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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 이렐리아는 다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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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무뚝뚝 하지 않아! 다정하고 따스한 사람이라고” ​                                            -이렐리아 대사 중 ​

따사로운 햇볕이 일는 평야 아래에 두 사람이 걷고 있었다. 평야의 종착점 위에 있는 언덕으로 둘은 걷고 있었다.  ​  루시안이 이렐리아에게 물었다.  ​  “그러니까, 지금은 평화롭다는 거지?” ​  “맞아. 그때 해로윙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그림자들 말이야.” ​  루시안은 턱을 이루어 만지고 있었다.  ​  “그럼.” ​  루시안이 뒤 돌려던 찰나 이렐리아가 루시안을 멈춰 세웠다.  ​  “잠깐, 대접은 받고 가야지. 너 온다고 해서 준비해 줬었거든.” ​  루시안은 하는 수 없이 이렐리아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대접, 루시안이 받기로 한 건 그것이 아니었지만.  ​  둘은 평야 끝의 언덕으로 올라갔다. 언덕 위에 선 둘은 언덕 뒤에 숨겨져 있던 북적거리는 마을을 볼 수 있었다.   ​  “나보리에 온 걸 환영해.” ​  이렐리아는 한쪽 팔을 쭉 펴서 나보리의 모습을 가리며 환영 인사를 했다. 북적거리면서도 한가한 따스한 바람이 흩날리는 마을의 모습이었다. 루시안은 마치 동화에 온 듯한 기분을 받았다.  ​  “이건…마치 동화 같군….” ​  “뭐, 그럴지도 모르지. 따라와.” ​  이렐리아는 앞장서기 시작했다. 마을로 이어지는 포장되지 않는 길을 서슴지 않고 걸어갔다. 진흙 길을 걸어가며 철퍽 이는 바닥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이렐리아는 평상복이었다. 자신처럼 의복을 입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  루시안은 이렐리아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건물들 사이사이 틈이 공간을 한적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오고가고 좁지 않은 거리는 활기가 넘치게 만들었다. 넓은 시장 길에선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에 정이 오고가는 것이 눈에도 보였다.  

어느새 한적한 진흙 길에 들어섰다. 여전히 이렐리아는 앞만 보고 걷고 있었다. 그때 이렐리아 앞에서 한 아이가 달려오고 있었다. 부딪힐 위험도 없었고 이렐리아의 눈도 아이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달리다 그만 돌부리에 걸렸다.  ​  이렐리아와 아이 사이의 거리는 분명 꽤 되어 보였다. 그런데 이렐리아는 몸을 던졌다. 분명 넘어져도 진흙 바닥이라 크게 다칠 이유가 없었지만, 이렐리아는 몸을 던진 것이다.   ​  이렐리아는 겨우겨우 아이를 붙잡았다. 물론 자신의 몸이 진흙에 완전히 파묻혔지만.  ​  “으…꼬마, 괜찮아?” ​  이렐리아가 일어서며 말했다.  ​  “아…네…근데 옷이….” ​  꼬마의 말대로 이렐리아의 옷은 진흙에 덮여 있었다. 이렐리아는 싫은 기색 없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괜찮아.” 하고는 단호한 표정으로 “다음부턴 조심하고.”라 말했다.  ​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  “네!” ​  아이는 다시 가던 방향으로 달려가 버렸다. 루시안은 어느새 이렐리아의 옆이었다.  ​  “굳이, 붙잡아 줄 필요는 없지 않았어?” ​  “하하…난 다정한 사람이거든….” ​  루시안이 눈살을 찌푸렸다.  ​  “그게 무슨 소리야?” ​  “아, 아무것도 아니야.” ​  얼버무리며 이렐리아의 반응에 루시안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렐리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루시안의 시선을 조금씩 피해 나갔다.  ​  “됐어, 그냥 갈 길 가자.” ​  루시안의 말에 이렐리아는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진흙이 온몸에 덮인 옷차림으로 이렐리아는 고개를 숙이며 집까지 걸어갔다. 어쩌면 아이가 발그레 웃은 이유는 이 상황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둘은 이렐리아의 집으로 들어갔다. 