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오브레전드리그오브레전드

온라인 620

단편 소설 - 공허에서 온 손님 ㅣ 그웬 공방

조회수 184댓글 2추천 3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봄이 되었다. 다들 차츰 옷의 두께를 줄여나갔다. 이렇게 계절이 바뀔 때면 다들 하나같이 공방에 찾아오기 마련이다. 옷이 줄었을 수도 아니면 해졌을 수도 있었으니.  ​  하지만 그웬 공방엔 요 며칠 오가는 손님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원래 그웬 공방이란 건물은 없었던 것처럼 그웬 공방에 오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  그 그웬 공방 안은 거대한 실타래가 한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거대한 실타래 앞으로는 책상이 놓여 있었고 그 책상 위엔 미싱 기계가 놓여 있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주인마저도 지루하고 칙칙해진 삶에 의기소침 해 질 무렵 그 책상 위엔 그 미싱 기계 위엔 그 실타래 위엔 먼지가 쌓여갔다.  ​  그웬은 의자에 앉아 책상에 한쪽 팔로 자기 머리를 기댄 채 엎드려 있었다. 그러고는 그웬은 한숨을 쉬었다.  ​  어쩌면 루시안의 말이 맞았을지도 모른다. 그웬은 여전히 이야기를 원한다. 하지만 루시안의 말대로 어쩌면 공방이라는 곳은 그다지 인간 세계에 필요한 부품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  그웬은 외로움이 심장을 태웠음에도 밖에 나가지 않았다. 어쩌면 누군가 이야기를 팔러 올 수도 있었으니. 그러니 그웬은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 공방에 나설 수 없었다.   ​  그렇게 계절은 손님이 더욱 오지 않을 시간으로 넘어갔다. 정말 아무도 공방이라는 집에 들어갈 이유가 없어질 시간에 누군가 그웬 공방의 문을 열었다. ​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안녕하십니까.” ​  그웬은 드디어 찾아온 손님에 생기가 돋으며 숙이고 있던 허리를 곧게 펴고 고개를 들어 올리며 손님을 맞이했다.  ​  “반갑습니다! …어?” ​  남자는 알 수 없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입을 가린 마스크에 그 위는 눈만이 보이는 복면 같은걸 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양새와는 다른 색감이 보라색을 하고 있었다.  ​  그웬은 혹시 남자가 기계는 아닐까 의심해 보았다. 상체를 두른 갑옷과 오른쪽 손등에 보이는 덩어리는 기계 병기를 연상하게 했다.  ​  “혹시…슈 리마 쪽 옷도 수선할 수 있으십니까?” ​  그웬은 처음 보는 사람의 모습에 당황해하다 답했다.  ​  “그…그야 가능하죠! 그…근데 무슨 일로….” ​  남자는 잠깐 침묵하다 답했다.  ​  “그건 말할 수 없습니다.” ​  남자의 말에 그웬은 말을 얼버무렸다.  ​  “그…그래도 여긴 이야기를 팔아야 수선을 해주는데요….” ​  그웬은 말끝을 흐렸다. 남자한테 위협감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그런데도 남자는 무장 중인 것 같았다. 혹시나 남자랑 싸우게 되면 그웬은 거대한 가위 없이 싸워야 했다.  ​  “…이야기요…?” ​  “네….” ​  남자는 약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잠깐 생각에 빠진 듯 침묵하다 답했다.  ​  “이건…제 딸의 마지막 옷입니다….” ​  그 말과 함께 남자는 허리 줌에 차고 있던 가방 속에서 옷가지를 꺼냈다. 몇몇은 너무 해져 수선이 불가능해 보였다. 남자는 책상 위엔 옷들을 펼쳐 놓았다. 그웬은 그 중 딱 하나만이 수선이 가능하단 걸 깨달았다.  ​  그웬은 착잡한 마음에 잠깐 입을 다물다 이내 다짐하곤 다시 입을 열었다.  ​  “수선은… 저것 하나만 가능해요.” ​  그웬은 손가락으로 책상 위에 놓인 옷들 중 하나를 집헜다. 황토색에 반짝이는 돌들이 장식된 옷이었다. 그웬은 다시 말했다. ​  “이야기는….” ​  “해주겠습니다….” ​  남자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웬은 남자랑 마주 보도록 의자에 살포시 앉았다. 남자는 마스크를 벗으며 입을 열었다.  ​  “제 이름은 카사딘입니다. 절 아시나 모르겠지만…전 공허를 배회합니다. 제 딸과 아내를 살해한 남자를 찾기 위해 배회를 하는 겁니다.” ​  그웬은 카사딘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생각 한 것보다 더 무거운 이야기에 그웬은 약간 긴장하게 됐다.  ​  “제 손등의 무기와 마스크…그리고 갑옷들 모두 제가 공허에 들어가기 위해…남자에게 복수를 위해 모았던 겁니다….” ​  카사딘은 한숨을 쉬었다.  ​  “평소같이 공허를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곳에서 무언가를 찾아다니고 있었습니다.” ​  카사딘은 다시 한번 무거운 짐을 들어 올리듯 한숨을 쉬었다. 그의 가슴 속엔 여전히 그 무게가 느껴졌다.  ​ 그런데…어디선가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습니다. 그런데…그때 서야 뭔가 깨달았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잊고 있었단 걸. 제가 아직 딸을 떠나보내지 못했단 걸. 아직도 제 안에서는 딸이 마치 제가 공허를 배회하듯 떠돌이가 되어 있다는 걸.” ​  카사딘은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  “사실…이야기해야 수선을 해준다는 소문을 듣고 일부러 찾아온 겁니다…. 