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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문학] 단편소설. 나와 이즈님-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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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링크: https://www.op.gg/forum/view/286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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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화예요. 늦게 올려서 미안해요.

 

그동안 안 올라왔던 이유는 개인적으로 스토리가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안 올리고 있었어요.

 

지금도 사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다음화를 기다리시는 분이 있어 부랴부랴 작성해서 올리게 됐어요.

 

나와 이즈님은 처음 글을 쓸 때부터 결말이 정해져 있었어요. 갑자기 막 쓴 건 아니에요.

 

***

브론즈와 이즈리얼에 대한 과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나저나 참 처음 글을 쓸 땐 이즈리얼 스레기 원딜이었는데 지금은 정글로 가더래요;

 

분량이 1만자를 돌파했어요. 쉬엄쉬엄 보시길 바래요. 그리고 아래 내용은 모두 픽션이에요. 라이엇 관계자들이라던가, 좀 억지스러운 부분이 당연히 있겠지만 그냥 소설이니 재미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

 

 

게임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블루팀 진영에 이즈리얼과 룰루의 조합이었고, 적팀 바텀 조합은 케이틀린에 블리츠크랭크였다. 초반 라인전이 강한 무난한 조합이었다.

리쉬를 마친 나와 룰루는 바텀으로 향했다. 문득 고개를 내려 보니, 지팡이를 쥔 룰루의 작은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긴장하지 마요. 이번 판만 이기면 실버로 승격이에요.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요.”

피식 웃으며 룰루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룰루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녀의 떨림은 멎어 있었다. 룰루는 평소와 같은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헤헤. 그럼요. 이제 진짜로 마지막이에요.”

저벅. 바텀 1차 타워를 향해 걸음을 내딛는다. 심장이 마구 고동쳤다. 사실 긴장하고 있던 것은 바로 내 쪽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안 돼. 여기서 내가 무너지면 게임은 끝이야. 승격도 물 건너갈 테고, 픽스를 되찾지도 못할 거야.’

미니언을 향해 화살을 쏘아 보낸다. 짤랑, 고요함 속에 골드가 떨어지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케이틀린의 견제는 룰루의 쉴드로 커버하고, 블리츠의 그랩은 최대한 피하며 마나를 아꼈다.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예상보다 힘들지도 모르겠어. 적 케이틀린이 너무 잘해.’

그 말대로였다. 적 케이틀린은 미니언을 흘리지 않으면서도 정확한 타이밍에 나를 견제했다. 또한, 교묘하게 놓은 덫이 움직임에 큰 제약으로 다가왔다.

아무래도 양측 모두 정글러가 오기 전까진 킬이 나지 않을 모양이었다. 그렇게 한창 라인전을 진행하고 있을 때 룰루가 나에게 다가왔다.

“저기 이즈님. 위쪽에 와드 좀 박고 올게요. 적 녹턴이 어디 있는지 안 보여요.”

“그럼 같이 가죠. 잠시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빠르게 남은 미니언을 제거한 후 나와 룰루는 삼거리의 부시로 향했다. 적 블리츠가 슬금슬금 우릴 따라왔으나, 그랩이 닿지 않을 거리라 의미 없는 견제라 생각했다.

그런데 부시에 가까이 다가가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당장 대리 유저를 체포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그는 더 이상 게임플레이에 지장을 주어선 안 돼.”

“아니, 지금은 보는 눈이 너무 많아. 확실한 기회를 노리자.”

마치 변조된 기계음처럼 소름끼치는 목소리였다. 나는 의아해하며 부시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어어?”

쑤욱. 뒤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블리츠의 로켓 손에 룰루가 끌려갔다. 나는 깜짝 놀랐다. 블리츠가 점멸을 사용해 정확하게 룰루를 캐치한 것이다.

“비전 이동!”

금빛 섬광이 번쩍였다. 나는 비전 이동으로 그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부시에서 났던 소리는 이미 관심 밖이었다.

콰과광- 콰광-

이어서 천둥 번개가 몰아치는 소리와 함께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녹턴의 궁극기인 피해망상이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나는 적이 있을 것이라 예상되는 방향에 마법 화살을 마구 쏘아냈다. 적이 화살에 적중당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어 상황을 파악할 순 없었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젠장.”

