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이라는 게임을 좋아한다는 말은 내가 롤을 얼만큼 좋아하는지 표현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롤을 사랑한다. 그 사랑하는 만큼 미워한다.
삶을 살아가면서, 내가 롤에 쏟았던 열정만큼 무엇 인가에 열정을 쏟을 수 있을까 스스로 되묻지만 아직은 대답하지 못하겠다. 2023년 동안 난 약 2000판 이상의 솔로랭크 게임을 했다. (2023 S1 - 890판, 2023 S2 - 794판, 2024 S1 411판, 2024 S2 31판)
큐를 돌리면서 경험했던 고양감, 정말 잘하는 탑라이너분을 만났을 때 그 두근거림, 시간이 느리게 가는 몰입의 순간들 -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을까?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잘 모르겠다.
롤이라는 게임은 누군가에게는 게임이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세계였다. 롤을 더 잘하고 싶어서, 더 날카롭게 플레이하기 위해서, 완벽을 추구하기 위해서, 더 나은 탑라이너를 만나기 위해서 난 게임을 계속 했다. 같이 게임하자는 친구를 외면하고, 아이스크림 먹자는 친구의 제안을 거절하고 난 게임에 몰입했다. 현실에서의 삶을 포기한 나의 티어는 아이러니하게도 올랐다. 마스터에서 그랜드마스터로 그리고 챌린저로.
하루에 열 시간 이상 게임을 하면 알 수 있었던 사실은 몸 건강이 나빠진다는 사실이었다. 수전증, 불면증, 건강의 악화를 경험했다. 육체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도 많이 망가졌다. 대인 기피증이 무엇인지 경험할 수 있었다.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데 어려움이 있었고, 사람들과 대화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주방에 가서 요리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 말을 걸면 빨리 대화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가고 싶은 감정이었다. (기숙사에 살아서 주방을 같이 쓴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죽음에 대한 공포가 느껴져 잠을 드는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내 삶의 변화의 시작은 목표 달성으로 시작 되었다. 내 삶에 수많은 문제가 있지만, 챌린저만 찍으면 문제를 마주하기로 내 자신과 협상했다. 그렇게 300판의 게임 끝에 500점을 찍고 챌린저를 찍었다. 그렇게 내 삶의 문제를 마주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방 청소였다. 그 이후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롤 때문에 수면 패턴이 망가졌을 때는 오후 9시에 일어나기도 했기에, 부모님께 전화를 자주 드리지 못했다). 그 후 운동을 시작하고 대학교 강의에 나가기 시작했다. 롤을 줄이기 위해서, 노트북을 친구 집에 두고 롤이 너무 하고 싶을 때 1주일에 한 번 친구 기숙사에 가서 롤을 했다. 시작은 매번 좋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롤을 적게 하는 문제 있는 삶을 살았다.
두 번째 변화의 씨앗은 대학교에서 친구를 만들기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위해 필요한 전략을 고려했다. 대학교 강의실이 굉장히 넓어서 100~200명이 한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데 친구가 없었던 나는 매번 혼자 앉아서 옆에 앉은 낯선 학과 친구에게 말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옆자리에 앉았던 낯선 친구는 중국인 여성 분이었다. 긴장했지만 긴장하지 않은 것처럼 인사를 했고 인스타를 교환했다. 두 번째 학기에 사귄 첫 번째 친구였기에 뜻 깊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먼저 말을 걸고, 먼저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 후 생애 첫 클럽을 갔다. 클럽을 가기 전 아는 사람들끼리 프리(pre) 드링킹을 했다. 클럽에서 술이 비싸기 때문에, 클럽에 입장하기 전 먼저 술을 마셔서 워밍업 하는 것이 영국 대학에서 일반적이었다. 이 때 성인임에도 술을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어서, 프리 드링킹을 하는 곳에서 물만 마셨다. 대략 20명 정도 한 공간에서 술을 마셨는데, 내 친구들 3명을 제외하고 모두 태국인이었다. 몇 명의 태국 친구들과 인스타 교환을 했지만, 그 때 나는 이 친구들을 클럽 이후 볼일이 없을 줄 알았다.
1주일이 지나고 게임을 줄였지만, 새벽까지 잠을 들지 못하는 날이었다. 내 삶이 변화했던 그 날은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새벽 4시까지 잠들지 못해, 물을 뜨러 부엌을 향하던 그날 나는 밖에 내리는 눈을 보았다. 3월 2일인데 눈은 수북이 쌓였던 그 새벽에 나는 나도 모르게 옷을 입고 산책을 나갔다. 눈이 내리는 게 너무 이뻐서, 3개월 동안 내리지 않았던 인스타 스토리 사진을 올렸다. 그게 나의 하루를, 나를 바꿨다.
클럽 pre-drinking에서 만난 태국 여성 분이 스토리에 답장을 달아줬다.
그 여성 분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새벽에 스토리에 답장을 남겨줘서, 그 밤에 나랑 대화해줘서, 쿠키를 건내 줘서, 같이 놀자고 해줘서. 세상에 다시 나올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고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강의에 나가고, 피아노를 치고, 운동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드라마 도깨비 명대사 중, "신이 머물다 가는 순간이 있다. 당신이 세상에서 멀어지고 있을 때, 누군가 세상 쪽으로 등을 떠밀어 주었다면 그건, 신이 당신 곁에 머물다가는 순간이다." 라는 말이 있다. 그 여성 분이 달아줬던 스토리 답장은, 신이 잠이 내 곁에 머물고 갔던 순간이 아닌가라고 혼자 생각한다. 그 여성 분께 이성적인 호감이 있었지만, 몇 차례 저녁을 같이 먹자고 물어 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거절이었기에 관계의 진전은 없었다. - 지금은 친구로서 감사하다는 마음이 정말 크다.
리그오브레전드에 사용하는 시간을 줄이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외국인 친구와 음식점에서 밥을 먹었다. 친구들과 함께 햄버거를 만들어 먹었다. 무릎 꿇고 시작했던 팔굽혀펴기는, 벤치 65 kg이 되었다. (몸무게는 55kg에서 65kg이 되었다.) 피아노를 시작해 - Howl's moving castle을 완곡했다. 축구를 시작해, 처음으로 대학교에서 골을 넣었다. 삶에 대해서, 자기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깊게 대화할 수 있는 친구들을 만들 수 있었다.
친구들과 관계를 맺으며, 감정적인 교류를 통해서 - 내가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치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모르겠다. 맛있는 음식보다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다 재미있는 롤을 절제해야 하는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어 쉬운 길보다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그럼에도 난 노력하고 싶다. 내일이 기대되는 하루를 만들기 위해서.
롤이 없는 세계에서 나는 어떤 모습일까? - 이러한 세계선이 존재한다면 나는 더 나은 사람 일수도 그렇지 않을 사람일 수도 있지만, 나는 더 나음을 꿈꾼다. 그렇게 한 발작씩 나아가면, 언젠가는 몰라보게 성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