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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한편의 글? 읽어줄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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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

미련이란, 헤어진 다음 그 사람을 그리워하며 잊지 못한 마음이다. 이 미련이란 것 때문에 사람은 고통을 받는다. 어찌하여 그 사람을 잊지 못하고 미련이 남은 것인가. 그 이유는 간단하고 이런 이유로 자신이 싫어진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했고 사랑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나의 기억 속에서 아직 잊히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고통스럽다. 그 사람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터, 감정은 다 떠나버렸지만. 그걸 다 알고 있으면서도 잊을 수 없는 사람. 쉽게 잊을 수 없는 사람. 잊고 싶어도 너무 좋았던 사람. 아무리 떨쳐내고 생각을 안 하려고 하여도 함께한 추억들과 갤러리에 같이 찍은 사진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난다. 이것이 내가 그동안 보아왔던 사랑이 맞는가, 행복한 추억은 어디 가고 이별이란 고통만 남았는가. 어째서 그럴 수가 있는가. 사진을 보면 웃고 있는데 분명 웃고 있지만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여기서는 웃어도 웃음이 아니다. 허망함과 추억에 시린 웃음이다. "이땐 정말 행복했지" 행복했을 텐데 지금의 자신을 생각하면 울음이 터져 나올 것이다. 그 사람은 나에게 꽃을 줬었는데 잘 키우며 잘 살리고 잘 해주고 하였고 꽃이 활짝 피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떠난 후 눈물을 흘리며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꽃은 온데간데없다. 그 꽃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꽃의 줄기만 남아있었다. 꽃이 피고 또 지듯이 내게 좋은 사람은 또 올 것이고 다시 갈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듭하면 더욱더 연애에 대하여 성숙해질 거라고 이별을 기회로 생각하며 자신을 위로하며 생각을 바꾼다. 하지만 그 사람은 계속하고 있다. 쉽게 못 잊어서 그녀가 올린 게시물들을 보며 한숨을 쉰다. "아 얘 오늘 생일이지" 나를 좋아해 주던 그 사람은 온데간데없으며 웃음 짓는 그녀의 볼뿐이다. 하지만 다시 기회가 오더라도, 만약 오더라도 다시 시작할 생각은 없다. 이 사람 그 전에 그 사람이 나에게 아직도 상처가 되는 행동하였으니까. 또 그렇게 되고 고통받으며 하루를 웃으면서 살 수 없으니까. 그 사람은 나에게 첫 번째로 헤어졌을 때 이유가 없었다. 연인이라면 자신의 고민과 힘든 일은 말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하지만 그 사람은 말하지 않고 자기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그 우울감 때문에 나와 헤어졌다. 이게 첫 번째다. 몇개월이 지나고, 어리석은 그 사람이 다시 새벽에 내게 와서 이야기하였다. "내가 정말 미안하다고 그러면 안 되는데 정말 미안하다고 다시 시작하자고 안 그러겠다고" 이 사람의 잘못을 나는 받아주고 용서해주고 우린 다시 시작했다. 근데 안 그러겠다는 약속을 한 그 사람은 어딘가였는가.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심리적으로 불안한 시기가 와버렸다. 나보다는 친구가 먼저가 되고 나는 제쳐두고 계속하여 돌리다가 너무 서러워서 그 사람에게 한마디를 하려고 강당 뒤쪽으로 불렀다. 나는 내가 할 말을 다 생각하고 정리까지 하며 그 사람에게 말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 사람이 먼저 말을 꺼냈다. "헤어지자" 이때 미칠 것 같았다. 정말로 미쳐버릴 거 같았다. 