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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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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이라는 말 좀 그만해."

자정이 넘은 시간, 이별을 말하고 자리를 떠났고, 집으로 갔다. 몇 시간 후에 후배의 전화, 그 사람이 아직 집에 오지 않았다고 했다. 찾아 나섰고, 갈만한 골목과 공원의 벤치들을 따라 걷다가 찾을 수 있었다.

내가 떠났던 그 자리에서 마치 내가 떠난 적 없었다는 것처럼 말을 이어서 꺼냈다.

평소 아저씨 냄새가 난다면서 굳이 뺏어 입던 그 회색 후드티 모자를 머리 눌러써 입고, 느리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그 골목 그 새벽에 내가 들었던 말이 저거였다.

"최선이라는 말 좀 그만해."

내가 최선이라는 말에 담은 의미는 상당히 구체적이었고 개인적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그저 최선과는 다른 의미들과 감정을 담고 있었다.

일종의 신념이 담겨있었다.

나를 부정하고 싶었던 것일까, 내 말버릇에 대한 짜증이었을까.

어찌 됐든 예외로 둔 사람에게 듣게 된, 당시 나를 이끌던 근간이 되는 단어에 대한 부정.

오만하다. 겸손해라.

평소에 그렇게 모순적이던 사람들이

입장이 불리할 때는 오랜 시간 증명된 미덕이라 불리는 말을 꺼내서 자신을 변호한다.

맥락 없이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다각도로 해석될 수 있는 그 말의 위력 뒤에 숨는 것이다.

바보가 아무 생각 없이 던지더라도, 듣는 사람이 해석할 만한 지적 능력을 많이 갖출수록, 흔들기가 될 수 있는 증명된 미덕들.

제일 문제는 내가 그 말에 흔들렸다는 것이고.

이유는 그 사람이 내게 중요했었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사람을 잃게 했던 내 태도를 의심했고,

그게 내 삶을 반대로 돌려놨다.

자신감은 의심으로 바뀌고, 사람들의 변명들에도 흔들렸다.

그게 사람 사는 거라는 헛소리를 귀담아듣기 시작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과 신념은 너덜너덜 해졌고 뿌리가 뽑혔다.

내 자신감이 어지간히 불편했었나?

"너는 모든 게 네 뜻대로 될 것 같지?"

초등학교부터 같은 동네에서 가장 많이 보고 살던 친구가 그 시절 내게 했었던 말이다.

"내 자신감은 그딴 보장된 미래에 대한 확신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한 행동에 대한 결과가 실패라고 해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내 대답이었다.

이 말에 대한 대답이 뭐였는지 아는가?

"궤변이다"

시발? 어깨 위가 허전해서 머리를 달고 다닌 건가?

이게 내가 친구라고 말하는 사람이 내게 한 말이다.

당시에는 설득할 생각이 없었다.

그냥 그렇구나. 이해를 못 하는구나.

그리고 내가 망가져서 혼란스러워할 때.

"인생이 원래 그런 거야"

이딴 말을 내게 한다. 이 말 자체는 일리가 의미가 있지만, 이 녀석들의 말에 담긴 맥락은 단순하지가 않다.

일 년 전쯤에 이 친구와 차를 타고 어딘가를 가면서 당시 대화를 주제로 이야기를 했다.

그 입에서 나온 말은.

"실패해도 되는지 몰랐어"

도저히... 표정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아니 도대체 어떤 자신감과 맥락으로 궤변이라는 말을 꺼냈던 거지? 궤변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고?

그때부터였다. 지인들을 의심하기 시작한 게.

그럴듯한 말로 자신을 변호하면서, 금방 모순되는 행동과 말을 하는 사람들.

내가 사람들의 말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시점이 언제부터였더라?

그게 문제였구나. 이 녀석들이 그때그때 역할극 하듯 상황에 맞는 소음들을 찾아 내뱉는다는 인지를 언제부터 안 했더라?

이 말들이 생각이나 의미가 담긴 말이 아니라, 어디서 들은 소음들의 나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언제부터 무시하고 있었던 거지?

언제부터 필터를 안 거치고 들었던 거지?

그중에 진짜 말을 하는 친구들은 항상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역시 비율과 노출 빈도에 문제가 있었을 거다.

어느 순간부터 나 역시도, 그런 진짜 말을 하는 친구들과의 대화에서조차 진짜 의미가 담긴 말이 아닌, 당장의 상황과 공간을 매우기 위한 의미 없는 소음만 뱉고 있었다. 의지로 만든 내 사고 체계가 악습으로 가득 찬 과거로 회귀했다. 완전 초기화된 거였다.

진우 형.

우리 학교 바로 위 기수 최고 아웃풋 중에 한 사람.

이 형이 울산에 온 적이 있다.

그 형의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가 울산에 있는 우리 집에서 자고 가는 거였다고 했다.

이 사람은 나에게 어떤 손을 뻗었고, 나는 귀를 닫았다.

나는 들어야 되는 사람의 말은 걸러 듣고, 듣지 말아야 하는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의 말과 태도에 이미 매몰되어 있었다.

우정이라는 말과, 경청이라는 말, 겸손이라는 말과, 신뢰와 이해라는 단어를 써 가면서.

'업장에 갇힌다.'라는 표현이 있다.

'자신이 사용하고 듣는 말들에 갇힌다'라는 의미다.

전과 다른 생각으로 행동이 변하고, 내가 있는 장소가 바뀌고, 내 하루 속에 그전에 없던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나는 약해져서 의심을 안고 다시 과거의 태도로 과거의 활동 범위로 돌아갔고, 그 안에서 끼리끼리 들과 어울렸다.

내가 듣던 말들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말 안 해도 알 수 있다.

나 역시 과거에 그랬으니까. 그 말과 태도들에 익숙하고 자연스러웠다.

내 환경과 사람들을 탓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어디서부터 고쳐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the cost of succees

성공의 대가라는 말을 들었다.

성공의 대가로 가장 많이 지불하게 되는 첫 번째는, 기존에 알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내가 있던 곳을 소중히 여겨라.' '초심을 잃지 말라'라는 말이 있지만, 일부만 맞는 말이다.

내가 그들에게 받은 영향만큼, 나 역시 그들에게 빚이 있다.

끼리끼리는 내가 그들에게 가한 악영향이 있어서 비로소 가능한 거다.

그들을 탓할 게 아니다.

나는 과연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나?

내가 받은 악영향은 앞서 내가 그들에게 끼친 악영향의 반대급부였을 거다.

이 고리를 끊어야 했다.

물리적으로 거의 끊어냈다.

아니 세월 속에서 끊어졌다. 내 공격적인 태도들이 그 속도를 더해줬다.

사실 내가 끊어낸 것인지 손절당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의도한 것인지, 이 사태가 초래된 것인지. 어떤 표현이 적절한 것인지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이제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단계로 넘어간다.

주변을 빈 공간으로 놔두고, 스스로 일에 집중하다 보면, 그 공간은 저절로 비슷한 사람들로 채워진다고 한다.

그러니 차라리 홀로 존재하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사람들이 채워질 거다.

아닐 수도 있지만 그것도 감당해야지.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면, 아무나라는 업장에 갇히게 될 거다.

차라리 홀로 있으라 말하겠다.

상황이 어찌 되었든 여기 지금 내가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홀로 선다.

스스로 감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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