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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vs 거란 (4. 고려의 상황과 전쟁의 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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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고려는 당시 거란과 외교적으로 어떤 상황이었을까?

발해 태자인 대광현이 고려로 망명한 이후 태조 왕건은 거란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펼치면서 공격적으로 북진을 하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발해 멸망 이후 정안국과 같은 부흥국에 모인 발해인들을 제외한 발해 구성 민족들이 고려로 흡수되기 시작하고, 이들을 제외한 흑수 말갈, 여진족, 거란족은 고려와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러던 중 왕건 사후 혜종이 왕위를 이어받게 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고려는 호족 중심의 사회였고, 왕건이 죽었다는 소리는 고려의 권력이 다시 분산될 수 있다는 소리였다.

다행히 왕건이 낙점한 후계자는 왕건과 함께 후삼국 통일의 주역이었던 한반도의 권왕이었던 혜종이었고, 그가 왕위를 물려받고 금방 발생하는 자객의 암살 시도에도 맨손으로 제압함과 동시에 주먹 한방으로 자객을 골로 보낼 정도로 강건했다..

만 그는 즉위 후 2년이 채 되기 전에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 고려 왕실은 암투로 뒤덮인 살얼음판이 되었고, 혜종의 뒤를 이어 정종이 왕위에 오르지만 민심을 살피지 않은 무리한 서경 천도 시도와 호족 탄압으로 인해 정책에 반기를 드는 신하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렇게 마음 편히 지내지 못하던 정종은 어느 날 거란족에 억류되었다 등용되어 생활하게 된 최광윤이 거란이 고려를 침략할 것이라는 첩보를 보내게 되고 이를 대비하고자 급히 광군을 편성하여 예비군을 운용하기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즉위 직후 진행한 숙청에 의한 PTSD와 간종양을 감당하지 못한 정종은 그가 일찌감치 점쳐둔 동생에서 사전에 선양을 하기로 하고 죽게 되는데, 그 동생이 바로..

빛나거나 혹은 미치거나 광종이었다.

형이었던 정종의 정책을 계승하기로 한 그는 호족의 힘을 약화시킬 계획으로 노비안검법과 과거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또한 왕권에 반기를 드는 호족과 왕족들을 싸그리 잡아 숙청했으며, 광군을 개편하면서 이들을 중앙군과 연계시키기 시작하였으며, 이를 배경으로 공격적으로 북진 정책을 펼치면서 청천강 이남까지의 여진족을 몰아내고 이들과 거란의 침공을 방비하기 위해 군사들을 배치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강화된 왕권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송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수립하면서 거란에 대비하기 시작한 광종은 이 모든 것을 그의 아들인 경종에게 넘겨주고 사망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아들인 경종은 자신의 아버지한테 살해당할 뻔한 기억을 안고 살아갔고, 전시과를 확대한 것 이외에는 별 공적없이 음주가무에 묻혀 살다가 고작 6년만에 요절하고 만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러차례 일어난 숙청으로 왕족의 씨가 마르기 직전인 상황에서 광종의 동생인 성종이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의 친형과 경종의 아들 중 누군가가 적통성이 있느냐 등의 적통성 문제로 인해 자신의 위치가 위태로웠던 성종은 최승로가 제출한 시무 28조를 따라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받아들이고, 불교의 폐단을 혁파하고 10도로 행정구역을 개편, 그와 함께 군 조직 개편도 시작하여 지금의 수방사의 개념인 경군, 전방 부대 및 지역방위군의 개념인 주현군, 주진군으로 기존의 경군과 정규군을 함께 재편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을 지휘할 관리를 파견하는데 이들의 파견지에 목을 설치하면서 지금의 사령부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게 한다.

그러나 그 개혁이 진행중인 사이 고려의 외교 전략으로 인해 송나라를 침공할 시 고려를 통한 역공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 선 거란은 고려 침공을 결심하고, 결국 최광윤이 염려한 사태가 결국은 터져버리면서 소손녕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거란의 정예군들이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빠르게 고려를 침공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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