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청소년이 된 한 여자아이가 타곤을 오른다. 살을 깎는 칼바람이 아이를 지나친다. 경사진 땅을 밟아가는 것조차 비틀거리는 나뭇가지였다. 보이지 않는 해를 대신한 달이 비추는 밤에 아이는 달빛을 받으며 그리고 추위를 등에 지며 땅 위 땅으로 발을 옮겨간다. 그 누구도 살아나올 수 없으리라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말하는 혹독한 추위와 가파른 경사에도 아이는 굴복하지 않았다. 아이의 옆에 썩지 못한 시체가 산에 달라붙어 있는것을 잘 알면서도 아이는 멈추지 않았다. 그보다 더 한것을 피하고자, 분노를 풀어내고자 하는 이유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직접 목도하고 있던 어느 한 이가 그 아이를 내심 응원하고 있었다. 아이는 점차 지쳐갔다.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터질 듯 했다. 높은 고도의 산소는 바닷속 금화 찾기였다. 점점 부족해지는 숨에 아이는 잠시 경사에 기대어 앉았다. 별들이 은은한 보랏빛으로 어두운 장막을 총총히 빛냈다. 점들 사이엔 실이라도 엮인 듯 깃털 같은 물결이 빛났다. 아이는 어느새 거의 다 다다른 정상에 자신에 대한 의문을 느끼지 못했다. “거의 다 다다랐어. 조금만 더 가면 되는 거야….” 아이는 자신이 혐오하는 자들이 듣지 못하도록 혼자 중얼거렸다. 자신 근처에 아무도 없지만, 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싶어 하는 아이의 바람이었다. 메마른 감정 속에서도 홀로 곡소리를 내는 한 감정만큼 자신을 불태우고 있단 걸 알고 있는 아이는 그것을 풀어내고자 다시금 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때 어디선가 타곤을 울리는 쩌렁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멈춰! 타나토스!” 그 말에 타나토스는 뒤 돌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아래에 자신을 향해 올라오는 한 이가 있었다. 레오나였다. “이단에 잠식 당한 것에 더해서 타곤 산을 오르는 행위까지 하는 건 네가 처벌을 어느 정도까지 받을 줄 알고 오르는 거야!?” 타나토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타나토스는 주위를 둘러보다 한적함이 드러나는 경치를 뒤로한 가파른 땅에서 자신의 옆에 놓여 있는 돌덩이 하나를 들어 올렸다. 꽤 어린아이에게는 버거울 만함 크기의 돌덩이를 타나토스는 무리 없이 들고는 레오나를 향해 아래로 던졌다. 레오나는 입을 앙다물었다. 돌덩이는 레오나를 향해 빠르게 낙하했다. 레오나는 방패를 들어 올렸고 돌덩이는 황금 방패에 부딪혔다. 부딪힌 돌덩이는 조각난 채 산 아래로 굴러떨어지기 시작했다. 레오나는 방패를 내리고는 다시 타나토스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둘의 소리 없는 추격전은 타나토스가 장막 너머의 세계에 도달하며 끝맺었다. 레오나도 장막 너머의 세계에 도착했다. 그리고 자신의 뒤로 하고 앞을 나아가는 타나토스를 멈춰 세우기 위해 소리쳤다. “이제 멈춰! 거기서 끝이야! 성위는 없다고!” 타나토스는 레오나의 말에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약간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당신은 성위도 아니야….” 레오나는 그 말에 발끈했다. 한 어린아이가 자신의 노고 끝에 성취한 성위라는 자격을 말 한마디로 무시했다. 레오나는 칼을 하늘 위로 높이 치켜세웠다. “하늘이 열린다!” 레오나의 말과 함께 하늘에서 거대한 태양 빛이 타나토스를 향해 내리쳤다. 태양 빛에 감싸져 있는 타나토스를 보며 레오나가 다시 소리쳤다. “거기서 끝이야!” 하지만 타나토스는 경직되지 않았다. 타나토스는 서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검은 아우라가 타나토스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레오나는 검은 아우라에서 내뿜는 죽음의 향연을 느낄 수 있었다. 레오나의 머리가 순간 저릿했다. “뭘 한 거지…?” 