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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4시에 가위눌리고 글 써봄..

자유8개월 전여하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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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나는 원래 악몽 같은 거 거의 안 꾸는 범인이었어.

그냥 진짜 느낌 안좋은 곳에서 잔 거 어니면 거의 안 꾸는 정도?



그런데 군 전역 후에 기운도 조금 쇠약해지고 불면증도 생기면서 근 몇 달 동안 거의 2~3일에 한 번은 가위에 눌리더라고..그래서 경험했던 것 중 제일 무서웠던 걸로 몇 개 적어볼게.



1. 2023년 7월 23일

일단 나는 자취를 해. 복층에 벽뷰 오피스텔에서 말이야. 이 날은 아침까지 친구들하고 디코로 통화하면서 게임하다 한 오후 2시 쯤 침실인 2층으로 올라가 잠에 들었어. 밤에 호프집 알바가 있어서 잠은 꼭 자야 했거든. 그렇게 잠에 들고 한 4시간 잤던가?

보다가 잠든 티비에서는 계속 하얀 불빛이 보이는데 소리는 안들리고 티비 불빛은 너무 밝은 거야..무슨 프로가 하는지도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여름철 6시면 그렇게 어두울 시간도 아닌데, 아무리 벽뷰라도 빛은 잘 들어오거든. 난 양쪽 팔을 쭉 뻗고 대자로 자고 있는 상태에서 티비를 끄려고 리모컨을 잡으려 팔을 움직이려니 꿈쩍도 하지 않더라. 온 몸을 밧줄로 묶어놓은 것 처럼 그 때 느꼈어. 아, 가위에 눌렸구나.

나도 나름 호러 매니아라서 가위에는 발버둥치면 깬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었어. 그래서 손, 발가락, 목, 팔 전부 흔들어보면서 움직이려 해도 깰 수가 없는 거야. 다행히 눈은 움직일 수 있어서 리모컨 쪽 팔을 쳐다봤지. 너무 이상했거든. 티비는 저렇게 밝은데 어떻게 티비 옆 은 저렇게 어둡지? 그 때 눈이 마주쳤어.

사람일까? 머리털인지 뭔지, 축 늘어트린 채 노려보는 눈. 그 시꺼먼 구석에서 사이사이 비치는 탁한 흰 옷. 그 곳에서 쭉 뻗어나온 팔로 내 손을 꾹 누르고 있더라. 너무 놀란 마음에 소리를 지르면서 잠에서 깼어. 놈인지 년인지, 그것 덕택에 안그래도 낮은 천장에 손을 부딪혀서 한동안 멍때문에 고생했지.





2. 2023년 8월 13일

이 날도 알바때문에 잠을 청한 날이었어. 유독 더운 날씨와 찝찝한 습도때문에 에어컨 타이머를 맞추고 잠에 든 날이었지. 정신을 차리니까 또 방이 어둡더라? 눈을 감아도 새어들어오는 불빛이 없기에 단번에 알 수 있었어. 다행히 난 이날 티비 리모컨을 쥐고 잔 날이었어. 손에는 리모컨의 고무로 된 버튼 부분의 질감이 느껴지더라.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손가락이라도 까딱거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아무리 엄지를 휘둘러도 허공만 느껴지는 거야. 이상하다? 분명 손가락에 느껴지는데. 스르르 떠지는 눈에 감사했지만, 손을 바라본 순간 내 눈꺼풀을 원망했어. 손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

오만가지 생각이 들던 나는 눈을 꼭 감고 제발 가위에서 일어나길 기도했지. 그 와중에도 이런 날 조롱이라도 하는 듯 손에는 계속 리모컨의 질감, 무게가 느껴졌어. 그러다 들리는 아주 작은 소리. 흠뻑 젖은 옷이 스치는 착착대는 기분 나쁜 소리와 물을 잔뜩 머금은 싸구려 운동화의 찔꺽거리는 소리. 아주 작게, 아주 느리게, 그리고 소름끼치게 1층에서 들려오더라. 질퍽질퍽, 찔꺽찔꺽거리는 야릇하면서도 불쾌한 그 소리가 점점 빨라지고, 커지고 있었어.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었지. 이번엔 진짜로 위험하다고 생각이 들었어. 너무 급한 마음에 정말 PP박스 옮길 때처럼 안간힘을 써서 몸부림쳤지. 소리가 계단을 타는 걸 느꼈을 때 눈이 번쩍 떠지면서 오른손에 들린 리모컨을 벽에 집어던졌어. 겨우 가위가 풀린 거지. 이때부터 느꼈어..점점 상태가 심각해지고 있구나...





