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 형식적으로 신분제는 폐지되었지만 일부 수구 성향 양반층과 고위층들로부터 여전히 잔존했으며 여전히 평민과 천민으로 구분지었던 경우가 있었다.
신분제 혁파 이후로도 백정등 천인 출신들은 차별을 심하게 받아서 '형평사' 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수 십년을 추가적으로 활동했음 이걸 형평운동이라고 부르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음
창립 초기부터 봉건적 관습에서 탈피하지 못한 일반 농민들의 거부감에서 오는 反형평운동 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형평운동이 인권운동의 차원을 넘어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 속에서 다른 사회운동과 제휴하여 전개됨에 따른 일제의 탄압이다 이 2가지는 형평운동이 반제국주의적 반봉건적 성격을 가지게 하는 계기가 됨 형평운동은 백정들의 신분해방,인권운동인 동시에 다른 사회운동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 진행된 민족해방운동의 한 부분이기도 했음
결국 일제 탄압받아서 중단됨 ㅋㅋㅋ
그리고 제일 중요한 암묵적으로 남아있던 신분제의 소멸은 6.25 전쟁으로 사회 기반이 파괴됨에 따라 어느정도 영향력을 잃었는데
그것또한 1970년 새마을 운동 전까지 백정에대한 차별은 계속됐음
요약
1.일제는 암묵적으로 남아있는 신분의식에 대해서 좆도 관심 없었고 오히려 형평운동을 탄압함
2.6.25때 가서야 사회기반시설 파괴에 따라 암묵적으로 남아있던 신분의식이 사라짐
3.그마저도 백정에 대한 차별은 있어서 1970년 새마을 운동전까지 백정차별은 있었음
일제시대에 노비가 해방되었다고 주장하는 머저리들이 간혹 있을텐데 형평운동 탄압만 얘기해줘도 어차피 형평운동 자체도 뭔지 몰라서 깨갱할 애들이니까 앞으로 커뮤하면서 잘 써먹어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