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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감시하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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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롤 공식이 아닙니다.














내가 누군지는 잘 몰라도 된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은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아주 무섭고 이상한 곳이라는 것이였다. 이제 해가 지고 깊은 밤이 되어가는 마당에, 바닥에 누군가의 일기가 떨어져 있어서 한번 읽어 보기로 했다. 어두우니까 램프를 키고..


이 일기장은 많은 페이지들이 뜯어져있다. 그래서 읽을 수 있는 것이 적다.


AN 989 7월 27일


결국 피할 수 없는 날이 와버렸다. 이렐리아라는 소녀가 녹서스 군대를 박살내고 있는 와중에 곧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안심하였으나 결국 녹서스 병사들이 우리 마을로 와버렸다. 그들은 예상하던 대로 패전의 스트레스를 풀고 지친 몸을 뉘이기 위해 마을에 오자마자 약탈을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싸우지 않고 피난을 가는 사람들 중 하나였고, 마을에서 도망나왔을 때는 딸을 찾을 수 없었다.


AN 989 9월 19일


큰일이다. 피난민 행렬에서 낙오되고 말았다. 원래 마을이 다른 마을이랑 조금 멀리 떨어져 있어서 시간이 길어질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나 빨리 가버리다니 말이야. 다행히 내 짐은 놓고 가줬고, 내 곁에 남은 사람들은 내 잠자리를 지켜주던 친구와 늦잠이 심하던 아들밖에 없었다. 짜식, 이렇게나 의리 있는 녀석이였다니..


AN 989 12월 27일


벌써 3달째 헤메는 중이다. 전에 들었던 소식으로 추측해서는 지금쯤이면 아이오니아가 녹서스를 몰아냈을 텐데.. 문제는 낙오된 우리였다. 우리는 지금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헤메고 있다. 이제 넉넉히 있었던 식량도 떨어져가고 있었다. 종종 먹을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는 동물들을 잡아먹기도 했고.. 이제 내 옆에는 끝까지 버틴 친구 한 명만이 있었다. 벌써 연말인데, 세상이 이렇게 가혹해도 되는 건가..


오늘도 하루종일 마을이나 그 비슷한 것도 찾지 못했다. 이상하게 안개가 많이 낀 날이였다. 친구는 혹시 누가 이 안개로 마법을 부려서 장난치고 있는게 아니냐는 농담 반의 말을 했다. 안개 때문인지 태양도 유난히 어두워 보이는 날이였다.


AN 990 3월 27일


이제 몇달동안 헤메고 있는 건가. 이 정도로 오랫동안 평야 비슷한 곳을 걸어가면 뭔가 쉴 곳이 나올 법도 한데 이상할 정도로 나오지 않는다. 솔직히 식량이 떨어졌는데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는 계속 배고파서 미쳐버리겠다고 하고.. 그러다가 처음으로 풀이랑 나무로 된 초원이 아닌 숲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얼마 전부터 계속 심해지던 안개는 이제 가까이 있어도 무언가의 윤곽만 보일 정도로 짙어졌다. 그 숲은 정말 이상했다. 그곳은 유난히 어두워 보였다. 안개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진짜 그곳에만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숲에 가까워지자 해가 무슨 일식 일으키는 것마냥 어두워졌다. 우리는 어쨌든 혹시라도 쉴 곳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들어갔더니 진짜로 작은 마을이 있었다.


그 마을은 평화로워 보였다. 그곳에는 들어갈 때부터 보였던 안개가 없었고 꽤 많은 사람들과 동물들이 있었다. 동물들이 참 이상한 게 두발로 걸어다니며 말을 할 수가 있었다. 친구는 우리가 드디어 미친 거라면서 나와 함께 빠져나가고 싶어했다. 숲속 마을의 주인은 소위 ‘파수꾼’이라 불리는 존재였다. 그는 한눈에 보아도 마법사 같았다. 우리보다 두배는 큰 거구였고 긴 코트에 붙어있는 눈같이 생긴 장식은 영롱하게 빛났다. 그는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줬고 머무를 숙소와 음식을 줬다. 그리고 어두운 밤에는 절대로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AN 990 3월 28일


아침이 되고, 우리는 저녁 때 보지 못했던 마을을 더 자세히 둘러봤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를 중심으로 마을의 주민들이 모여있었다. 아마도 그 근처에서 대부분의 일을 하는 것 같았다. 이 숲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로 심판이였다. 파수꾼은 매일 커다란 나무 앞에서 하루동안 죄를 지은 사람을 데려왔고 그들을 처벌할지 말지 결정했다. 다행히 오늘은 죄를 지은 사람이 없었지만, 파수꾼은 해맑게 웃으며 만약 유죄가 된다면 그 사람은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의 열매가 될 것이라고 했다. 친구는 그 뜻을 눈치챘는지 역시 이 마을은 미쳤다고 했다.


