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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문학] 단편소설. 나와 이즈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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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론즈나 이즈리얼에 대해 과장된 표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너무 흥분하지 마시고 재미로만 봐주시면 감사하겠어요. ㅠㅠ

 

 

 

이즈리얼.

 

지금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찬란히 빛나던 시절은 분명 존재했다.

 

팀원들은 나를 게임 캐리의 주역으로 우러러보았고, 난 그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물론 지는 판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이기는 일이 더 많았다.

 

게임이 끝난 후. 퇴장하는 곳에서 팀원들은 늘 나를 칭찬했다.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지만, 마음속 한구석이 뿌듯함으로 차올랐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지난날의 달콤한 꿈에 불과했다. 지금의 나는.

 

박물관에나 어울리는 구닥다리지.”

 

우리 팀의 미드라이너. 아리가 말했다. 이미 상처 입고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무참히 찢어놓는 차가운 말투였다.

 

“죄, 죄송...합니...”

 

내가 대답했다. 긴장한 나머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그마저도 심하게 더듬거렸다.

 

뭘 죄송해야 하는진 몰랐다. 그러나 나는 사과해야만 했다.

 

내가 이즈리얼이기 때문에.

 

이즈님.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다른 좋은 원딜도 많은데, 왜 하필 이즈리얼이에요?”

 

아리가 물었다. 그녀는 반쯤 내리깐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냉혹한 시선에 나도 모르게 몸을 떨었지만 그래도 실력만은 자신이 있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

 

“그래도, 1인분은 할 자신이 있으니까...”

 

“[전체]트롤 한 판 해볼까!”

 

내 말을 끊고, 난데없이 트런들이 뛰쳐나갔다. 그는 내가 말릴 틈도 없이 미드 타워를 향해 폭풍처럼 돌진해 꼬라박았다. 나는 당황하여 소리쳤다.

 

“트런들님? 갑자기 무슨...”

 

“[전체] . 노랑머리 고아 새기 때문에 게임할 맛 안 나네. 저도 나가요.”

 

그때, 아리가 말했다. 그녀는 즉시 게임을 포기하고 그대로 탈주했다. 당황스러웠지만 최근 들어 자주 있는 일이었다. 그들은 내가 이즈리얼을 픽하면 부모님의 안부를 묻거나, 속사포 쌍욕을 구사했다.

 

나는 일단 미니맵 상황을 보았다. 상황은 암울했다. 미드라이너는 탈주했고, 우리 팀 람머스와 트런들은 미드 포탑을 향해 끊임없는 달리기 경주를 하고 있었다.

 

. 이즈님.”

 

그때, 서포터 나미가 나를 불렀다.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 어쩐지 마음이 편해졌다.

 

그녀는 수많은 전투를 함께해온 나의 서포터였고, 우리는 최고의 봇듀오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나는 그녀를 처음 만났던 때를 기억한다. 그때 우린 막 실버 훈장을 달은 새내기들이었다.

 

나는 내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지다. 그러나 나미는 아니었다. 그녀는 분명 실력 있는 서포터였지만, 티어가 떨어지는 게 무서워 게임을 돌리고 싶지 않아 했다.

 

그 모습에 나는 나미를 향해 나는 손을 내밀었다.

 

“저, 나미님. 같이 듀오 하실래요?”

 

그 후 우리는 수많은 난관을 헤쳐 왔다. 골드의 수문장들을 뚫었으며 플래티넘의 대리꾼들을 지나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일은 바로 설인. ‘예티와 싸웠던 일이었다.

 

그들은 플레티넘에서 다이아로 가는 유일한 관문을 지키고 있었다. 예티는 태생이 포악해 그곳을 지나려고 하는 플레이어들을 마구잡이로 헤쳤으며 동족 학살마저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나와 나미는 그 모든 시련을 극복해냈다. 아주 큰 운이 따라주었던 것 같다.

 

그만큼 우정과 신뢰로 뭉쳐진 서포터였기 때문에 나는 나미를 믿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즈님. 저희 이제 듀오 그만하죠.”

 

쩌저적. 꿈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나미의 말에 환상에서 깬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차가운 공기가 피부에 와 닿자 나는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내가 물었다. 아니,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물어봐야만 했다. 이유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님이랑 듀오 하면서 트롤 만나는 게 벌써 몇 번째예요. 게다가 다른 원딜이 이즈님보다 초반부터 후반까지 훨씬 좋은 것도 사실이잖아요. 그럼. 잘 있어요.”

 

순간 멍해졌다. 나미는 그대로 뒤돌아 사라졌다. 붙잡고 싶었지만 차마 손을 뻗을 수 없었다. 내가 이즈리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민폐였으니까.

 

쏴아아. 협곡에 차가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쓸쓸하고 텅 빈 마음 사이로 비가 스며 들어 왔다.

 

나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정해놓지 않았다. 그저 걸음 가는 곳으로, 점점 더 멀리.

 

. 너 브론즈라는 곳 알아?”

 

글쎄요. 들어보긴 했습니다만.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었습니까?”

 

그때였다. 누군가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나를 별달리 의식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거긴 리신이 피들스틱한테 3렙 카정 갔다가 솔킬 따인대. 크큭.”

 

. 그 소문이라면 저도 들은 적 있습니다. 매 판마다 야스오라는 과학자가 출몰하고 정글은 항상 티모가 고정 픽이라는...”

 

푸하하. 물론 과장이 없진 않겠지만 정말 우스운 동네라니까? 거기서는 무슨 챔프를 픽해도 아무 말도 안 할걸?”

 

그 말에, 나는 번뜩 정신이 들었다.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번개가 내려치듯 생각이 번뜩 스쳐 지나갔다. 그렇다. 일부러 이곳에서 온갖 모욕을 당하며 고통받을 이유는 없었다. 나를 받아주는 곳으로 찾아가면 그만이다.

 

나는 주머니에서 다이아몬드 훈장을 꺼냈다. 이 훈장을 얻기 위해 했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더는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훈장을 쥔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챙캉-

 

훈장은 바닥에 튕겨 날아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미련 없이 홱 뒤돌았다. 어쩐지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아직도 대화에 열중하고 있는 그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나는 물었다.

 

“그 브론즈라는 곳. 어떻게 하면 갈 수 있는지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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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노랑머리 고아새기만 일러스트 크게 나와서 다 수정하느라 되게 힘들었음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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