어쩌면 그 목소리가 제 딸의 목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이가 없죠….” ​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남자의 눈동자에 추억이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딸에게 이 옷을 선물해주던 기억이 카사딘의 눈을 지나쳤다.  ​  “전 단 한 번도 딸아이 생각을 못 했는데. 복수에 빠져 살고 있었는데…. 그제야 딸 생각을 한 겁니다…. 제 죄를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찾아온 겁니다.” ​  카사딘의 고해성사와는 다르게 그웬의 얼굴은 분명 화나 있는 것 같았다. 팔을 바짝 편 채 몸에 붙이고 있었다. 배은망덕한 사람을 본 것 같이 표정을 짓고 있는 그웬에 카사딘은 그웬의 표정을 수용하듯 말했다.  ​  “이해합니다…. 전 나쁜 인간인 거에요….” ​  그 말에 그웬은 더 씩 씩 거렸다. 참을 수 없다고 느낀 그웬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곤 소리쳤다.  ​  “이 옷들을 가지고 다녔던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좋은 사람인 거라고요!!” ​  카사딘은 놀란 마음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눈빛이 흔들리며 기억이 그의 가슴 속을 요동치게 하고 있었다.  ​  “딸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했으니까. 아직도 딸아이가 보고 싶으니까 그러는 거 잖아요!! 당신은 딸아이를 버리지 않았다고요!” ​  카사딘은 그웬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그웬의 말이 카사딘의 마음의 무게를 모두 걷어차 버리는 듯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카사딘은 천천히 눈물을 흘렸다.  ​  카사딘의 눈물은 칙칙하던 그웬 공방에 온기를 더하듯 마룻바닥에 흡수됐다. 공허에 배회하며 그 누구보다 공허해 보이던 이는 공허하던 그웬 공방에 가듯 메우고 있었다. 활기가 아닐지라도 연민이라는 감정이 비애라는 감정이 그웬 공방을 메우고 있었다.  ​  그웬은 슬며시 자신의 눈사이에서 빠져나오는 눈물을 느낄 수 있었다. 그웬은 다시 소리쳤다.  ​  “당신은 딸을 꼭 찾을 수 있어요. 딸이 있는 곳에 가서 그 옷을 주란 말이에요!” ​  “어떻게…딸이 죽은 곳을 찾는단 말이에요….” ​  카사딘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고 있었다. ​  “으으…제 실을 쓰면 찾을 수 있다고요! 그러니까 그만 울어요!” ​  “실…로요?” ​  드디어 진정된 듯한 남자의 모습에 그웬도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  “후…맞아요 다행히도 제 실은 무언가를 찾아줄 수 있죠.” ​  카사딘은 놀란 눈으로 자신 앞에 서 있는 그웬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  그웬은 수선이 가능한 단 하나의 옷을 집었다. 그리고 카사딘에게 말했다. 오직 단 하나만이 남은 가능성의 선택에 카사딘은 딸과 아내가 죽은 이래 처음으로 다시금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  “제가 이 실로 옷을 꿰맬 거예요. 기다리세요. 금방 만들어 드릴 테니까!” ​  그 말과 함께 그웬은 미닫이문을 열어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  카사딘은 기적이 일어난 것 같은 현실에 마음을 다잡을 수 없었다. 갑자기 자신 앞에 나타난 기적이 꼭 이루어지길 빌며 카사딘은 자신이 져버린 딸을 꼭 찾길 진심으로 바랐다.  ​  잠시 후 그웬은 수선된 옷을 가지고 나왔다.  ​  “여기 있어요. 이 옷은 딸이 있는 곳으로 바람이 흩날리는 것처럼 흔들릴 거예요.” ​  카사딘은 어릴 적 딸이 입던 옷과 똑같아진 옷을 받으며 말했다. 정말 딸과 함께 있을 것만 같은 옷에 카사딘은 그 모습을 눈에 다 담기 힘들었다.  ​  “감사합니다….” ​  카사딘은 자신을 진심으로 도와준 사람이 그웬 말고 있었는가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준 것은 오직 자신이 비용을 지불했기 때문이란걸 잘 알고 있었다. 그웬이 보이지 않도록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리며 카사딘은 옷을 받고는 그웬 공방에서 나왔다.  ​ ​ ​  더럽고 진액이 넘쳐나고 살아 있는지 죽어있는지 모르는 자들이 서로 죽이고 죽이는 더러운 자연 세계에 꿈틀거리는 곳에서 카사딘은 너울처럼 흩날리는 옷을 따라 걷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카사딘은 자신 앞에 서 있는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긴 장발이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옷은 그 여자를 향하고 있었다. 카사딘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딸을…죽어 있는 시체로 맞이 할 줄 알고 있었던 카사딘은 아직도 아니 오히려 건강하게 서 있는 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공허와 한 몸이 된 듯 했지만, 아무런 상관없었다. 오직 자신의 딸이기만 하면 된 것이다. 카사딘은 천천히 인간 여자를 향해 걸어갔다.  ​  터벅터벅 더러운 공허 덩어리가 땅을 이루는 곳을 밟아 가며 카사딘은 둘 사이의 거리를 좁혀 나갔다.  ​  영원히 떨어져 그 거리가 얼마인 줄 몰라 절대 다가갈수 없을 거라 믿던 딸과의 거리는 현실처럼 그 마음 사이의 거리고 좁혀가기를 빌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