AN 990 4월 4일


오늘 아침, 유죄도 아니였던 것 같은데 동물과 사람 몇명이 나무에 열매처럼 매달려 있었다. 이상한 점은 그들의 시체가 모두 머리만 뜯겨 있었다는 것이였다. 친구는 파수꾼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봤다. 그리고 파수꾼은 그냥 늦은 밤 돌아다니는 사람들이였다며 규율을 여겨 저렇게 됐다고 답했다. 친구는 숲이 문제가 아니라 저 파수꾼이 미친놈이라고 욕했다. 오늘 저녁에는 교수형에 걸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AN 990 4월 5일


어젯밤, 나는 진짜 미친짓을 하고 살아남았었다. 밤에 집에서 친구가 혹시 파수꾼이라는 놈이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밖에 나온 사람들에게 저런 짓을 해놓은 거 아니냐고 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그 말을 믿고 궁금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난 어젯밤에 잠결에 집에서 나와 숲속으로 잠깐 들어갔었다. 그때 나는 파수꾼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어두운 밤, 어둠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난 등불에서 나오는 빛을 봤다. 밤이 어둡고 무섭기도 해서 그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는데 자세히 보니 그곳에는 등불 말고 빛이 더 있었다. 밝은 빛을 내는 파수꾼의 노란 눈들.. 그 수많은 눈이 등불로 걸어오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그 눈들을 보고 정신을 차리고 멀리서 그 형태를 자세히 봤더니 파수꾼으로 추정되는 괴물이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달려왔다. 나는 저게 뭔지는 몰라도 일단 잡히면 죽을 것 같아 죽을 힘을 다해 집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그 괴물은 마을 안까지 쫓아오지는 않았다. 그제서야 나는 이해했다. 왜 사람들이 저렇게 죽어 있었는지..


AN 990 6월 23일


이제 이곳에 온 지 3개월이 다 되어 나는 이런 이상한 마을에 적응했다. 내 친구는 거의 매일 사람들이 죽는 걸 보면서 미쳐버려 어제 숲속 깊은 곳으로 도망쳤다. 아마 죽었을 것이다. 아무튼 시간이 지날 수록 파수꾼의 규율은 더 엄격해졌고 이제 가벼운 욕망을 표현하거나 장난식으로 질 나쁜 농담을 던져도 파수꾼의 심판장 앞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를 교수형에 처하는 것에 대해 찬성했고, 결과적으로 나무에는 재판장에 선 사람 이상으로 열매가 많아졌다. 사실 나도 이곳을 나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나는 지난번에 그 괴물을 봤었다. 만약 낮에 나간다고 해도 파수꾼이 나를 붙잡아 죽여버릴 가능성도 있었다. 쉽게 말해 너무 무서웠다. 


AN 990 9월 31일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다. 사람들은 평소에도 파수꾼에 대한 공포가 새겨져 있듯이 누군가와의 대화조차 꺼렸고 이곳에 살던 존재의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대충 봐도 절반 이상.. 파수꾼의 제지로 범죄라는 것은 없었지만 이곳은 내가 가본 곳 중 가장 위험한 지역이다. 파수꾼은 더욱더 말도 안되는 죄를 물었다. 꼭 재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트집을 잡는 것 같았다. 요즘들어 파수꾼은 과반수가 넘는 사람들이 처형에 동의했음에도 가끔 자비를 베푼다. 자신을 마냥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건가.. 하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된 사람은 어딘가로 보내지고 그 뒤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파수꾼 대신 몰래 사람을 잔인하게 처형하는 존재도 있을 것도 같다.


AN 990 11월 26일


나는 이곳에서 8달동안 살아오면서 갑자기 가장 근본적인 의문을 가졌다. 만약 이렇게 빠른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마을이면 도대체 사람들이 원래는 얼마나 많았던 것인가? 아니, 이 숲에 사람이 살긴 했던 것인가? 처음 그 많은 수의 주민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어디에서 온 것인가? 나는 생각하기를 거부했다. 어차피 살아남으려면 그런 생각할 에너지를 아껴서 정신 바짝 차리는게 낫다. 다행히 모두가 머저리는 아니였는지 오늘 보리스라는 남자가 파수꾼이 없는 새에 사람들에게 반란을 해서 이곳을 빠져나가자고 말했다. 조금 뒤 파수꾼이 돌아왔고 파수꾼이 오자마자 한 것은 보리스를 숲속으로 데려가는 것이였다. 그리고 파수꾼은 혼자서 마을에 돌아왔다. 보리스는 아마도 처치된 듯하다. 처음에는 코트 곳곳에만 있었던 파수꾼의 눈 모양 장식이 어느새 코트 전체를 수놓게 되었다.


AN 991 3월 27일


결국 그날이 왔다. 내가 죽는 날. 이곳에 온 지 딱 1년째 되는 날에 나는 실수로 재채기를 했고, 파수꾼은 나를 굉장히 아니꼽게 봤다. 오늘은 한 번 심판이 끝났기 때문에 다행히 오늘은 죽지 않았고, 아마 파수꾼은 내일 나를 심판장에 세우면서 재채기를 한 죄로 교수형을 시키거나 숲 어딘가에서 끔찍하게 죽이겠지.. 아마 내일은 이 일기를 쓸 수 없을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이다. 어차피 머리 뜯어먹혀서 죽든 교수형으로 죽든 저 나무의 열매가 되는 건 맞는데 차라리 이 숲에서 도망쳐 나올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내 가족을 볼 것이다. 죽으면 기분이 어떨까?



이 뒤로는 일기가 더이상 없다. 아마 이 일기 작가의 말대로 파수꾼이라는 괴물에게 잡혀서 죽기 전에 이걸 떨어트린 것 같다. 그런데 그 말은 여기가 그 괴물이 도사리는 곳이라는데.. 설마? 


재판장, 커다란 나무.. 빛이 없는 숲.. 여기는 일기에 나온 곳이 맞아. 


어? 왜 등불이 꺼졌지? 잠깐, 저 빛은..


괴물..? 안돼, 안돼!!!


오지마.. 오지마!!!!!!!



으아아아아아아아악!!!!!!


그렇게 무명의 탐험가는 더이상 사람이 없어 굶주린 파수꾼의 마지막 숲속 식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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