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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친구, 혹은 가족일지도 모르는 평범한 사람의 한 많은 인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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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아무런 탈없이 공부도 그저그렇게
인과관계도 그저그렇게
게임만 좋아하던 내가

갑자기 어느 뽕이 쳐올랐는지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했다.
'난 뭐하고살지?'
'난 도데체 하고싶은게 뭐지?'

이게 중2병인가 싶으면서도
지금까지 이렇게 시간을 소비해온 내가
오늘은 특별히 더 한심해보이더라고.
남들앞에서 잘웃고.
발표 잘하고.
좋아하는 취미 한두개정도 가지고있으면
다 그렇듯 별탈없는 인생을 지내는줄 알았다.

그렇게 내가 지정한 인생의 목표는 영화감독
이렇게 한줄로 썻지만. 이 꿈에 도달할 때 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던것 같다.

초등학교. 뚱뚱하다고 놀림받았던 내가
이정도까지 올라왔으면 정말 잘했다고

중학교오자 심해진 손떨림에 접었던 미술이란 꿈 대신
편집이라는 취미를 가졌으면 정말 잘했다고

그동안 외로워질때마다 혼자 되새겼던 말이
오늘따라 좆도안돼는 자위질로밖에 안보였다.
그래서 나도 도전해보고싶었다.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어보고싶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나한테 꿈깨라고 하던 친구들이.
니 성적으로 특목고는 부족하다고
너같이 평범하게 사는애가 뭐가 잘나서 특목고를 가냐고
너가 붙으면
특목고에 가려고 초등학교부터 준비한애들은 뭐가되냐고

전부다 웃으면서 넘겼었는데...

면접도 실기도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간절히 원했는데...

2시. 합격여부가 나오는시간은 2시다.
당연하게도 평일이였고. 당연하게도 오후수업중이였다.
내 합격통보가 2시에 나온단걸 알던 내 친구들은
싫다는 나의 손을 뿌리치고 기어코 내 수험번호표를 가지고갔다.

보기좋게 떨어졌다.
정말로.
"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
이 말이 내게 얼마나 큰 충격이 될 지 몰랐다.

그냥 학교가 끝날때까지 쭉 누워있었다
난 결국 안돼는구나 하고
그냥 평범히 살고싶어졌다 하면서
어머니에게 불합격을 통보하고
내 탈락을 위로하던 내 수험표를 가져간 친구들과
같이 피시방에가서 롤이나 몇판 했다.

정말로 괜찮은줄 알았다.
눈물도 안났고
열심히 했던 어제까지의 노력도 아쉬웠다.
그래도 다시 도전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꿈은 절대로 도망가는일없다고 나한테 말해주시던
돌아가신 할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아무렇지도 않게 집에 돌아왔다.
쇼파에 누워서 아무렇지도 않게
내 친구들의 페이스북을 보고있었다.

아버지께서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시더라.
어머니께선 이미 아버지한테 불합격을 통보한 것 같던데
난 진심으로 아버지가 날 위로해주실줄 알았다.

아버지께서 처음에 툭 뱉은 말은
"불합격이라며? 축하해."




그 말이 진심이 아니란걸 알았다.
평소에 짖굿게 굴던 아버지였기에
장난스럽게 웃어넘길 수 있을 줄 알았다.





근데 아니더라
사람이 뭔갈 간절히 바라면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그걸 얻지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만약
진짜 만약
그 이유가
오직 자신이 부족해서 라면
그걸 깨닳았을 때
나는 어떤 감정이 생겨날지

정말로 태어나서

오열했다.


그렇게 열심히했는데
넌 안됀다고 했던 친구들의 손가락질도 떠올랐다.
열심히 해보라고 해주시던 선생님도 떠올랐다.
탈락하고 인생이 원래 그런거라고 위로해주던
그 친구들도 떠올랐다.
그리고

면접날 세벽 5시에 일어나
부천까지 날 대려다준
아버지도 떠올랐다.