룰루가 당하는 소리에 나는 으득 이를 갈았다. 이윽고 어둠이 걷히고 적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빠르게 룰루를 제압한 녹턴과 블리츠는 이번에는 나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

체력이 빠르게 소진되어갔다. 당황한 나는 점멸을 사용해 도망쳤지만, 녹턴 역시 점멸을 써서 나를 쫓아왔다.

“적 위치 확인.”

그때, 발밑으로 붉은 원이 그려졌다. 케이틀린의 궁극기에 표적이 된 것이었다. 여기서 죽는다면 바텀 라인의 주도권은 완전히 빼앗기고, 용까지 넘겨주게 되지만, 더는 피할 방법이 없었다.

탕- 케이틀린의 저격총이 불을 뿜었다. 나는 질끈 눈을 감았다.

스윽-

그때였다. 내 앞으로 휘몰아치는 바람의 벽이 드리웠다. 케이틀린의 궁극기는 벽을 뚫지 못하고 사라졌다. 나는 당황해서 고개를 들었다.

“버티느라 고생 많았소.”

‘그’는 저벅저벅 발걸음을 옮겼다. 헤진 옷차림에 피리를 든 무사. 그는 피리를 입가에 가져갔다. 이내 구슬픈 노랫소리가 바텀 라인을 메웠다.

“텔포, 톡! 톡! 톡! 트롤픽하나!”

‘그’가 묶은 뒷머리가 리듬을 따라 찰랑거렸다. 처절할 정도로 소름이 돋는 피리 소리에 녹턴은 마른침을 삼켰다.

“대체 네가 왜 여기에?”

“피해요! 텔레포트로 나타난 거예요!”

케이틀린이 버럭 소리쳤다. ‘그’는 코웃음을 치며 검을 뽑아들었다.

“흥. 이미 늦었어!”

날카로운 검신이 번뜩 빛났다. 그가 내지르는 강하고 날렵한 검에 녹턴의 체력이 뭉텅 깎여나갔다. 상황을 직시한 블리츠는 나 몰라라 먼저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 기름 샌다."


“어딜!”

나는 블리츠를 향해 마법 화살을 쏘아냈다. 어느새 녹턴을 처치한 ‘그’는 미니언을 타고 블리츠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즈리얼 공. 어서 궁극기를!”

‘그’가 소리쳤다. 번쩍 든 나는 정신이 얼른 궁극기를 시전 했다. 타오르듯 빛나는 금빛 섬광이 찬란히 주위를 적셨다.

“정조준 일격!”

팔에서 쏘아진 금빛 섬광이, 마치 날개를 펼친 독수리처럼 먹잇감을 향해 빠르게 날아간다. 섬광은 블리츠크랭크를 관통하고도 계속해서 날아가 그 뒤의 케이틀린을 적중시켰다.

크윽.”

하세기!”

바람의 기운으로 충만해진 ‘그’가 기합을 내질렀다. 검날을 타고 쏘아진 바람의 힘은 대지에 균열을 일으키며 날아가 케이틀린 덮쳤다.

“소리이게 돈!”

적을 처치했습니다.

더블 킬.

허억, 허억...”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한번에 적 바텀 듀오와 정글러까지 처치했다. 이 모든 것은 ‘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고마워요. 야이언스.”

적에게 당했습니다.

그 사이 ‘그’는 미니언과 7대1의 결투를 벌이다 처형당해 있었다. 죽어가며, 가늘게 떨리는 호흡으로 그가 말했다.

“죽음은 바람과 같지. 늘 내 곁에 있으니...”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져갔다. 이내 짧은 경련과 함께 숨이 멎는다. 나는 숙연히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미친 과학자 같으니...”

여담이지만, 적 팀 탑 라이너는 라인을 당기고 파밍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팀 정글러는 우리 바로 옆에서 작골을 먹고 있었지만, 오진 않았다.

왜 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이거 먹다 말고 가면 라인 cs 줄 거예요?’

라고 반박하기에 조용히 차단을 박았다.

