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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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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내가 쓴 글을 보면 좋아했던 친구와 최근에 연락이 자주 된다고 했었는데 최근에는 꿈에서까지 나타나고 있다.

다른 내용은 아니다. 그냥 내가 초등학생때 겪었던 그때의 사건이 떠오른다.

그때의 나는 초4에 막 학교로 전학왔으며, 어렸고, 다른 친구들과 친해지려 시도했지만 불과 두달만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무고로 학교생활이 힘들어졌다.

그 친구가 연예인 사진을 모으는 걸 알고는 있었으나 그 목적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고 그렇게 하면 안된다며 말을 했을 뿐인데 그 다음날 갑자기 학교에 이상한 소문이 퍼졌다.

내가 그 친구에게 몹쓸 짓을 저질렀다는 어이없는 뜬소문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나를 쓰레기 취급했고, 내 휴대폰 로그와 CCTV등 각종 증거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그 년은 사과만 달랑 던지고 그 다음주에 어떠한 해명도 하지 않고 전학을 갔다.

그 이후부터 나의 학교 생활은 망가졌다. 아무도 나와 놀아주려고 하지 않았고, 어릴때부터 공부에 소질이 있었지만 그 충격으로 인해 성적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머리에선 각종 부정적인 생각들의 싹이 텄다.

그렇게 하루하루 비참하게 어두운 표정을 하면서 빨리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나였지만 결국 소풍을 한번 가게되었다.

초 5때였다. 혼자서 도시락을 까먹으려고 했다.

서러움에 눈이 점점 흐려지고 방울방울 주변 풍경이 일그러질 때 내 옆에서 한 아이가 나에게 다가왔다.

물범을 닮은 눈망울과 밝은 웃음, 긴 머리를 뒤로 끈으로 묶었던 한 여자아이였다.

그 아이는 작은 손가락으로 내 눈을 한번 닦아주더니 즐거워할 시간에 왜 울고있냐고 물어봤다.

나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서 서럽다고 말했다. 내 결백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기에 모두가 싫다며 차라리 죽고 싶었다고.. 그렇게 아무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떨리는 몸과 목, 폐에서 찢어질듯 아픈 소리로 그 아이에게 내뱉었다.

그런 나를 가만히 옆에서 안아주고는 코를 풀라며 곰돌이가 박혀있는 손수건을 주었고 그날 밥은 먹지도 못한 채 목놓아 울기만 했다.

그 아이는 내 옆에서 나의 말을 들어주려고 했고, 결국 선생님들에게 따로 말을 하고 나와 같이 돌아다녔다.

나는 그런 그 아이에게 미안해서 부모님이 주신 만원권으로 틈만나면 간식을 사주면서 미안하다며 몇번을 외쳤던 것 같다.

그 이후 그나마 있던 풀도 뽑아낸 내 마음속에 어떻게든 그 아이를 들여보내고 싶어졌고, 그 마음은 열정이 되어 다시 공부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2년간 놔버린 공부는 다시 쌓기 힘들었고, 초등학교가 중학교로 바뀌고 중학교 2학년이 거의 끝날 때쯤이 되어서야 다시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등학교때 만났다. 서로 특수반의 경쟁자, 기숙사생이 된 채로 서로 인사를 주고받지만 더욱더 경쟁할 수 밖에 없는 사이였다.

그러나 내가 받은만큼 갚아야 한다는 마음은 커졌고, 결국 그 아이를 도와주기로 했다.

나는 학창 시절에 수학은 1학년에 8위, 2학년부턴 4위 내외로, 과학은 전과목 4등 이내, 사회는 전교 1등급을 먹어본 적 있었다.

반면 그 아이는 간호사를 목표했지만 일부 과목이 뒤쳐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결국 내 1학년 동안의 자습시간 중 주말에는 기숙사생들이 같이 공부하는 점을 이용하여 꾸준히 성적을 높여주었다.

또한 다른 사건도 많았다. 주말에 이상한 사람이 그 아이를 따라 기숙사에 들어오려고 해서 그 사람과 주먹다짐을 하면서 몰아낸 적도, 수시로 간식을 시켜주기도, 음료수를 챙겨주면서 졸지 말자고 커피를 주기도..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나는 수능 당일 고열에도 불구에도 시험을 치룬 결과로 지방거점대학의 공과대학으로 입학을 했고, 그 친구는 지역과 가까운 대학교의 간호학과에 합격했다.

서로 대학을 다니다보니 교류가 점점 끊겨갔고, 군에 입대한 이후 더욱 사회의 목소리를 듣기 힘들다보니 결국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은게 1년이었다.

그렇게 전역 이후 내 진로에 대한 회의가 들던 중 의대로 간 내 친구, 카이스트에 있던 한때의 내 우상이던 친구들과 연락을 취했고, 결국 재수를 시작했다.

오늘은 재수 시작을 하기로 결정한지 벌써 40일 가량이 되는 날이다.

모든 과목들의 기초부터 심화 과정을 끝냈고, 문제 풀이 방식의 문제점을 2일 전부터 오답노트를 통해 파악하여 최근에는 이 부분들을 노려 어떤 문제든지 틀리는 일 없이 다 맞는 것을 목표로 공부중이다.

수학은 벌써 성과가 드러났고, 과학도 그 성과가 나타났다. 국어와 영어도 지금 추세라면 4월부터는 아마 내 고3 시절보다 더 잘하게 될 것 같다.

내가 재수를 결정하고 쉬지도 않고 한달을 독서실에 개근도장을 찍으러 갈 때 어머니는 고3때의 담임 선생님의 조언때문에 말리지는 않겠으나 무엇을 목표로 하길래 그렇게 필사적이냐고 물어보셨다.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이라고 그때는 말씀드렸으나 그것 이외에도 다른 욕망이 내 마음 한켠에 자리잡았다.

수능을 망친 이후에 의기소침하던 나 자신은 군 시절에 불침번 때마다 한번씩 성찰하면서 삶을 되돌아보았고 그때마다 항상 초등학생의 내가 느꼈던 그 마음이 다시 장작을 건네주며 나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무엇을 위해 살것이냐? 그리고 어떤 이유를 가져야 삶에 필사적으로 살아나갈 것이냐? 이렇게 물어보았다.

이젠 답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위로해주던 그 아이에게 방파제가 되고 싶다고, 그래야 그 아이가 겪을 아픔을 상처투성이인 내가 더 상처를 갖더라도 받아내어 환한 난로와 같은 온화함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고.."

이번 수능이 끝나고 아픔을 완전히 떨치진 못하더라도 마음의 흉터만은 지워낸 뒤 더욱 밝은 모습으로 그녀에게 감사를 전하는 내 모습을 그리면서 적어도 올해는 그걸 원동력 삼아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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