정말로 슬펐다
서러웠다

난 고작 이정도밖에 안돼는걸까
이렇게 힘들줄 알았어도 도전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들던데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몇달간을 힘들게 보내고나서
최종적으로 들던 생각은


'나는 뭘까' 였다.

수학이라면 애들이랑 친하게 지내던 그 애가 나았다.
영어라면 원어민 선생님과 대화하던 그 애가 나았다.
인과관계라면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던 그 애가 나았다.
아는것이라면 나보다 더 유식하던 그 애가 나았다.
외모라면 항상 여자친구가 있었던 그 애가 나았다.
글이라면 소설가가 꿈이던 그 애가 나았다.
패션이라면 어머니가 사주신 롱패딩을 입고다니는 그 애가 나았다.




나는
장점이

하나도
없었다




나라는 주체를 찾지못했다
정말로 내 주변 인물들의 부족한것만 끼워넣은게 나였다.
누군가 유능한 인재를 원한다면
축구할 때 나보다 돌을 원하던 초등학교의 그 애 같듯이
나는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주자도 안될것같았다.




그리고서 정말 몇달몇일을 홀로 보냈다.
남들은 일반고를 가겠다고
특목고를 가겠다고
이미 다 준비해뒀다.
심지어 내 지역에서 가장 꼴통고로 유명했던 고등학교
그곳에 가겠다는 애들조차 이미 다 준비했다.


그 꼴통고의 지원접수가 끝나고 며칠 안돼던 밤

언제나처럼 유튜브를 살펴보다가 라디오사연을 봤다.
사연의 주제는 흔해빠진 것이였다.

"우리 아들이 게임 중독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연의 내용또한 간단했다.

"우리 아들이 제 카드로 100만원을 결제했어요.
아무리 게임을 좋아해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훈계했는데
반성하면서도 이정도를 안쓰면 친구들과 함께 놀 수 없다고 하더군요.
게임 중독에 걸린 우리아이 어떻게 해야 할 까요?"

라고 누가봐도 아들이 나쁜 사연이였다.




그리고 진행자가 말했다.
"어머니, 어머니의 아이는 게임에 중독된 불량아가 아니라
100만원을 쓴 나 외엔 자신의 가치를 모르는,
사랑받는 방법을 모르는 불쌍한 아이랍니다."


라고




진짜로 서러웠다.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놓고
눈이 빨개져서 다 타버릴 정도까지 울었다.

주제에 맞게 평범하게 살겠다고 다짐했던 내가
처음으로 살아보고싶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남들처럼 그저 사는게 아닌
'나' 로서 살고싶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나를 찾지못했다.
선비가 수많은 학문의 길에 오히려 진리를 찾지 못하듯이
뚜렷하지 않은 나를 정의내리는건 너무 소심한 짓 같았다.



그래서 결정내린건
'나'를 완성시켜보기로 했다.

정말 오글거리는 단어선택이지만
이 단어외에 다른표현은 쓰고싶지않다.
아무것도 없는 나였기에
오히려 채워보고싶었다.

그래서
내가 사는곳에서 가장 꼴통고로 유명했던 그곳에
추가모집으로 입학했다.
모두가 말렸다
인문계가면 무난하다고.
중상위권정도는 된다고.


그래서
지금 다니는 내 학교는
내신평균 130에
쉬는시간에 복도에서 뛰어놀줄밖에 모르는 바보들이랑
함께 수업을 듣고있다.

행복하지도, 불안하지도 않다.

그러나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때랑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그래도
나는 이제
내탓을 하지 않기로 했다.


모든게 남의 탓이다.
나는 이제
나를 위해 살거다.




나는 살면서 여러 시점에서 떠오르는 아쉬운 일이 있었다.

언제는 말싸움에서 잘 말하지못한 그때가 아쉬웠고
언제는 체육시간에 줄넘기에 걸려서 조롱당한 그때가 아쉬웠지만


지금은
나한테 포기하라던 그새끼들한테
큰소리로 좆까라고 전해주지 못한게
제일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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