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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양을 쌓는 OPGG ]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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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4월 20일경부터 시작된 실험...


체르노빌 발전소에서 부소장과 그의 지휘아래 조수들과 함께 특별한 실험이 기획되었다.


바로 원자로의 가동이 중단될 경우 관성으로 돌아가는 터빈이 만들어내는 전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전력을 공급해줄 수 있는가? 라는 실험


실험을 하게된 이유는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장치구조가 완비되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원래같으면 설계와 시운전 당시에 완료해야 했지만 선 보고 후 완료라는 다소 책임감없는 행동으로 이미 관련자들이 공로로 훈장을 받은 상태라 무리를 해서라도 안전성 테스트를 서둘러 완료할 필요가 있었다.


실험의 내용은 만약 모종의 이유로 원자로 냉각장치의 전원공급이 중단될 경우 비상용 디젤 발전기를 돌려 냉각수를 순환시키게 된다.

하지만 대형 디젤엔진 특성상 충분한 출력에 도달하는 데 1분이나 걸렸고 기타 이런저런 문제가 있어 위험성이 존재했다.


쉽게 말하자면 원자로가 정지했을 때 냉각펌프를 작동하는 데 필요한 전력을 제때 공급할 수 있는지

불확실했고 그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실험이 기획됐다. 허나 몇 차례 시도했으나 전부 실패했고 댜를로프라는 관리자에게 순서가 넘어갔다.


실험은 다시 진행되었으나 문제점은 이 댜를로프라는 새끼는 실험을 너무나도 가볍게 여긴 사람이였다.


소련의 기밀주의 및 은폐로 그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체르노빌 발전소 자체에도 문제가 나름 있었긴 했다.

건물 자체의 내구성 문제나 원자력 발전소에 있어야하는 격납건물( 사고시 방사성 물질이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것을 방지하는 건물 )의 부제

실험의 운용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비록 일정 요소를 제어 하에 두고 있다해도 정식절차도 제대로 거치지 않고

3교대가 아닌 2교대 근무자를 실험에 투입하고 숙달된 실험자가 아닌 미숙한 실험자를 대치하는 문제도 있었다.







아무튼 실험자들은 평소라면 쓰지 않을 급수 펌프까지 가동시켜 노심 압력을 올리고 수동 제어봉 6개만을 남기고 전부 뽑은 상태였다.

규정상 최소 수동 제어봉은 15개 였고 보통은 15~16개의 수동 제어봉을 장착하고 원자로를 가동한다.


허나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하는 지휘자가 실험 매뉴얼만 따라가는 상황에서 수동 제어봉 6개만 남기고 원자로가 어떤 상황에 놓인지

상관도 안한 체로 실험을 계속했고 이미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의 원자로는 강제로 중지시킨다 해도 사고를 막을 수 없게됐다.















결국.. 1986년 4월 26일 새벽 01시 23분 45초경 세상에서 다시는 벌어지면 안돼는 가장 극악스러운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원자로 과부하로 인해 발생한 1차 폭발은 1000톤 무게의 반응로 뚜껑을 파괴했고 2~3초 후에 발생한 2차 폭발은 4호 원자로 건물의

상단부를 붕괴시켜 건물의 잔해와 원자로 내부에 있던 흑연 감속재와 파편을 3호기와 기계동을 비롯한 발전소 여러 구획에 흩뿌렸다.






폭발로 생긴 방사성 물질로 가득한 불꽃과 불씨들이 방사선에 의해 이온화 반응을 일으키며 1km 상공까지 올라갔다.


이후 감속재인 흑연이 타면서 화재가 일어남과 동시에 최소 500경 베크렐, 최대 1,200경 베크렐가량의 방사능 물질이 사방으로 누출되었다.


실험 시작 시간인 1시 23분 04초에서 폭발 시간인 1시 23분 45초까지 고작 41초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때 누출된 방사능 물질의 총량은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원자폭탄 리틀 보이의 400배이다..





폭발 후 최초의 사망자부상자들이 속출하고, 전력 케이블 대다수가 날아가 시설 곳곳이 마비되고 통제불능의 상태가 되었다.


일이 이지경까지 왔음에도 댜를로프 이 역대급 고문관 새끼는 선임 연구원과 발빠르게 대처에 나섰다.


근데 문제는 이들이 이 폭발을 "수소 폭발로 인한 것이지 원자로 자체는 아직 멀쩡함!"

라고 판단하고 발전소 소장과 부소장에게도 그렇게 보고를 했다.


고문관 폐급 새끼들이 경우없는 보고를 올려

"원자로에 문제가 생기기 전에 화재를 진압하고 수동으로 노심에 제어봉을 삽입하고 냉각수를 공급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대처가 정해졌다.


허나 이딴 대체가 정해져도 이미 4호 원자로 자체가 폭발해 붕괴되고 노심의 잔해가 주변을 나뒹굴어 엄청난 량의 방사능이 사방으로

유출되고 있을 때라 존재하지도 않는 원자로에 대한 급수 투입을 위해 인력을 투입시키는 것은 그냥 사람을 불구덩이에 넣는 미친짓이였다.






결국 원자력 발전소 폭발 신고를 받고 1차로 14명의 소방대원이 파견되었고.. 그 다음으로 급히 달려온

레오니트 텔랴트니코프 소방 준장이 지휘하는 체르노빌 소방대가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전력을 다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그들은 나중에 도착한 키예프 (현 우크라이나 수도) 소방여단과 교대할 때까지 방사능 방호복도 없이 진화 작업에 전력을 쏟았고

그 결과 오전 5시에 대부분의 화재가 진압되었고 화재 진압 이후에도 남아 현장 정리 작업까지 마쳤으나

대다수의 소방대원들이 엄청난 방사선에 노출되어 많은 휴우증을 겪었다.





사고 직후 방사선에 피폭됐던 1차로 파견된 소방대원들이 시간이 지나며 방사능 피폭 증상을 보였고

80여명중 50여명이 입원을하여 2주간 6명이 사망했는데 사망자 전원이 환기용 굴뚝에 진입한 소대 소속으로

불타오르면서 공중으로 휘날아치는 엄청난 량의 방사능물질과 흑연에 노출된 것으로 보여진다.


내부에서 열을 방출하는 것이 일반적인 불길이 아니라 계속 분열을 하고 있는 핵연료라는 걸 깨달은 소련 당국은 헬리콥터를 동원하여

대량의 붕소, 돌로마이트 ,납 ,진흙 , 모래 등을 뿌리며 화재를 진압하였다.


그러나 원자로 상공의 방사선이 너무 강해서 원자로 위에 헬리콥터를 멈추게 할 수 없었고..

원자로 상공을 지나가면서 흙을 뿌리도록 해야 했다.






위 사진은 사고현장을 수습하던 바이오로봇들의 사진이다.


말이 바이오로봇이지 전부다 사람이고 지붕은 폭발 당시 흩어져 날아가거나 쌓인 흑연 감속재 조각으로 뒤덮여 있었고

흑연들은 한 조각마다 시간당 몇 시버트의 방사능을 내뿜고 있었다.


허나 치워야할 똥은 쌓여있어서 수습은 해야되니.. 고급인력은 무슨 현재 시가로 거의 시간당 만원꼴로 목숨을 담보

저 돌맹이들을 치워야했다..





체르노빌 원전은 결국 콘크리트 석관으로 덮어버렸고 1986년 10월에 완공되었다.

현장의 소련군들은 방사능에 대한 승리를 자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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