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5~6편 정도로 생각하고 열심히 준비한 롤역사 탐방 시리즈야. 10년 넘게 지속되어온 역사를 5~6편으로 줄이는 만큼 세부적인건 많이 못 다루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데는 문제 없을 거야. 재밌게 읽어주길 바랄게!
1. 롤 E-스포츠의 시작과 EU메타의 성립
롤 E스포츠의 제대로된 시작을 알린건 2011년 6월 치뤄졌던 '리그 오브 레전드 시즌 1 챔피언십' 이라는 대회야. 아직 규모도 크지 않고, 세계적인 대회도 아니었지. 참가팀도 북미 3팀과 유럽 3팀, 필리핀 1팀, 싱가포르 1팀. 이렇게 총 4개의 나라에서 8개의 팀만이 참가하였고, 상금도 99500달러(한화로 약 1억원)정도로 현재에 비해 훨씬 적은 규모로 치루어졌어.
비록 규모도 작고 대회의 수준도 지금에 비하면 많이 낮았지만, 이 대회는 현재 10년 넘게 이어져온 롤드컵의 시발점이자 EU메타가 정립된 매우 의미와 영향력이 큰 대회였어.
실제로 이 대회가 치뤄졌을 당시에는 라인이라는 개념이 지금과 같지 않았어. 제대로 정립이 되기 전이었거든. 그런데 여기서 프나틱이 탑과 정글에 브루저 및 탱커를, 미드에 메이지를 보내고 바텀에 원딜과 서포터를 함께 보내 원딜을 보좌하는, 이름바 EU메타를 들고 와서 우승을 해버린거지. 아래는 초대 챔피언 프나틱의 모습이야.
초대 롤드컵은 매우 작은 소규모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롤드컵의 기반이자, 현재 우리가 롤하면 떠올리는 EU메타가 정립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고 주로 평가 받아.
2. LCK의 등장과 TPA의 소년만화
이렇게 프나틱이 우승을 차지하고 다음해인 2012년, 롤판의 규모가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해. 유럽, 북미는 물론이고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리그가 생기고 롤드컵도 서서히 우리가 아는 현재의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하지.
상금의 규모도 200만달러(한화 약 20억원)의 규모로 커지고, 챔피언쉽 스킨도 출시되는 등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어. 아래는 최초의 챔피언쉽 스킨인 챔피언쉽 리븐이야.
그렇게 2012년 가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롤드컵에 드디어 자랑스러운 한국팀인 '아주부 프로스트'와 '나진 소드'가 참가팀 자격을 얻고 한국 대표로써 참가하게 되지. 당시 아주부에는 클템이나, 샤이, 빠른별, 메라 등등 롤 E스포츠를 즐겨본다면 한번 정도는 들어 볼법한 유명한 선수들이 많이 소속되어 있었어.
많은 기대를 안고 참가한 아주부 프로스트는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첫 롤드컵에서 결승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내고 명부상실한 우승 후보 중 하나로 이름을 떨쳤어. 하지만 결승으로 가는 길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어. 내부 잡음이 좀 많았거든.
아주부의 원딜러인 건웅의 눈맵 사건과 아주 유명한 클템의 "이즈한테 일단 궁썻어.", "죽여 이 개새끼. 죽여 이 시발새끼. 일로와 이 개새끼야." 등의 심각한 욕설이 생중계 되버리는 등 많은 사건들로 여론이 매우 안좋은 상황이었어. 게다가 상대인 TPA는 상대적 우승 후보는 커녕 몇승만 해도 성공한거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언더독이었는데, 이런 팀이 결승까지 올라갔으니, 사람들은 당연히 TPA를 응원하겠지.
TPA를 응원하는 현장 분위기에 내부 잡음으로 인해 금이 갈대로간 맨탈로 인해 아주부는 첫 세트를 가져왔음에도 그대로 역스윕을 당하며 TPA에게 처참하게 패배하고 말아. 그렇게 TPA는 소년만화를 써내렸고, 아주부는 서서히 기세가 떨어지게 되지. 아래는 소년만화를 완성 시키고 롤드컵을 들어 올리는 TPA의 사진이야.
이렇게 해서, 오늘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야. 긴 글 읽어줘서 고맙고, LCK의 장기 집권의 시작을 다룰 다음편은 더 재미있는 내용으로 돌아올게. 추천 한번만 눌러주면 너무 고마울거 같아. 그럼 안녕~
세줄요약
1. 초대 롤드컵에서 프나틱이 우승하며 EU메타 성립
2. 초대 롤드컵이후 롤판이 점점 커지기 시작함
3. 이후 치뤄진 시즌 2롤드컵에 아주부가 한국 대표로 참여하였으나 소년 만화를 써내린 TPA에게 결승에서 패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