***

그 이후 게임은 무난하게 흘러갔다. 바텀 라인의 주도권을 잡은 나와 룰루는 용을 챙기고, 몇 번의 킬을 더 터뜨리며 상황을 우세하게 이끌었다.

하지만, 적 팀의 저항이 너무 강했던 탓에 이기기는 쉽지 않았다. 계속되는 한타가 비기고, 서로는 넥서스와 쌍둥이 타워만 둔 채 마지막 바론 싸움을 앞두고 있었다.

으오옷!”

콰앙-

그때 적 팀 제라스의 폭격이 야스오를 강타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지막지한 견제에 우리 팀의 체력이 많이 빠진 상황이었다.

“일단 바론 시야만 먹어두고, 체력 빠진 사람들은 한번 정비한 후에 마지막 한타를 해보죠.”

내 말에 다른 팀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바위게를 먹기 시작했다.

이즈님.”

문득 룰루가 나를 불렀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요. 룰루님?”

내가 물었다. 룰루는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다.

“고마워서요. 지금까지 같이 게임 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이즈님 덕분에 실버 승격전까지 올라올 수 있었어요.”

“뭘 새삼스럽게...”

나는 말꼬리를 흐렸다. 괜히 멋쩍어지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룰루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혹시, 실버로 승격하게 되도 같이 게임해 주실 거죠?”

“네?”

나는 룰루를 쳐다보았다. 룰루는 왠지 표정이 붉어져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나는 대답하는 것을 잠시 잊고 룰루의 눈을 바라보았다.

“...”

“아, 랭크 게임을 같이 하잔 말은 아니에요! 일반 게임도 괜찮아요. 그러니까...”

내가 선뜻 대답하지 않자, 당황했는지 룰루가 두 손을 내저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물론이죠. 언제든지 상관없어요.”

룰루는 내 대답에 안도했는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 다행이다. 혹시 실버로 승격하시고 나면 저랑 게임을 안 하려고 하실까 걱정했거든요. 헤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

찰칵.

그때 룰루의 발밑으로 차가운 금속음이 들려왔다.

“어?”

룰루는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케이틀린의 요들잡이 덫이 발목을 꽉 붙잡고 있었다. 당황한 룰루는 빠져나오려 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콰과광 콰광-

이어서 천둥 번개가 몰아쳤다. 새빨갛게 붉어진 하늘. 어둠 속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검이 서로 부딪히는 마찰음. 총이 발사되는 소리가 협곡을 가득 메웠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이런. 어서 나도 도와야...”

나는 당황해서 얼른 앞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휘익-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날카로운 창끝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붉게 맺힌 핏방울이 또륵 흘러내렸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창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적 팀에 니달리는 없었는데...?”

적 팀에 니달리는 없다. 그렇다면 당연히 창이 날아와선 안 된다. 내가 영문을 몰라 하고 있을 무렵, 바스락 소리가 나더니 부시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아, 안녕하세요. 대리 게임 유저분.”

나는 굳은 듯 멈춰 섰다. 조잡하고 신경을 긁는 변조된 목소리. 분명 아까 라인전을 할 때 부시에서 들려왔던 그것과 동일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은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라이엇 게임즈에서 나왔습니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라이엇 게임즈?”

분명 라이엇 게임즈라면, 소환사의 협곡을 관리하는 개발자이자 운영자들이었다. 평소에 상향시켜 달라고 할 땐 코빼기도 안 비치던 작자들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니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역시 방금 창을 피하던 솜씨가 예사롭지 않더군요. 도저히 브론즈에서 있으실 실력이 아니에요.”

그는 우두둑 몸을 풀며 말했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더블킬.

그때, 우리팀이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그를 옆으로 밀쳐 냈다.

“게임 하는 데 방해 하지 말고 비켜요!”

아이쿠. 이런.”

하지만 그는 비키지 않았다. 오히려 들고 있던 창을 나에게 겨누며 위협했다. 나는 버럭 소리쳤다.

“갑자기 게임하는데 난입해서 이게 무슨 짓이죠?”

내 말에 그는 찌푸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브론즈들이 게임하는데 갑자기 난입한 건 그쪽이잖아요. 대리 유저 씨.”

“뭐라고요?”

