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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쉬 단편소설 '전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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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사슬이 덜그럭대는 끔찍한 소리가 들판에 울렸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안개 때문에 달빛도 별빛도 보이지 않고, 늘 들리던 벌레들의 노랫소리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허물어져 가는 오두막집에 쓰레쉬가 다가섰다. 랜턴을 들어 올린 것은 주위를 살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 랜턴의 내부는 자그마한 구체들이 수없이 빛나는, 마치 별이 가득한 밤하늘 같았다. 구체들이 쓰레쉬의 눈빛을 피하려는 듯 분주하게 흔들렸다. 쓰레쉬는 기괴한 미소를 지었고, 드러난 이가 구체들의 녹색 빛을 반사해 반짝였다. 이 빛 하나하나가 소중한 수집품이었다.

오두막 문 너머에서 남자의 앓는 소리가 들렸다. 쓰레쉬는 그 아픔을 감지하고 이끌려온 것이다. 마치 오랜 친구처럼, 쓰레쉬는 남자의 고통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쓰레쉬가 남자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수십 년 전 단 한 번뿐이었다. 하지만 그 후 쓰레쉬는 남자의 소중한 존재들을 모조리 빼앗아버렸다. 가장 아끼던 말부터 시작해, 어머니, 형제, 그리고 가까운 말벗이었던 하인까지. 쓰레쉬는 그들의 죽음을 자연사로 위장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누가 자신에게 이런 고통을 안기는지 분명히 알게 하려는 뜻이었다.

육체에 얽매이지 않는 쓰레쉬는 문을 그대로 통과했다. 그러면서 뒤로 질질 끌리는 쇠사슬을 추슬러 들었다. 오두막 벽은 습기에 절어 몇 년 동안 쌓인 찌든 때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었지만, 남자의 몰골은 그보다 심했다. 머리털은 제멋대로 자라 뭉쳐 있었고, 피부에는 온통 딱지가 앉아 있었다. 고통과 분노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할퀸 흔적이었다. 처음엔 고급품이었을 벨벳 옷조차도 지금은 너덜너덜한 넝마조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갑작스런 녹색 빛에 움츠러들어 눈을 가리더니, 곧 격렬하게 몸을 떨며 구석으로 피했다.

“제발, 너만은 보고 싶지 않았는데.” 남자가 우물거렸다.

“오래전에 널 점찍었지.” 거칠게 갈라진 쓰레쉬의 목소리가 울렸다. 몇 년 동안이나 말해본 적이 없는 듯한 목소리였다. “이제 널 가질 시간이다.”

“난 이미 죽어가고 있어.” 남자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내 목숨이 목적이라면 서두르는 게 좋을걸.” 쓰레쉬를 똑바로 쳐다보려고 억지로 애쓰는 모습이 처량했다.

쓰레쉬의 입이 크게 웃었다. “네가 죽는 걸 원하진 않아.”

그리고 쓰레쉬는 랜턴의 유리 뚜껑을 살짝 열었다.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수많은 혼들의 비명이 이루는 불협화음이었다.

처음에 남자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 많은 목소리가 한데 뒤섞인 유리파편처럼 겹쳐 들렸기 때문에, 쉬이 구별해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랜턴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남자의 눈은 공포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목소리, 형제의 목소리, 친구의 목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끔찍하게 귓가를 울린 남자의 아이들의 울부짖는 소리. 산 채로 불타고 있는 것처럼 끔찍한 비명이었다.

“무슨 짓을 한 거야!” 남자는 울부짖었다. 그는 모든 힘을 쥐어짜내 망가진 의자를 집어 들고 쓰레쉬에게 던졌다. 의자는 아무 해도 끼치지 못한 채 쓰레쉬를 통과해 바닥에 떨어졌고, 쓰레쉬는 음산하게 웃었다.

분노로 눈이 뒤집힌 남자가 달려들었지만, 쓰레쉬는 갈고리 달린 사슬을 먹이를 낚아채는 뱀처럼 휘둘렀다. 날카로운 갈고리가 남자의 흉곽을 찢고 갈비뼈를 부러뜨렸다. 남자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제자리에 무너져 무릎을 꿇었다.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하려고 떠나온 거였는데…” 남자가 울부짖었다.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쓰레쉬가 사슬을 우악스럽게 잡아당겼다. 처음엔 아무 움직임도 없었지만, 곧 몸에서 혼이 뜯겨 나오기 시작했다. 성기게 짠 천이 서서히 찢기는 것처럼, 남자의 존재는 둘로 쪼개졌다. 육체는 영혼을 잃으며 어지럽게 요동쳤고 사방의 벽에 피가 흩뿌려졌다.

“자, 이제 가볼까.” 쓰레쉬가 말했다. 붙잡힌 영혼은 사슬 끝에 달려 빛을 내며 떨고 있었다. 쓰레쉬는 그것을 집어 랜턴 안에 가두고, 오두막을 떠났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 빈 껍데기가 된 시신이 나뒹굴었다.

쓰레쉬는 랜턴의 빛을 높이 쳐들고 오두막을 떠나 검은 안개를 뒤따랐다. 쓰레쉬가 물러난 뒤에야 안개가 걷혔고, 벌레들의 노랫소리가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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