따스한 불빛이 집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툭 튀는 햇살이 창문으로 넘어오고 전등의 불빛은 향토적인 감성을 주고 있었다. 이렐리아는 옷을 갈아입은 후 다시 루시안을 맞이했다.  ​  “하하…그 옷은 잊어버려….” ​  “뭘, 네가 다정한 행동을 했을 뿐인데.” ​  이렐리아는 또 멋쩍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  “점심, 먹고 갈 거지?” ​  “뭐, 그렇게 해야지. 대접을 해주신다고 했으니까.” ​  루시안이 식탁 위에 앉자 이렐리아도 식탁 위에 앉았다. 하지만 식탁 위엔 아무런 음식도 놓여 있지 않았다.  ​  “음…점심은….” ​  그때 주방과 거실을 나눠놓은 벽 뒤에서 누군가 접시를 들고 오고 있었다. 카르마였다.  ​  “그래서 다정한 이렐리아가 되셨나?” ​  카르마가 말하며 접시를 식탁 위에 내렸다. 그 말에 이렐리아는 뺨을 붉혔다.  ​  “흠…다정하긴 했지.” ​  루시안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루시안은 접시 위의 음식을 보았다. 노릇한 열기가 코로 슬며시 올라오는 미트파이였다. 고기 냄새와 달짝지근한 소스 냄새 고소한 빵 냄새가 코를 찔렀다.  ​  “흠…데마시아에선 이런 음식은 없었는데. 파이인데 고기 냄새가 나는군.” ​  카르마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  “미트파이야. 맛있게 먹어.” ​  카르마는 미소를 지으며 방으로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루시안의 시선은 다시 이렐리아로 향했다. 이렐리아는 고개를 숙인 채 조각난 미트파이를 자기 접시에 담았다. 루시안은 그런 이렐리아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  “이렐리아.” ​  답은 오지 않았다.  ​  “다정하고픈 마음 이해해. 하지만, 너 자신이 가장 자연스러운 게 중요하지.” ​  이렐리아는 포크로 집은 미트파이 조각을 입에 넣으며 우물거리고 있었다. 여전히 이렐리아는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루시안은 풋 하고 웃었다.  ​  “그래. 냉정한 모습이 네 모습이지.” ​  이렐리아는 두 손을 식탁으로 거세게 내리치며 일어섰다.  ​  “뭐…?” ​  “하하…그래. 그게 네 모습이야. 이렇게 말하니까 뭐 하지만, 이렐이아. 너도 매일 다정한 사람으로 살아가긴 어렵다는 걸 잘 알잖아.” ​  이렐리아는 루시안의 말에 털썩 의자에 앉았다.  ​  잠깐의 침묵이 고개 냄새보다 더 진동할 때 이렐리아가 입을 열었다.  ​  “루시안…네 말이 맞아…다정한 척 연기하는 게 너무 힘들어. 사람들은 날 살인자로 봐. 난 아이오니아를 지켜낸 장군이지만, 한편으로는 결국 사람을 죽인 자라고…다들 그렇게 바라봐…. 그래서 다정한 척 냉혹한 살인마가 아니란 걸 보여주려고 했는데…. 그게 너무 힘들어….” ​  이렐리아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뚝, 눈물이 식탁 위에 떨어졌다. 루시안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  “이렐리아, 아무도 널 살인자라고 보지 않아. 넌 여전히 장군이자 아이오니아를 지켜낸 위인이라고. 살아있는 전설이야. 그런 널 보고 피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카르마만 해도 보라고. 카르마가 언제 널 피한 적 있어?” ​  “그렇지만…사람들은 날 피하는데….” ​  “그야 네가 어색하게 다정한 척을 하니까지. 이렐리아는 차가우면서도 따스한 사람이지 무조건적인 다정한 사람은 아니거든. 적어도 내가 본 이렐리아는 그렇지. 카르마만 해도 보라고. 네가 다정하게 굴지 않아도 카르마는 네 곁에 있어 주는데?” ​  이렐리아는 고개를 들고 소심하게 끄덕였다.  ​  “명심하라고, 아무도 무조건적으로 다정하게 굴면 피하기 마련이야. 자연스러운 다정함이 진심으로 우러나오지.” ​  이렐리아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  “고마워….” ​ ​ ​  둘의 식사가 끝난 후 둘은 다시금 언덕 위로 올라갔다. 처음 왔을 때처럼 마을은 한적하면서도 북적거렸다. 사람들은 여유로우면서도 떠들썩했다. 루시안은 다정함이 넘치는 마을을 보며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  “해로윙이 없다면, 이 평화는 오래도록 유지 되겠지. 네가 있으니까. 이렐리아.” ​  이렐리아는 마을을 바라보며 끄덕였다.  ​  “잘 가…루시안…. 고마웠어.” ​  루시안은 고개를 끄덕인 후 천천히 언덕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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