레오나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하지만 말은 타나토스에게 닿지 않았다. 둘 사이의 검은 아우라가 메꾸었다. 레오나가 천천히 뒷걸음칠 무렵 타나토스가 천천히 뒤 돌았다. 땅에서 보는 별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둘 사이의 거리는 두 별이 좁혀나가는 것처럼 점점 가까워졌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타나토스의 숨이 새어 나왔다. “내가…죽음의 성위야….” 레오나는 방패와 칼을 치켜세우며 전투 태세를 취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타나토스는 레오나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래…꼬마야…네가 여기까지 올라온 이유가 무엇이냐?” “복수하고 싶어요.” 타나토스는 숨을 고르고는 이렇게 말했다. “배은망덕한 솔라리들에게.” 타나토스의 안에서 하나의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살육의 감정.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앗아간 것을 다시 앗아가는 폭력의 굴레를 도맡아 이루는 원초의 폭력. 그것이 타나토스의 안에서 폭력의 끝에 불처럼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검은 실루엣은 미소를 지었다. “좋아…필멸자여…네가 새로운 성위다…죽음의 성위.” 다이애나는 거의 다 다다른 정상을 앞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다이애나 근처에는 안타깝게도 정상에서 끝맺음하지 못한 시체들이 산에 붙어 있었다. 다이애나는 한번 주위를 둘러보다 다시 정상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산에 붙어 있던 썩지 않는 시체가 산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썩지 않고 얼어있던 시체들은 하나같이 살과 뼈가 분리되어 산을 타고 보이지 않는 땅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다이애나는 눈빛이 흔들렸다. 곧바로 정상으로 전력 질주하기 시작했다. 다이애나가 정상에 도착했을 무렵 타나토스가 레오나를 궁지로 몰아넣고 있었다. 다이애나는 무기를 던져놓고는 타나토스를 향해 달려갔다. “타나토스…!” 레오나와 타나토스는 동시에 다이애나를 돌아봤다. 레오나의 눈빛에서 놀람이 드러났지만 타나토스는 달랐다. 눈빛이 흔들리고 검은 아우라가 천천히 걷히고 있었다. 다이애나는 어린아이에게 키를 맞추듯 무릎을 꿇곤 타나토스의 한쪽 손을 어루만졌다. 그리곤 타나토스와 대면하며 말했다. 불편함을 항상 어깨에 지고 다녔음에도 성위가 된 이후로도 한번도 솔라리를 향해 혐오감을 던진 적 없던 다이애나는 타나토스에게 미안했다. 억압당하는 신도들을 보고도 무시했던 자신이 미련했음을 다이애나는 털어놨다. 가슴에 오로지 하나밖에 남지 않던 살육의 감정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없는 것에서 시작된 감정은 천천히 누그러지고 요동치는 물결은 잔잔해지기 시작했다. “제발…타나토스…이게 네 모습이 아니잖아….” 타나토스는 달의 성위 앞에서 태양의 성위 보다 빛나는 눈을 볼 수 있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빛이 타곤 위의 별들보다 빛나고 있었다. 타나토스는 눈을 감았다 떴다. 검은 아우라는 완전히 걷혔다. 그리고 타나토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이애나는 눈 아래를 손가락으로 닦아주며 타나토스에게 말했다. “미안해…타나토스….” 타나토스는 다이애나의 손을 맞잡고 다이애나를 뒤따라 장막 너머의 세계에서 나왔다. 빛나는 별들 아래에 더 없이 빛나는 타고산의 정상 끝에 그보다 빛나는 둘이 타곤의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마치 별똥별이 지상에 떨어지듯 두 별은 타곤을 타고 물결처럼 흘러내렸다.
Ps. 이번건 좀 무거운듯… 혹시나 타나토스가 뭔지 궁금한 사람들은 검색 ㄱㄱ 스토리에 없던 얘를 추가한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