내가 준비해뒀던 할 말은 다 지워져 버리고 그때 하였던 생각이라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 사람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바보같이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눈물만 흘리는 멍청이가 어디 있는가, 눈물만 흘려서 그 사람은 가버렸다. 나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사실 눅일 정도는 이미 다 채고 있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손을 우연히 보았는데 반지가 없더라. 아 깜빡했나 보다. 이 반지는 연애하며 줄곧 서로 끼던 매일 끼던 반지였다. 근데 반지가 없더라. 실수겠지 생각하며 하루하루 그 사람의 손을 계속 보았다. 하지만 반지는 온데간데없고 그 사람과 대화하려고 하였는데 저 때 헤어지자고 했던 거다. 마지막 말을 할 때도 그 사람의 손을 무심코 봤다. 우리가 약속하며 추억을 담았던 반지가 없더라. 비록 반지는 돈 몇푼 주고도 살 수 있었던 반지였지만 깊은 의미가 있었던 반지였는데. 그 반지가 없다. 나는 그 반지를 매일 끼고 다녔다. 그 사람이 안겼을 때도 매일 끼고 다녔다. 헤어지고 나서도 반지를 쉽게 못 버렸다. 좋았던 추억을 버릴 수는 없으니까 비록 마지막은 나빴고 마음도 검게 변하였지만, 추억이라는 게 이리 고통스러웠던가. 이 추억을 버리면 이 아픔도 쉽게 버릴 수 있는데 나는 왜 쉽게 버리지 못하는가. 다른 사람들은 이 기억을 그냥 버리라고 하지만 나는 좋았고 나는 그 순간이라도 행복해서 좋았다. 그 찰나의 순간이라도 그때의 내가 행복했으면 좋다. 나는 그 사람이 미워도 그때의 내가 좋았으니까. 그때의 나라도 행복해서 좋으니까. 지금의 불행한 모습을 보아도 그때의 추억이 나를 치료시켜준다. 일종의 마약 같은 것이다. 그때의 내가 좋아서 이 추억을 들이키면 지금의 나의 상태는 더더욱 안 좋아지지만, 순간의 시간 정도는 좋아져서 포기할 수가 없다. 자꾸 이러는 내가 밉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좋겠지만, 나는 변하더라도 그 사람은 변하지는 않으니까. 최근에 헤어진 사람도 그렇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흔치 않은데 나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전 사람이 나에게 준 고통을 잊고 이 사람과 사람을 시작 하였지만, 정작 내가 좋아하여 주고 하니 그 사람은 나에게 마음이 이젠 없나 보다. 사랑은 허상인 거 같다. 피었다가 이내 숨어버릴 허상이라고 다시 보니 사랑은 되게 희한한 감정이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을 때 사랑이 온다. 그런데 내가 막상 하고 싶을 때는 오지 않는다. 나를 놀리기라도 하는 듯 헤어지고 몇 개월 뒤 다시 사랑이라는 게 왔다. 그래서 그 사랑을 막상 잡아보니 제대로 된 사랑은 아니더라고 짧은. 아주 짧은 찰나의 감정. 이 사랑이라는 것이 나에게 장난이라도 하는가, 도대체 언제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있나 추운 겨울이 가고 따듯해지는 날씨. 꽃이 다시 피는 봄이라는 계절이오는데 나는 언제쯤 꽃을 필 수 있겠는가 언제쯤 이 봄들의 꽃들처럼 얼굴을 당당하게 들고 꽃을 필 수 있겠는가. 나를 두고 간 사람들은 꽃을 필 수 있는가, 그 사람들은 나를 잊고 새로운 꽃을 피울 사람들이다. 그냥 빨리 더욱더 멀리 가서 내가 모르는 곳까지 가서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그 사람들은 나를 버렸고 또 잘 지낼 사람이다. 하지만 왜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냐고? 내가 화를 낼 수도 없고 버렸는데 내가 뭘 어찌하겠단 말인가. 지금 나에게는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짙어져 가는 마음과 행복하지만 더러운 추억, 미련이 있다. 그 사람들과 연애하면서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 미움. 내면에 있던 나를 숨긴 것. 그 사람들한테 잘 보이려고 내가 하지 않았던 것을 하며 내가 하던 것을 줄이며 친구들과의 만남을 줄인 것. 나는 나란 나를 숨기려고 했던 게 너무 많다. 가끔 솔직하지 못했던 순간과 내가 하지 못하여 미웠던 순간. 