​3. 2023년 8월 18일

맞아, 오늘이야. 밤 12시 쯤, 2층이 너무 더워서 1층으로 피신해버렸어. 복층에 사는 사람은 무슨 기분인지 알 거야. 1층에 놓인 PS4로 유튜브를 틀어놓은 채 2인용 소파에 몸을 구겨넣고 잠을 청했지. 오늘은 간접조명을 키고 잠들었어. 그냥 왠지 그러고 싶은 날 있잖아? 괜히 똥폼이든 분위기든 잡고 싶었던 거겠지. 그런데, 그런 거 알지. 정말 아무 말도 아닌데 갑자기 귀에, 뇌리에 꽃히는 목소리와 말.

"아, 맞다."

처음 듣는 아저씨 목소리였어.

정신을 차리니, 플스가 꺼져있더라. 뭐, 오랫동안 냅두면 당연히 절전모드로 들어가게 설정해놨으니까 나는 유튜브 자동재생이 끝나서 그런 줄 알았어. 그런데 눈이 안떠지더라. 정말로. 배게에 눌렸는지, 누가 꽉 누르고 있든지, 눈 은 감긴 채 멍청하게 쭈그려서 누워있었지. 집이 옛날 건물이라 방음이 워낙 안되거든? 가끔씩 옆집 부부싸움 하는 아저씨가 보는 시사 유튜브 채널 소리가 들릴 정도.

아주 작은 소리로 "쏴. 어서, 쏴. 쏴버려.."하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어. 오늘이 처음이야. 가위 눌린 채 소리를 듣는 게. 그때까지는 그냥 옆집에서 무슨 사극같은 걸 보는 줄 알았어. 나는 시간을 보려고, 불을 찾으려고, 왠지 오싹한 기분을 떨쳐내려고 팔을 휘두르며 소파 뒤 책상에 놓아둔 폰을 찾기 시작했지. 액정을 여러 차례 터치한 탓에 유튜브가 틀어졌나 봐? 갑자기 광고소리가 들리더라.

옛날에 티비보면서 큰 애들은 알지? 그 명랑하게 연기하는 여자 목소리로 아이들 장난감 광고하는 소리. 그게 들리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옛날 광고가 틀어질 일도 없고, 폰은 비밀번호가 걸려있을 뿐더러 유튜브도 프리미엄을 쓰고 있는데 그땐 왜 생각을 못했는지..아무튼 장난감 총칼같은 걸 설명하고 있더라. 이건 그냥 일어나자마자 친 검색기록. 완다인지 원더인지, 뭐 그런 회사이름을 들었거든. 어떻게든 폰을 집어서 전원버튼을 눌러대는데, 폰이 안켜져. 분명 100%인 걸 확인했는데, 아무리 3년 넘게 쓴 폰이라도 꺼질 리가 없는데. 계속 쏘라는 소리에, 반복되는 광고 소리. 머리는 점점 혼란해졌어. 지금 생각해보니 왼쪽 얼굴에 뭔가 덮여있었네. 오른쪽 눈밖에 감각이 없었거든. 이런 상황 속 의문 하나가 머리를 스쳐 지나가더라. '어? 내가 분명 간접조명을 켜놨는데? 꺼진 건가?'이 순간 나도 모르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해버렸어. "어두워.."

그 순간 광고를 하던 여자 목소리로 귀에다 속삭이더라.

"좋네."

헉!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깨어났어. 유튜브는 김X원 의 시시콜콜한 키보드 리뷰나 틀어져 있더라. 온 몸이 땀범벅인 채 일어나 불을 키고 샤워를 했어. 씻는 동안에도 무서워서 계속 활기찬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씻은 뒤에는 지금까지 깨어있어. 다시 잠들기는 솔직히 무섭거든.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가위라는 건 결국 정신과 신체의 부조화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니 마음이 놓이긴 하는데, 한켠으로는 아직도 불안해.

다들 무서운 일 있었으면 댓글로 말해줄래? 이런 겁쟁이라도 무서운 건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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