나는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대리 유저이니 난입이니,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그러자 상대방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끝까지 발뺌하셔도 소용없습니다. 대리 유저. 익명의 누군가의 신고를 받아, 그쪽의 게임 기록과 플레이. 채팅 내역은 이미 분석이 끝났습니다. 더 자세한 것은 직접 데려가서 조사해보면 나오겠죠. 순순히 저를 따라오시길.”

상대방은 저벅저벅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혼란스러워진 머릿속을 정리하며 진정하려 애썼다.

라이엇 관계자들이 나를 체포하려는 이유가, 대리 게임 때문이다? 얼토당토않은 헛소리였다. 분명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쓴 게 분명했다. 진정되긴 커녕 오히려 화가 끓어오른다.

“난 대리 유저 같은 거 아니니까 비켜요! 게임 지면 책임질 거예요?”

나의 말에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예. 책임지겠습니다. 승리팀은 정상적으로 승리 보상을 받겠지만, 패배 팀은 리그 순위 변동에 영향이 없고 포인트 허락 또한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걱정하지 말고 얌전히 체포되어 조사를 받으세요.”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내가 없으면 이번 판은 확실하게 진다. 그렇다면, 룰루 혼자 다음 게임을 돌려서 이긴 다음 승격하고, 픽스를 찾으러 갈 수 있을까?

아니. 무리였다. 현재 픽스는 소라카가 갱플랭크의 해적선에 팔아넘긴 상태. 해적선은 곧 출발한다 했으니, 게임이 끝나자마자 바로 뛰어가야 간당간당하게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게다가 그곳은 실버 구간에 있으므로 승격하지 못한 채로는 접근조차 불가능하다.

한 마디로, 여기서 이기지 못하면 룰루의 소중한 친구, 픽스는 영영 되찾을 수 없다. 그 슬퍼하는 표정을 보고 싶진 않다.

“비켜. 셋 센다. 그 안에 나오지 않으면 널 먼저 쓰러뜨리겠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상대는 코웃음을 쳤다.

“흥. 저 혼자라면 가능했겠지만, 아쉽게도 혼자 온 건 아니라서요.”

저벅. 상대의 뒤에서 날카로운 검을 든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역시 게임에 존재하지 않는 상대. ‘프로젝트 : 피오라’였다.

“이렇게 게임에 마구 개입해도 되는 거야? 다른 유저나 관중들이 보면 어쩌려고?”

내가 묻자 피오라는 어깨를 으쓱했다. 피오라는 손가락을 들어 붉은 하늘을 가리켰다.

“이 피해망상. 유난히 오래가지 않아?”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분명 그 말대로였다. 원래대로라면 진작 원래의 하늘빛으로 돌아오고, 전장의 안개가 걷혔어야 했는데 왠지 녹턴의 궁극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 팀과의 시야 공유 또한 아직도 중단된 상태였다.

우리들이 만들어 낸 거야. 사람들은 단순한 버그라고 생각하겠지.”

피오라가 말했다. 그녀가 쥔 검의 서슬이 퍼렇게 빛났다. 나는 으득 이를 갈았다. 피오라와 니달리를 상대로 2대1을 해서 이길 자신은 없다. 만약 이긴다 하더라도 이미 너덜너덜해진 몸 상태로 한타에 참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홱, 몸을 돌린 나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 사방으로 푸른 원이 그려졌다. 피오라의 궁극기였다. 니달리 또한 쿠커의 상으로 변해 나를 뒤쫓았다.

“놓치지 않아!”

피오라가 소리쳤다. 날카로운 검날이 바로 옆을 꿰뚫고 지나갔다. 아슬아슬한 거리였다. 슬쩍 고개를 돌리자 검의 표면에 내 얼굴이 비쳐 보였다.

히얏!”

피오라는 멈추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나는 마법 화살을 쏴가며 거리를 벌렸다. 어느새 바론 뒤의 얇은 벽까지 도착했다.

“비전 이동!”

나는 그 벽을 넘어갔다. 입가를 타고 주륵 피가 흘러내린다. 피오라의 공격으로 인해 소모된 체력이 컸다.

“헉, 허억...”