그 생각이 자꾸 나서 나를 괴롭힌다. 이때 내가 그랬으면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까, 내가 나를 너무 숨겼던 것은 아니었던가. 상대한테 너무 잘 보이려고 했던 게 아닐까. 그때의 그 사람들은 그런 나라도 이해를 해줄 수 있었을까 상대를 너무 의심들하고 세상을 의심하고 사랑을 의심한다. 의심에 의심은 고통이다. 얘가 나한테 이러면 어떡하지 혹시 나한테 그러는 거 아니겠냐는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너무 비참하며 한심스럽다. 한편으론 그 사람들도 참 싫어진다. 어째서 나를 좋아해 주던 것일까, 그리고 마지막에 왜 나를 떠나가는 것일까, 그 사람들도 초중반에는 나를 좋아해 주고 나도 좋아해 줬는데. 연애가 전개되며 후반에 갈 때 한쪽은 사랑하지만 다른 한쪽은 이 사람을 싫어하게 되는 소설을 도대체 누가 쓰는 것일까, 이것은 과연 우연일까? 이 말도 안 되는 소설의 끝은 도대체 언제인가 끝이 없다면 이 고통은 얼마나 지속되는가 한 번쯤 자신이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하다면 생각은 해보지 않는가. 내 인생이 과연 소설이 아닐까 어떤 사람이 만든 것일까, 이 소설을 만드는 사람은 도대체 왜 나의 고통을 즐기는 건가. 가끔 행복한 순간도 찾아오긴 한다. 소설을 너무 우울하게 만들면 재미가 없으니까. 그럼 소설 속 사람은 제작자가 만든 포승줄을 잡는다. 그리고 순간 기쁘게 만든다. 기쁘게 만들고 고통을 준다. 아주 끔찍하다. 이 인생이라는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소설 속 사람의 마음 100% 읽지 못한다. 아무리 위로해줘도 안 씻겨나가는 상처라는 게 있으니까. 소설을 넘어와서 현실에서도 봐도 그렇다. 사람에게는 트라우마라든지 상처 한 개씩은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반짝이게 씻겨도 씻겨질지가 앓는 상처가 있다. 그게 사랑인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나는 사람에게 생긴 상처와 사랑에게 생긴 상처와 소중한 걸 잃어버린 상처가 있다. 그래서 되도록 절대 버리게 두지 않는다. 근데 이게 부작용이 있다. 내가 못 버리니까 상대방이 나를 버리는 것이다. 내가 버리면 소중한 걸 잃어버렸던 상처가 생각이 난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던 사람이. 나를 위해 모든 걸 할 수가 있던 사람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 사람과 못다 한 일들이 너무 많다. 내가 못되게 행동하고 그런 게 너무 후회된다. 그래서 이 트라우마 때문에 소중한 걸 되도록 버려지게 두지 않는다. 내가 만약 버린다면 그 사람 생각이 나서 미칠 거 같으니까. 그 미치겠는 감정 때문에 쉽게 버리지 못한다. 언행과 행실은 별로 좋지 않고 그렇지만. 진짜 아끼는 사람들은 아주 잘해준다. 근데 그게 문제였을까,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은 내가 버리지 못하고 떠나버린다. 사람들 마음을 채우지 못해 참 많이도 눈물 흘렸다. 왜 떠나는 것인지. 나는 끝까지 잘해 줄 수 있는데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흔치 않으니까. 나를 진짜로 사랑해줬던 그 사람은 잃어버렸으니까. 먼 길 돌아 어쩔 수 없이 떠나버렸으니까.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없으니까. 이제는 마주 보고 있어도 닿을 수가 없으니까. 아직도 가슴 한쪽에 그 사람의 체온, 인성, 따듯 한마음이 아직 있으니까. 그 사람의 마음을 이어받아서라도 간직하고 싶으니까, 그 정도로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버려진다는 것에 트라우마는 없지만 버린다는 건 트라우마가 있다. 이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내가 뭘 어쩔 수가 없어서 떠났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절대로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끝까지 나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사랑이 녹슬어도 다시 닦아 비출 수 있으니까. 