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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ㅗ먹어 97년생 옵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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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양성평등을 추구하지 여존남비사회를 용인할수가 없다. 난 실제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남자로써의 이점을 느껴보질 못했다. -글머리- 실제로 약 10년전 내가 초6이였을때 일어난 일도 그랬다. 옆자리의 여자애가 자꾸 뭐만하면 시비털고 등때리고 그런데 내가 때리려고만 하면 선생님께 달려가 꼰질렀다. 그래서 어느날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대충 이런식으로 선생님께 물어본 적이 있었다. '쟤가 먼저 때렸는데 왜 전 때리면 안되죠?' 그때 선생님의 그말은 10년이 지나 성인이 된 지금도 기억한다. 그때 선생님은 '여자애를 때리는건 옳지 않은 일이야'라고 말씀하셨다. 그럼 여자가 남자를 때리는건 옳은 일인가? 물론 내가 키도 작고 몸집이 작은것도 있었겠지만 상대 여자애가 나보다 힘도 쌨고 몸집도 컸었다. 이 일이 트라우마가 되어 난 남중남고를 다니게 된다.(물론 ㅈㄹ이다 뺑뺑이로 남중걸림)

다음은 약8년전인 15살 중2때였다. 우리집안은 항상 할아버지댁에서 명절을 보냈는데 할아버지소유의 산과 많은 땅들이 있어 우린 항상 일을 돕기에 바뻤다.(물론 부자는 아니다. 할아버지댁은 너무 시골이라 주변에 산밖에 없고 동산정도크기의 산과 주변 개울정도다) 이때도 그랬다. 개울에 술먹고 빠지는 경우를 방지하고자 할아버지주도하에 통나무와 벽돌같은걸로 개울테두리에 통나무와 벽돌을 막아놓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나와 우리형은 결국 막노동을 하였으나 큰아빠네 사촌누나는 산을 둘러본다며 산책을 나가 모든 작업이 끝나고 돌아와서 천연덕스레 전을 부치는 큰엄마옆에서 밥상에 나가지도 않은 전을 처먹었다. 이때 난 너무나도 힘이 들었기 때문에 사촌누나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15살이고 저여자는 22살인데 왜 난 막노동하고 저여자는 산책을 갈까?' 이 일이 트라우마가 되어 난 연상여자를 사귀지 않게 된다. (물론 모쏠이다.)

이번엔 마지막인 작년 일어진 일이다. 돈이 궁했던 난 어쩔수 없이 시급이 높았던 상하차를 하게되었다. 체력적으론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었긴 했어서 별로 큰 걱정은 안했다. 그러던중에 버스에 타자 여자가 군데군데 보였다. 이때 난 의아했다. '상하차는 여자가 하긴 좀 버거울텐데 ㄱㅊ을까?' 물론 쓸데없는 걱정이였다. 도착하고 남자들은 모두 상차나 하차로 배치되고 3명있던 여자는 모두 분류로 빠지는 것이였다. 상차는 매우 힘이 들었다. 일단 무거운걸 많이 들고 실어야 했기 때문에 허리와 어깨가 너무 아팠으며 여름이라 모기와 찌를듯한 더위에 견뎌야했다. 상차를 끝내고 하차도 하게 되었다. 하차에서 배태랑들이 내려준 물건들을 배열에 맞게 각 구역에 나르는 일이였다. 큰 물건들이 많고 깨지는 물건이 많아서 굉장히 힘들었다. 그리고 저녁먹고 추가일당으론 분류를 하게 됐다.(이날 약 10만원 넘게 번거같다 ㅋㅋ) 분류는 매우 간단했다. 가벼운 비닐에 들어있는 물건들을 상자에 분류하면 되는 일이였다. 하지만 나에겐 고통의 시작이였다. 상하차로 인해 내 다리와 허리와 어깨가 재상태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위는 좀 가셨지만 모기가 너무 많았다. 그렇게 죽을랑 말랑 일을 끝내고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물론 씻지도 못하고, 옷도 안벗고 땀내나는 체로 그냥 12시간을 잠만 잤다. 그러다 다음날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분명히 분류보다 상하차쪽이 10배는 힘든데 돈은 똑같이 받을까? 그리고 왜 여자는 무조건 분류일까? -97년생 옵지인-

다음생엔 만약 한국에 또 태어나버린다면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 군대도 안가며 애를 안낳아도 아무 문제없고 모든게 여자우선사회인 이 나라에서 여자로 떳떳히 살아보고 싶다. -작가의 바램-

현재 10-30대는 여자중심사회로 변질해가는 도중이다. -작품해설

반박시 꼴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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