한계에 다다라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무렵, 피오라와 니달리가 벽을 넘어왔다. 피오라는 나를 향해 저벅저벅 다가왔다.

“우리도 벽을 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깜빡한 것 같은데?”

너희야말로 이걸 깜빡한 것 같은데?”

사실 난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손을 들어 발밑의 붉은 식물을 조준했다.

“잠깐, 멈춰!”

당황한 니달리가 피오라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너무 가까이 다가온 상태였다. 나는 발밑의 솔방울 탄을 향해 화살을 쏘아 보냈다.

파앙- 솔방울탄이 폭발했다. 그 반동으로 인해 니달리와 피오라는 다시 바론 너머의 벽으로 튕겨 날아갔다. 다리의 힘이 풀린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벽 너머로 차갑고 소름 끼치는 기계음이 메아리쳤다.

“대리 유저. 늦든 빠르든 당신은 잡히고 말 겁니다.”

“자수할 마음이 생긴다면, 우리를 찾아와. 그렇지 않아도 우리가 찾아가겠지만.”

이윽고 전장의 안개가 갇혔다. 어둠이 물러가고 뿌옇던 시야가 맑아지자 상황이 보였다. 내가 없는 4대 5한타는 당연히 패배.

야이언스가 적 팀 케이틀린을 처치하고, 녹턴 또한 팀원들의 협공으로 처치했다. 하지만 우리팀은 나를 제외한 모두가 전멸한 상태. 체력이 반 정도 남은 적팀은 바론을 먹기 시작했다.

크윽. 일단 귀환을.”

푸른 섬광이 주위를 감쌌다. 나는 본진으로 귀환했다. 체력과 마나가 고갈되어 더는 싸울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우리 팀 슈퍼 미니언이 적팀의 넥서스를 향해 진격하고 있었지만, 적팀이 바론을 먹으면 귀환해서 막을 시간이 충분했다.

바론을 먹히면 게임은 끝이나 다름없다. 적팀은 장로 드래곤까지 처치한 후 여유롭게 우리 팀의 넥서스를 밀러 올 것이다. 게다가 언제 다시 라이엇 게임즈가 난입하여 게임을 방해할지 모른다.

“역시 포기해야 하나.”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제일 먼저 쓰러진 룰루가 부활했다. 룰루는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뺨을 따라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흐흑. 미안해요. 이즈님. 제가 채팅을 안치고 좀 더 집중했더라면...”

그 모습을 본 죽은 야이언스도 한마디 거들었다.

“괜찮아요. 님이 하필 거기서 덫을 밟아서 게임을 지게 생겼지만 괜찮아요.”

 

그 말을 들은 룰루는 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난 조용히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

아니, 아직 여기서 포기할 순 없다. 다른 우리 팀의 부활 시간은 약 20초 정도. 나는 크게 심호흡했다.

룰루님 잘 들으세요.”

나는 가지고 있던 삼위일체를 상점 아저씨의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 외의 다른 무기들도 전부. 룰루는 그런 나를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즈...님?”

내가 말했다.

“제가 바론을 먹으면 바로 버프를 달고 적팀 넥서스로 달려요.”

“그게 무슨...”

“그동안 같이 게임해서 즐거웠어요.”

저벅. 보라색 고깔모자를 푹 눌러쓰며 발걸음을 옮긴다. 손에 쥔 보라색 책이 웅웅 진동하며 떠올랐다.

파락- 모렐로 노미콘의 책장을 넘긴다. 강력한 주문력이 몸을 타고 흘러들었다. 나는 팔을 들어 바론을 조준했다.

“정조준 일격.”

화악- 금빛 섬광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그 여느 때보다 더 강력하고 화려한 섬광은 마치 주작이 날개를 펼치는 것 같이 꺾어졌다.

그렇게 쏘아진 강력한 금빛의 파동이 내셔 남작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바론을 치고 있는 적팀의 체력은 거의 빈사 상태. 바론도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즈리얼이 내셔 남작을 처치했습니다.

“어어?”

채팅창 위로 처치 메시지가 떠오른다. 적팀이 영문을 몰라 하고 있을 무렵 그들의 몸을 금빛의 해일이 덮친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더블킬.