내가 이 트라우마를 기회로 쓸 수 있는 순간이 오면 좋겠으니까. 그러면 그 사람도 나를 보고 마음 편히 웃을 수 있으니까. 나는 나를 버린 사람들이 너무 밉다.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못 잊는다. 좋았으니까, 나를 아껴줬으니까, 아껴줄 때마다 그 사람 생각이 났으니까. 그래서 너무 좋았으니까. 나는 어릴 때 사랑받지 못했으니까. 주는 방법은 잘 알지만 받는 방법은 잘 모른다. 나는 어릴 때 너무 고통스러웠으니까. 엄마라는 사람이라는 빈자리가 뼈저리게 느껴졌다. 나를 낳고 가버린 사람. 그것 때문에 우리 아빠가 고생했으니까. 그래 놓고 돌잔치 때 다시 돌아온 사람. 그리고 다시 또 가버린 사람. 너무 밉다. 엄청 밉다.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힘들게 했으니까. 나는 아직도 엄마가 밉다. 어릴 때 이것 때문에 사랑을 못 받았다. 하루하루 아빠 혼자 돈 버는걸 보고 용돈을 차마 받을 수 없었다. 힘들게 번 돈인데 내가 어떻게 쓰겠는가. 하지만 이 사람이 없어지고 나는 초심을 잃은 거 같다. 이 존재가 없으니까 점점 내가 왜 이러는지 점점 예전에 착했던 아이는 온데간데없고 몸만 커버리고 성격은 약간 삐뚤고 말도 잘 이쁘게 못하지만 그 사람을 실망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 나 때문에 고생만 하고 간 사람이 너무 미친 듯이 생각이 난다. 그래서 내가 행복한 모습만 보이고 우울한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살았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진 게 없어도 가진 것처럼 행동하고 우울해도 행복하게 행동하며 나 자신을 속였다. 근데 이게 반복이 되다 보니까 습관처럼 스며 들어갔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도 연애를 할 때 나를 숨겼다. 이런 나를 차마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아니, 차마 보여줄 수가 없었다. 지금과 너무 다른 나를. 내면에만 자꾸 숨겨둔 나를 보여줄 수가 없었다. 내면에 숨겨둔 나는 너무 약하니까. 지금은 껍데기에 불과한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으니까. 하지만 껍데기가 너무 단단한 걸까, 내면의 내가 잘 못 나온다. 그래서 나의 진실을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근데 그게 연애라는 것에서 잘 보여줄 수 있었다. 지금은 전전 애인 이고, 그 사람이 너무 밉지만. 나의 진실을 말을 할 수 있었다. 용기를 내어서 말했다. 나는 놀림을 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위로해주고 또 위로해주고, 울고 있던 나를 안아줬던 사람이었다. 마지막에도 울고 있던 나를 안아주고 가버린 사람이었다. 내가 처음 나의 내면의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었다. 최근에 헤어진 사람도 이 사람 덕분에 정신력이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처음으로 헤어지고 나서 이 경험을 이용한 것이었다. 이 사람 때문에 깨달은 게 많다. 경험도 늘었고, 최근에 헤어진 사람도 약간의 도움은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껍데기에만 숨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더 이상 숨기지 않을 것이다. 이 고통스러운 감정들이 무뎌지고 없어질 때까지 나는 숨지 않는다. 미련이란 것도 이럴 땐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왜 내가 못 잊겠는지 알 거 같아서. 이러한 도움을 준 사람이라면 잊기 쉽지 않다. 나를 떠난 사람이지만 도움은 확실하게 되었다. 헤어질 때는 벼랑 끝에 매달려 있었다면 지금은 벼랑 위에 떳떳하게 서 있을 정도이다. 지금까지 나의 소설 같은 이야기의 끝이다. 마음만 먹으면 더 만들 수 있다 더 만들란 말만 해라. 바로 만들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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