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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T의 부진에 대해 사람들이 간과하는 3가지 사실

자유6년 전be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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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CK를 챙겨보는 사람에게 SK 텔레콤 T1의 5연패는 충격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습니다. 진에어와의 경기때만 하더라도 역대급 경기의 예기치 못한 피해자정도로 보여졌고 그 충격의 여파로 인해 와신상담한 KT와 디펜딩 챔피언 킹존에게는 패배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우승후보와는 거리가 멀었던 MVP와 아프리카에게까지 완패를 당할거라고 시즌 전 예상한 사람은 없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SKT가 9위? 이거 실화냐?]

 

SKT의 부진을 논함에 있어서 가장 간단하면서도 쉬운 방법은 선수들의 폼을 직접적으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운타라는 현재 리그에서 가장 좋지 못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탑 라이너가 되어버렸고, 블랭크는 소극적이다 못해 존재감이 제로에 가까운 정글러로 회귀하였으며, 페이커와 바텀 듀오 역시 최전성기 폼에는 못 미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이죠. 이 모든 말들이 안타깝지만 사실입니다. 현재 개개인의 폼을 놓고 봤을 때 SKT는 소년가장도, 영고라인도 없는 슬럼프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CK 트로피를 6번 거머쥔 무적함대가 단순히 슬럼프로 부진하고 있다고 보기엔 그들의 부진이 너무나도 급작스러워 보입니다. 여기에 밴픽의 문제를 논하기에는 밴픽이라는 것 자체가 미시적인 요소이고 (극단적인 예로 KSV나 킹존이 SKT의 밴픽을 따라한다고 해서 9등팀이 될것 같진 않습니다) 메타를 논하기엔 SKT는 어느 메타에서도 살아남았던, 가장 메타의 변화에 둔감하던 팀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에서 단순하게 팀을 평가하는 방법이 아닌 사람들이 조금은 간과하고 있는 몇가지 부분을 바라보면서 SKT T1의 현재 부진을 확인해보자 합니다.

 

1. 낡아버린 SKT의 초반 운영 – 협곡의 전령 딜레마

무적함대 SKT의 최전성기를 생각해보면 “강한 라인전을 바탕으로 우위를 선점 한 뒤 중후반 한타로 그 유리함을 굳히는” 운영의 정점을 보여주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체급이 달랐다는 겁니다. 그 다른 체급의 바탕으로는 페이커가, 임팩트와 마린이, 그리고 뱅과 울프가 건재했기 때문이죠.

시간이 지날수록(정확히는 2015시즌 마린의 이적 이후) SKT의 초중반은 그 강점을 잃기 시작합니다. 가장 라인전이 강하던 팀에서, 그냥 반반만 유지하면서 후반 운영을 믿는 팀으로 말이죠. 그리고 그 초중반은 지난 섬머시즌부터 최저점을 찍게 됩니다.

[SKT의 EGR(초반 경기 지표)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위의 표에서 보여지는 EGR이라는 지표는 초반 15분간의 퍼포먼스를 통해 팀의 초중반의 강함을 나타냅니다. 50점이 평균치, 60점 이상이면 정상권팀이라고 개발자는 이야기합니다. 즉 지난 섬머시즌부터 SKT의 초중반 운영은 리그 평균으로 회귀하더니 롤드컵때부터는 평균보다 못한 수준이 되었다는 겁니다!

 

 

[작년 롤드컵 8강 진출팀들의 EGR. SKT T1은 이중에서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SKT의 초중반의 몰락은 어디서 왔을까요? 공교롭게도 이 무렵부터 리그 오브 레전드에 큰 변화가 하나 일어났습니다. 바로 협곡의 전령의 탄생입니다.

 

작년 여름 SKT T1의 LCK 섬머시즌 개막전은 삼성 갤럭시와의 2연전이였는데, 이 경기에서 삼성은 새로나온 오브젝트인 협곡의 전령을 획득, 바로 SKT의 미드라인에 전령을 소환해서 1차타워를 부수고 2차타워의 피를 절반이상으로 빼놓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너무 쉽게 미드 타워를 내준 SKT는 결국 그 경기에서 퍼펙트로 완패하고 말았습니다.

[전령의 등장에 속수무책으로 날아간 SKT의 미드타워]

저는 이 경기가 현재의 SKT에게 있어서는 1패 이상의 의미를 주는 상징적인 경기라고 생각합니다. 협곡의 전령이 나타난지 거의 1년이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SKT는 전령을 통해서 이득을 보는 장면을 그렇게 눈에 띄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중반의 팀의 강점을 토대로 상대의 넥서스 앞에서 전령댄스를 보여줬던 킹존이나 시간을 벌기위해 협곡의 전령으로 밸런스를 맞추는 진에어 (이번시즌 협곡 획득 확률 77%) 같은 팀에 비해서는 확실히 상반된 결과입니다.

 

[전령 등장 이후, 성적에 관계없이 SKT는 단 한번도 전령 친화적인 운영을 보여준 적이 없다.]

