었다. “짠! 자 봐봐 완전 새것 같지?” 자기 솜씨를 뽐내려는 듯 그웬은 아리에게 수선된 옷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정말 새것처럼 옷은 윤기가 났다. 아리는 미소를 지으며 옷을 받았다. “재미있네. 남한테 이야기 해주는 것도 말이야. 음…혹시라도 생각나면 다시 찾아올게. 아 맞다. 너…그 실 있지?” “설마…야스오 찾아가게?” 그웬은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아리는 당황한 듯 말을 얼버무렸다. “하하…어 그러니까…음…네 말이 맞아.” 그웬은 재미있는 듯 방긋 웃고 있었다. “좋아! 이건 서비스!” 그웬은 방 한구석에 있던 거대한 실타래에서 실을 꺼내 끝을 잘랐다. 그웬은 실을 둘둘 말았다. 그리곤 그 실 말이를 아리에게 건넸다. “후후…나중에 이야기가 생기면 꼭 찾아와야 해!” 아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래…알았어. 하하.” 아리는 그웬 공방을 나오고 있었다. 그웬은 그런 아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고 아리는 한번 뒤 돌아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리는 돈을 받지 않고 이야기를 받는다는 그웬 공방에서 어쩌면 정말 그럴만한 의미가 있었는지 자신의 의심이 부끄러워졌다. 이렇게 이야기를 털어놓다 보면 속이 후련해지기도 하고 또…누군가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하는 것 같다. 아리는 한쪽 방향으로 흔들리는 실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흡정 욕구가 위험하더라도 꼭 만나서 인사라도 전하고자 아리는 야스오에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