적들은 힘없는 허수아비처럼 나동그라졌다. 제라스와 블리츠크랭크를 동시에 더블킬. 그때 우리 팀 미니언이 적 팀의 쌍둥이 포탑을 하나 부쉈다.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적 팀 탑 라이너는 얼마 남지 않은 체력으로 허겁지겁 귀환을 시도했지만, 미니언 무리는 쌍둥이 타워를 부수고도 계속해서 진격하고 있었다.

룰루는 감탄 어린 눈빛으로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손을 들어 룰루의 등을 툭 밀었다. 룰루가 나를 바라보자, 나는 싱긋 웃어 보였다.

“자. 어서 미니언한테 바론 버프 주셔야죠.”

“아, 네!”

룰루는 뛰기 시작했다. 나는 슬쩍 등을 돌렸다. 사실 쌓여있는 미니언들을 보니, 게임은 룰루가 도착하기 전에 끝날 것 같았다. 나는 저벅저벅 발걸음을 옮겼다.

철컥.

차가운 수갑이 내 손목을 채운다. 미간을 찌푸린 니달리가 물었다.

“이렇게 꼭 생태계를 파괴하고 가야 속이 시원하겠습니까? 대리 유저분?”

“아니, 그러니까 전 대리 유저가 아니라고요.”

나는 푸하하 웃었다. 뭐 더는 상관없었다. 라이엇 관계자들을 따라 협곡 밖으로 걸음을 옮긴다. 슬쩍 고개를 돌리며 나는 내뱉듯이 말했다. 

“다음에 꼭 같이 게임해요. 룰루님.”

소환사 한 명이 게임을 종료했습니다.


***

몇 달 후.

우주류 빽도어 클럽의 회원. 티모는 오늘도 열심히 미니언을 깎고 있었다. 한땀 한땀 미니언을 깎아내며 유기농 버섯을 재배하는 우리의 농사꾼. 티모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어, 어? 이즈님 들어왔네?”

친구 목록을 살펴보던 티모가 깜짝 놀랐다. 티모는 다급히 이즈리얼에게 채팅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심던 버섯이 쓰러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즈님, 이즈님! 왜 이렇게 오랜만에 들어오세요? 게임 접으신 줄 알았잖아요.”

“...”

띠링. 이즈리얼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티모는 서둘러 메시지를 읽어보았다.

“하하. 죄송해요. 라이엇에 대리 유저로 오인 제재를 받는 바람에 잠깐 정지당했다가 사실이 아닌 게 밝혀져 풀려난 참이었어요. 사실 정지가 풀린 지는 한참 지났지만, 룰루님과 했던 마지막 게임에서 그냥 탈주하는 바람에 괜히 미안해서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네요.”

“에이, 뭘 그런 걸로 마음을 쓰고 있었어요. 그때 이즈님이 바론을 스틸하고 적 팀을 두 명 처치한 덕분에, 게임은 무사히 끝났어요. 픽스도 되찾았고요. 참. 우리 오랜만에 자랭 한 판 돌릴까요?”

“네. 그러죠.”

이즈리얼은 흔쾌히 승낙했다. 티모는 실실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제 이즈님만 브론즈인 거 아세요? 제드와 마이, 그리고 저까지 실버로 올라왔고, 우주류 빽도어 클럽의 신 회원분이신야이언스’님도 플래티넘까지 승급했어요. 그리고 룰루님은...”

이즈리얼은 티모의 말을 끊었다.

“알고 있어요. 다들 전적 검색 해봤었거든요.”

“아 그래요? 참. 곧 룰루님도 온다고 하셨는데, 조금 기다렸다 하죠.”

티모가 말을 마치자 잠시 채팅이 끊겼다. 티모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아해하던 찰나, 이즈리얼의 마지막 채팅이 올라왔다.

“네. 기다려요. 게임은 다 같이하는 게 즐거우니까요.”

나와 이즈님 fin.

***

아직 한 발 남았다. 에필로그에서 뵙겠습니다. 지금 올라온 마지막 부분은 가짜 엔딩이라고 생각하셔도 좋아요. 에필로그도 바로 올릴게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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