 

SKT가 많은 연습을 통해서 협곡의 전령이 본인들의 운영에 크게 도움이 안된다는 내부 결론을 내렸을수도, 혹은 그 시간에 다른 이득을 챙겼을 수도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령 출현 이후로 초중반의 주도권을 계속해서 가져오지 못하고 고전하고 있기에, 둘의 관계가 전혀 없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2. 변화된 팀들의 운영 – 사라진 기적의 한타

2018시즌에 맞춰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 주목하고 있지 않지만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라이너들의 분당CS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는 점입니다. 한때 더티파밍의 상징이였던 분당CS 10은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고, 거의 매경기마다 분당CS가 10개가 넘는 일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최근 3시즌 분당 CS 개수의 변화 (탑/미드/ADC 기준)

2017 Spring – 8.7

2017 Summer – 8.9

2018 Spring – 10.0

 

평균 분당 CS가 10 이상인 선수들의 숫자

2017 Spring – 0

2017 Summer – 1 (Teddy)

2018 Spring - 18

 

분당CS가 높아진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존재합니다. 미니언의 생성시간이 타 시즌보다 빨라지기도 했고(그래봤자 겨우 6개 차이입니다만), 존버메타를 위해 웨이브 클리어가 좋은 챔피언들이 선호받는 시대이기도 하죠. 하지만 그만큼 간과를 할 수 없는 사실은, 팀들의 운영이 좀 더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미니언들을 파밍 할 수 있다는건 그만큼 놓치는 cs가 줄었다는거고, 즉 좀 더 효율적인 라인관리를 추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효율적인 라인관리, 변화된 운영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 바로 더 이상 팀들이 싸우지 않아도 될 곳에서 싸우지 않게 됐음을 의미합니다.

 

[역대급 킬 가뭄을 보여주고 있는 18 시즌 (데이터 2018/2/5 기준)]

 

전성기 SKT의 또 다른 특징을 얘기하자면, 골드 열세에도 무너지지 않고 그 격차를 뒤집는 “기적의 한타”를 언급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년 롤드컵에서 EDG와의 한타처럼, SKT는 상대의 한타 진영의 헛점을 노려 경기의 판도를 바꿔냈습니다. 그러나 프로팀들은 마치 그런 기적의 한타에 더 이상 당하지는 않겠다는 마냥, 점점 지역을 넓혀나갈때에도 조금씩 안전한 플레이를 지향합니다. 이는 진영이 어디라도 원딜의 능력을 믿고 한타를 여는 향로메타와 달리, 지형에 많이 의존하는 “존버메타”의 특성도 무시 할 수 없습니다.

 

존버메타가 어떤식으로 바뀌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분명한 사실은 현재의 메타가 SKT가 지난 몇 년간 가지고 있었던 최대 강점을 효율적으로 억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다른 팀들에게 있어서는 앞으로도 “어떻게 SKT를 이길것인가”를 짚고 넘어가는 귀중한 레슨이자, SKT에게는 그것을 뛰어넘어야하는 숙제이기도 합니다.

 

3. 파이널 펀치의 부재 – T1의 돌격대장은 어디에

비록 주도권이 있었던 경기가 많지 않았기에 섣부른 이야기일수 있습니다만, 유리한 경기도 쉽게 끝내지 못하는 현재의 SKT의 상태를 보며 예전의 그들과는 다른 모습을 하나 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벵기와 후니, 그리고 마린. 세 선수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까요? 언뜻 보기에 크게 비슷한 점이 없어 보이는 전 SKT 선수들이지만, 이 셋은 지난 몇 년간 SKT의 돌격대장을 담당해온 선수들이였습니다.

“더 정글”이라는 별명 아래에 벵기는 안정적인 운영을 자랑하는 선수로 잘 알려져있지만, 실제로 그의 시그니쳐 픽들을 살펴보면 돌격대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는 챔피언들이였습니다. 바이, 자르반 4세, 리 신 등은 팀이 유리할 때 굳히기 한타를 잘 열어주는 믿음직스러운 존재였습니다.

 

[팀을 롤드컵 결승으로 보내던 벵기의 리 신. 안정적인 플레이를 자랑하던 그지만, 마침표를 찍을때의 벵기는 그 누구보다 저돌적이였다.]

후니와 마린 역시, SKT의 운영에서 파이널 펀치를 날려주던 끝판왕들이였습니다. T1의 결승행을 책임졌던 후니의 4인 나르 궁이나, 지금도 롤갤에서 회자가 되고있는 마린의 뒷텔각은 SKT의 운영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화룡점정과도 같았습니다. “유리할 때 끝낼 줄 아는 팀”, SKT를 강팀으로 만든건 딜러진이지만 SKT를 another level로 만들었던 데는 탑/정글의 보이지 않는 공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운타라, 트할, 그리고 블랭크나 블로섬중 누군가가 T1의 전문 돌격대장의 역할을 맡지 않는다면, 2018 시즌의 SKT는 꽤 긴 시간 동안 특색없는 팀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긴 글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작년부터 협곡의 전령의 등장 이후 SKT는 초중반 운영에 큰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는 올해가 되서도 변하지 않았다.
- 팀들이 한타를 기피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SKT가 더 이상 기적의 한타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 비록 이긴 경기가 많이 없기도 하지만, 유리할 때 끝낼줄 알던 SKT의 DNA도 실종되어 보인다. 이것은 벵기, 마린 등 승패를 마무리 짓던 돌격대장의 부재가 크다.

지금의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했을때, SKT는 아마 창단이래 가장 큰 위기를 겪고 있는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14년에 롤드컵에 진출하지 못했을 때의 슬럼프도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그때보다 전체적인 경기력의 수준이 크게 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SKT가 반등할 여지는 충분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는 다듬어지지 않은 팀이라는 점, 스프링 시즌때는 늘 부진하게 출발하던 슬로우 스타터였다는 점, 그리고 어쨌든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들이기에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충분하다는 점에 기인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초중반의 열세를 이겨낼지, 존버메타를 뚫어낼지, 그리고 팀 체질을 개선시킬지에 대해서 감이 잘 안잡히는 것도 사실입니다. SKT가 더 이상 강팀의 자리에서 시즌을 치루고 있지 않다는것도 부정하기 힘듭니다. 수년간 LCK의 주인공이였던 그들이 어떻게 이 난제를 풀어나갈지 흥미롭게 지켜보는 것 또한 리그를 즐기는 “예상 못한”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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