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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 단편소설: 천하무적 우디르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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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카오스가 지배하는 세기말의 랭크게임. 이 끝없는 절망의 구렁텅이 어디에서도 희망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호오. 신입이야?”

 

주륵. 설인, 윌럼프의 이마를 따라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내렸다. 그것을 혀로 날름 핥으며 윌럼프는 씩 웃었다. 북슬북슬하고 눈처럼 고왔던 하얀 털은 어느새 포탑의 공격을 받아 피로 얼룩져 있었다.

 

“이 앞의 티어. 다이아몬드로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모양인데. 힘들걸?”

 

윌럼프의 위에 탄 기수 누누는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에서 푸른 불꽃이 잔잔하게 일렁였다. 손에 쥔 블루 버프가 반짝 빛난다.

 

“내가 지금 이 버프를 적 미드라이너에게 배달할 거거든.”

 

누누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상대의 고통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이코패스의 웃음. 끔찍한 광기에 휩싸인 정신병자의 웃음이나 다름 없었다.

 

그것을 바라보며 나는 하얀 눈밭을 향해 발을 내디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이 움푹움푹 빠졌다. 숨을 들이쉬자 폐로 차가운 냉기가 들이찼다. 내가 입을 열었다.

 

“하. 그 버프를 배달할 거라고?”

 

나는 어느새 누누의 앞까지 다가왔다. 거대한 덩치의 설인이 나를 노려보았지만, 나는 전혀 압도되거나 주눅 들지 않았다. 그저 겸허히 무릎 꿇고, 고개를 숙일 뿐.

 

“제발 죄송합니다. 한 번만 제대로 게임을 해주세요.”

 

차가운 눈의 감촉이 이마에 닿는다. 얼얼한 냉기가 온몸을 타고 전해졌다. 그러자 누누는 블루 버프를 슬쩍 내려놓았다. 그는 내 비굴한 태도가 썩 마음에 드는지 아직 입가의 미소를 거두지 않고 있었다.

 

“좋아. 그 비굴함. 마음에 들었어.”

 

누누는 고개를 끄덕이며 터벅터벅 탑 라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시름 놓은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어깨너머로 그가 말했다.

 

“2분 50초, 탑 갱킹. 4분 20초, 탑 삼거리에 제어 와드 설치. 또한, 내가 적 팀에게 갱을 당하고 있는데, 만약 역갱을 봐주지 않거나, 우리 팀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할 때마다 미드 포탑에 한 번씩 꼬라박겠다.”

 

‘크윽.’

 

그 터무니없는 요청에 나는 으득 이를 갈았다. 눈까지 녹일 듯 뜨거운 열기가 머리끝까지 치솟고, 이마에도 힘줄이 몇 개씩 돋아났지만, 이 분노는 속으로 삭여야만 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또한, 저 개자식에게 마음 속 어디에도 없는 감사를 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리신: 플래티넘 1 - 68포인트.

 

내가 빌어먹을 플래티넘 1티어였기 때문에.

 

***

 

플래티넘 1 - 87포인트.

 

조금 전의 한 판을 이긴 덕에 내 점수는 승격전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누누가 던졌다면 절대로 이루지 못할 승리였지만, 침착하게 누누의 멘탈을 케어한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

 

나는 내심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대로 연승을 죽 이어간다면 순조롭게 다이아몬드 티어에 안착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이 또 다른 개자식을 만나기 전까지.

 

“헤, 헤헤. 우디르 게임 잘한다. 리신아 우디르랑 듀오 하자.”

 

현재 밴픽 진행 중인 게임 픽창.

 

곰 가죽을 뒤집어쓴 변태새끼, 이 빌어먹을 다이아몬드 5티어의 우디르는 나에게 계속 듀오를 요청하고 있다.

 

참고로 전적검색을 해본 결과, 이 우디르로 말할 것 같으면 무려 2천판에 50퍼센트의 승률을 기록한 전형적인 판수충이다.

 

게다가 KDA는 1점대에 최근 들어 매 게임 연패까지 하고 있는 상황의 구제불능의 쓰레기. 당연한 말이지만,

 

‘이딴 자식이랑 듀오를 한다면, 다이아로 올라가기는커녕 강등이나 안 되길 빌어야 겠는데.’

 

나는 우디르를 향해 속으로 몇 번씩이나 욕질을 해지만, 겉으론 드러내지 않았다. 시즌 종료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티어를 올리려면, 팀원들의 심기를 건드려선 안 되기 때문이었다.

 

“하하. 우디르님. 일단 같이 게임을 해보고 생각해볼게요.”

 

그래서 일단 우디르의 비위를 살살 맞춰주기로 하였다. 물론 듀오를 할 생각은 아니었다. 지금 이 한 판을 이기기 위해서 연기를 할 뿐이었으니까.

 

띠링. 그런데 갑자기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난 그것을 열어보았다.

 

친구 추가. 우디르님이 친구 요청을 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이게 뭐야!’

 

나는 경악했다. 그 모습을 본 우디르는 손가락으로 코밑을 슥 문지르더니 바보처럼 웃어댔다.

 

“헤헤. 치, 친구요청 해줘라. 우디르는 리신 좋다.”

 

“네. 알았어요.”

 

찝찝했지만, 일단 우디르의 친구요청을 받았다. 왠지 친추를 받지 않으면 미드 타워에 꼬라박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친구 목록을 열어보았다.

 

-리신, 친구 목록-

 

이즈리얼, 게임 중.

룰루, 게임 중.

우디르, 챔피언 선택 중.

 

어쩐지 저 우디르라는 이름 하나 때문에 친구 목록이 더러워진 기분이다. 나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삭였다.

 

‘젠장. 게임만 끝나면 바로 삭제하고 차단해 버려야지.’

 

“헤헤, 신난다. 리신아, 잘 부탁한다. 우디르 게임 잘한다.”

 

우디르는 해맑게 웃어 보였다.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네네. 그러세요.”

 

일단은 이 게임에 집중하는 게 우선이다. 아직 경기는 시작 전, 난 일단 룬과 특성, 그리고 스펠을 점검했다.

 

그런데 문득 내 눈에 ‘그것’이 들어왔다.

 

우디르 스펠- 강타, 텔레포트.

 

“우디르님 스펠 스펠! 스펠!”

 

나는 목청껏 삼단 고음을 내질렀다. 진짜 태어나서 이렇게 크게 소리쳐 본 것은 처음이었다.

 

“헤?”

 

하지만 우디르에겐 내 진실한 외침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저 자리에 앉은 우디르는 멀뚱멀뚱 귀만 후벼댔다.

 

“에헤헤. 에헤?”

 

이내 게임은 로딩에 접어들었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폭 감쌌다. 입에서 차마 형언할 수 없는 욕이 새어 나온다.

 

'우디르 엄마 오늘 내가 죽인다.'

 

***

 

ㄷㄷ 리신 고소미 먹여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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