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안은 건물의 간판을 올려다봤다. ‘그웬 공방’ ‘해로윙이 끝난 뒤로 겨우 한다는 게 수선집이라니.’ 루시안은 생각했다. 루시안은 미닫이문을 열곤 건물 안으로 터벅터벅 들어갔다. 건물 안에 들어오며 루시안의 눈에 가장 먼저 띤 것은 거대한 실타래였다. 벽 한구석에 서 있는 거대한 실타래는 어린아이의 크기만큼 컸다. 실타래 앞으로 책상과 그 책상에 걸맞는 미싱기계가 있었다. 루시안은 그웬은 어디있나 잠시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신호라도 받은 듯 반대편 벽에서 미닫이문이 열렸다. 미닫이문을 잡은 완벽한 인간의 손이 보였다. 루시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문이 드르륵 열린 뒤 나온 것은 그웬이었다. “뭐야? 루시안, 여기는 무슨 일이래?” “옷 좀 수선 해줬으면 해서.” 루시안은 한쪽 팔로 허리와 함께 감싸고 있던 빛의 감시단 의복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흐음…내가 다 받아줄지 알고?” 루시안은 한숨을 쉬었다. 공방 일을 하면서 돈이란 건 받지도 않고 남의 이야기나 듣고 싶어 한다니. 루시안은 체념 하듯 말했다. “외상은…안되나…?” 루시안의 머릿속에선 지금 해줄 만한 재미난 이야기는 없었다. “흠…아무 이야기나 상관이 없는데…그럼 이거 어때 세나와의 사랑 이야기!” 그웬은 갑자기 신이 난 듯 발랄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그웬은 세나와의 사랑 이야기가 몹시 궁금한듯했다. 루시안은 눈살을 찌푸리며 침묵하고 있었다. “…좋아…. 해주지….” 루시안은 장정 2시간 동안 세나에 대한 만남부터 사랑의 결실 그리고 재회까지 모조리 들려주었다. 그웬은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은 듯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루시안도 오랜만에 아내 이야기를 떠올렸는지 괜히 마음이 후련해진 것만 같았다. “좋아. 만족했어. 3일 뒤에 찾아와.” 그웬은 흥얼거리며 책상 위에 올려둔 의복을 들곤 미닫이문을 열어 방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루시안은 홀연히 방안으로 사라져 버린 그웬에 머리를 긁적였다. “이럴 거면 왜 미싱 기계를 밖에 둔 거지….” 어찌 됐건 루시안은 이제 3일 뒤에 다시 찾아와야 했다. 의복도 수선하는 김에 루시안은 잠깐 휴식을 취해야 하겠다고 느꼈다. 그웬에게 아내에 대해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루시안은 오랜만에 시나랑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다 루시안은 문뜩 미소를 지었다. 이런 고민만으로도 미소가 나온 것이 루시안은 이번엔 아내랑 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루시안은 미닫이문을 닫고 아내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그때 그웬이 루시안을 불러 세웠다. “루시안!” 루시안은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뒤돌았다. “히히…잠깐 공방으로 와봐.” 루시안은 먼저 들어간 그웬을 따라 다시 공방에 들어섰다. 그웬은 실타래에서 실을 뽑더니 가위를 끝을 잘랐다. 벽 구석에 거대한 실타래에서 나온 실을 한눈에 보기에도 두꺼워 보였다. “그건…실인가? 아니면 밧줄인가…?” “뭐?” 그웬은 후후 웃어 보였다. 그웬은 자기 팔에 실을 둥글게 말았다. 그리곤 팔에서 말아진 실을 빼내며 그 실을 루시안에게 건넸다. “자, 루시안 저번에 총 잃어버렸다며?” “총이 아니고 마법….” “뭐가 중요해! 어서 실을 손가락에 끼우면 실이 방향을 알려줄 거야.” 루시안은 말없이 실을 받았다. 잠깐 손에 쥐어진 실을 내려다봤다. 은은한 푸른빛을 띤 실이었다. 실이라기엔 너무나도 두꺼웠지만, 밧줄이라기엔 부족하리만큼 얇았다. “이제…가도 되나?” “응! 이제 가도 돼. 그 실 써서 어서 총을 찾아야지.” “총이 아니라 마….” “아무렴 어때! 자 어서 가라고!” 루시안은 쫓겨나듯 공방에서 나왔다. 루시안은 실을 주머니에 쑤셔 놓곤 다시 아내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잠시 후 그웬 공방의 문이 열렸다. 드르륵. 문을 연 사람은 애쉬였다. 애쉬는 아무도 없는 방에 사람을 찾고자 방을 두리번거렸다. 이번에도 반대편 벽 쪽 미닫이문이 열렸다. 아니, 한번 문이 걸린 후 열렸다. “하하…문을 고칠 때가 됐나….” 그웬은 아래를 보다 이내 고개를 들었다. 자신 앞에 서 있는 사람이 프렐요드 인임을 그웬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애쉬 여왕님?” “하하…날 알아보는 사람도 있네…. 여기 다른 지방인데 말이야.” “여기까진 어쩐 일로…?” “무슨 일이긴…스웨터 좀 짜줬으면 해서.” “스웨터요?” “응. 남편한테 줄 스웨터.” 그웬은 애쉬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거짓말을 하고 계시군요! 여왕님!” “어…? 어?” 애쉬는 당황한 듯 말을 얼버무렸다. “역시나! 여기까지 스웨터 하나 짜달라고 올 일은 없겠죠!” 애쉬는 당했다는 듯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애쉬가 그웬 공방을 찾아온 이유는 뜨개질을 배우러 왔다. “뜨개질 배우러 오신 거군요!” “뭐…정확히 맞췄네…. 하하….” “후후…하지만 제 수업료는 싼 편이 아닌데요….” 그웬의 미소에 애쉬가 섬뜩함을 느낄 새도 없이 그웬은 말을 이었다. “하하, 장난이에요. 저한테 필요한 건 하나에요. 딱 이야기 하나만 들려주시면 돼요.” “무슨 이야기…?” “남편과의 사랑 이야기죠!” 애쉬는 쑥스럽게 웃었다. “그래. 그 정도는 들려줄게.” 그웬은 애쉬의 손을 잡더니 반대편 미닫이문을 열었다. 애쉬는 끌려가듯 그웬을 따라 방에 들어갔다. 그웬이 닫고 난 방안은 북적거리는 듯하다. 이야기가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눈이 덮인 한적한 거리에 그웬 공방의 안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한 구석의 거대한 실타래와 그 앞에 놓여진 한 번도 안 쓰인 미싱 기계. 어쩌면 그웬 공방은 껍질일지도 모른다. 그웬은 오늘도 이야기를 모은다. 사랑 이야기, 우정 이야기, 갈등 이야기도 그웬은 모은다. 그리고 모은 이야기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공방이라는 이름처럼, 새로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그웬은 받아낸 이야기를 더 모으고 싶어 한다. 더 나아갔으면 한다. 누굴가를 가르치면서도 그웬은 이야기를 모은다. 그럴 때마다 그웬은 후련해진다. 마치 새로이 태어난 듯 하다. 그웬이 공방을 만든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