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개인주의가 제대로 자리잡은 영미권과 달리, 아직도 한국인들의 생활 양식에는 전체주의에 가까운 공동체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게임 비매너를 다루면서 뭐 이런 거창한 이야기까지 나오냐고요? 전 세계 롤 중 유독 한국 롤이 비매너가 심합니다. 다른 나라 롤에도 비매너가 없진 않지만, 한국 롤의 발끝도 따라가기 힘듭니다. 가령 북미 롤은 인종차별로 대표되는 외국인에게 적대적인 태도가 문제지, 자국민들끼리 물고 뜯지는 않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인종차별은 한국도 굉장히 심합니다. 굳이 한국 서버까지 와서 플레이하는 외국인을 볼 일이 많지 않아서 그렇지...
외국 서버라고 해서 트롤, 욕설에서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유독 한국 서버의 비매너가 심각하단 사실은 아마 많은 유저들이 동의할 겁니다. 그래서 저는 롤이라는 게임에게 비매너의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촉매제 역할을 할 뿐, 본론적으로 비매너는 한국인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한국인을 분석해야겠지요.
한국 사회는 얼핏 표먼적으로는 젊은 세대에게 개인주의가 자리잡힌 걸로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로 개인주의의 권리와 의무를 제대로 이해했다기보다는, 그저 개인주의를 주장할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데 가깝습니다. 사고방식 그 자체는 여전히 공동체주의에 빠져있지요. 수직적인 권위를 중시하고, 개인보다도 조직을 우선시하기를 강요합니다. 조직을 위해 희생하지 않으려 하면 '이기적이다, 무책임하다'며 비난을 쏟아내지요. 특히나 롤을 주로 즐기는 한국 남성들은 한창 가치관이 형성될 20대 초반에 굉장히 전체주의적 조직에 무려 2년 동안 감금되다시피 하기에 이러한 성향이 굉장히 심합니다.
때문에 한국 게이머들은 권리와 의무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개인의 권리란 얼마든지 조직의 이익을 위해 희생될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이란, 롤에서 말하자면 팀입니다. 이익이란 승리고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한국인들은 개인주의는 싫어하지만, 개인주의가 주는 이익은 결코 싫어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차라리 정말로 공동체주의적인 헌신적 사고를 가지고 있으면 나았을 겁니다. 그런데 남이 헌신하기를 강요하면서 자신이 헌신하기는 싫어해요. 자연히 공동체주의를 교묘하게 이용해 개인의 이익을 꾀하게 됩니다. 팀의 승리를 위해선 내가 커야 한다. 팀의 승리를 위해서는 너가 나를 도와야 한다.
롤에서 모든 불화는 바로 여기에서 생깁니다. 롤에서 불화를 일으키는 플레이어들은 보통 잘 큰 플레이어가 아닙니다. 이런 플레이어는 한두마디 궁시렁 거리고 말죠. 나는 잘하는데 왜 팀이 못하냐.
하지만 못하는 플레이어는 집요하게 자신이 망한 책임을 남에게 돌립니다. 너에게는 나를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너가 돕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망했다는 주장을 펼치죠. 이는 공동체주의와 개인주의가 악질적으로 융합된 사례입니다. 완전한 공동체주의자라면 팀의 승리를 위해 남탓하면서 팀 기분 해치지 말고 잘 큰 사람을 보조해야 합니다. 완전한 개인주의라면 남에게 멋대로 의무를 부과하지 않으니 고의트롤이 아닌 한 비난하지 않을겁니다.
그런데 한국인은 집단과 조직을 강요하면서도 자신이 헌신하기는 싫어하는 기묘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팀의 이익을 빌미삼아 '왜 나에게 헌신하지 않았느냐'고 강변합니다. '나에게 이익을 주는 행위(갱킹, 시야확보, 합류)를 너가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는 팀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니 욕을 들어도 마땅하다.' 롤에서 거의 대부분의 남탓이 위와 같은 구조를 띄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문화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팀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팀이 희생하는 거라며 초반에 강한 픽을 강요하는게 대표적인 사례겠군요. 카사딘이나 케일을 고르면 팀이 희생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팀 눈치를 봐서 카사딘이나 케일을 못고르는게 조직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건데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