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시각으로 6월 14일, 북미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 리그 LCS가 때아닌 스토브리그의 논란에서 벗어나 성대한 개막전을 연다. 파업으로 2주간 시즌이 연기된 탓에 촉박한 일정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LCS는 ‘Fresh(신선함)’이라는 슬로건으로 논란을 불식시키려고 부단히 애쓰는 모습이다.
이대로 모든 파업과 파행은 종결됐을까? NACL의 2군 팀을 해체한 7팀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낯선 로고를 가진 7팀이 새로이 합류하면서 2군 리그 파행 역시 막았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불안함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큰 뜻을 위해 다시 손을 맞잡은 LCS와 LCS 선수협회(이하, LCSPA), 그들의 복잡했던 한 달은 <롤> 팬들에게, 그리고 LCK 팬들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줄까? /장태영(Beliar) 필자, 편집=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출처: 라이엇 게임즈)
# 뜨거운 파업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한국 시간으로 6월 9일 오전, LCS와 LCSPA 간의 합의문이 도출되었다. 6월 14일, LCS가 돌아온다는 영화 카피와 같은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공개된 합의문은 크게 여섯 가지로 요약된다.
1. 이전 라이엇 게임즈의 입장문에서 밝힌 30만 달러 외에, NACL 토너먼트 운영자와 참가 팀 간의 새로운 수익 공유모델을 구축,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지향한다.
2. TPA(팀 참가 계약) 및 참여 팀 구단의 심사 프로세스를 포함한 NACL 관리 모델을 개선한다.
3. 리그 최저 연봉의 1.5배 이상의 연봉 계약을 맺은 로컬 선수와 계약 해지 시 30일 전에는 사전 통보를 해야 하며, 그 외에 퇴단을 요구하거나 용병 신분인 선수에게는 14일 전에 사전 통지를 해야 한다.
4. 스크림 일정의 효율화를 위한 LCS 팀, LCSPA 간의 실무단을 구성한다.
5. 해외 LCS 선수가 미국에 도착할 시 의료보험 가입 요건을 강화한다.
6. 북미 <롤> 랭크 여건 개선을 위한 LCS, LCS 10개 팀 및 LCSPA 간의 워킹 프로세스를 강화한다.
큰 틀에서 보면, 리그의 정상화를 위해 LCS와 LCS 소속 10개 팀, 그리고 LCSPA가 서로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얻을 것은 얻은 모양새처럼 보인다. 가령 LCSPA는 지난 요구 조항들에서 완강한 태도로 자신들의 생존권과 지속가능성을 보장받길 희망했다. 처음부터 대화와 타협을 희망했다기보다는 협상의 차원에 가까웠던 모양새였다. 리그 확장과 계약 보장, 로스터 연속성 등은 LCS 사무국 차원을 넘어 라이엇 게임즈가 모두 수용하기엔 너무 큰 조건들이었다.
협상의 기본은 ‘하이볼(high-ball; 극단적 요건으로 상대를 위축시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전략)’ 이라고 하지만, 결국 LCSPA가 실질적으로 얻어낸 것은 의료보험 가입요건의 강화와 계약 해지 시 사전 통보 요건의 추가뿐이었다. LCS 1군 팀이 운영하던 NACL 소속 7개 팀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으며, 이미 일자리를 잃은 선수들에게 사전 통보는 향후 고용 안정성만을 담보해 줄 뿐 당장의 일자리를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협상의 카운터 파트로서 LCS가 LCSPA를 인정했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 하지만, 협상을 위해 정확히 어떤 노력과 협의가 오갔는지 알려진 바도 없고, 알 길조차 없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 이상과 현실이 충돌할 때, 마음이 급했던 선수협
(출처: 유튜브)
이들의 요구가 얼마나 현실성을 고려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북미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 ‘더블리프트’ 피터 팽은 지난 3일, 자신의 유튜브에 게재한 영상을 통해 파업에는 찬성했지만, LCSPA가 라이엇 게임즈에 요구한 일부 주장은 LCS의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리고(<발로란트> 식 경쟁모델 도입과 리그 확장), 선수들의 동기 부여를 하락시키는 주장(2군 급여 보장)이라며, 비현실적이라 꼬집은 바 있다.
아이러니한 점은 '과연 이 파업의 목적이 무엇이었는가?'다. LCSPA는 선수들의 권익 보호와 함께 경기와 경쟁을 원하는 선수들의 열망을 대변하기 위해 손을 잡았다는 내용을 성명문에 담았다. 하지만 더블리프트의 말은 조금 다른 듯하다. 그는 2부 리그(NACL)를 존속시키는 것과 서머 스플릿을 플레이하는 것 중, 선택해야 한다면 서머 스플릿을 고를 것이라며 선수들의 파업 의사와 배치되는 주장을 내비쳤다. 북미를 대표하는 스타가 미래보다 현재에 더 힘을 싣는 발언을 하며, 팬들은 때에 걸맞지 않은 주장이라며 지탄을 보냈다.
하지만 돌이켜봐야 할 부분은 분명히 존재한다. 과연 LCSPA는 무엇을 얻기 위해 급히 파업을 결정했는지에 대해서다. 북미 <롤> 중계로 유명한 트래비스 가포드는 “52명의 선수가 너나 할 것없이 투표에 동참해 1시간 만에 성명문이 나올 수 있었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하지만 파업의 성격을 고려할 때, 매우 중대한 사안이 고작 1시간 만에 합의에 이를 만큼 단순한 문제였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LCS의 경쟁력 저하, 수익성 저하는 어제 오늘 거론된 문제가 아니다. 급진적인 주장이 때로는 혁신의 불씨를 앞당길 수 있을지 몰라도, 팀당 1,000만 달러를 내면서 구성된 리그는 결코 선수들의 호기와 패기만으로 뒤바뀔 만큼 역동적일 수 없는 여건이다.
수많은 이해 관계자들이 자리하고 있는 와중에 자신들의 어려운 요구들이 수용되길 바라는 마음이 분명했다면, LCSPA의 주장과 태도는 보다 신중했어야 했다. 지지 의사의 핵심으로 자리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들의 마음조차 흔들 수 없었기에, 그들의 요구 조건은 얼마 못 가 진정성을 의심받게 된 것이다.
# LCS가 던진 돌은, 고요한 <롤> 프로씬을 울릴 수 있을까?
LCK의 지정선수 특별협상 제도가 도입될 당시 미디어 간담회에서 LCK 사무국의 이호민 팀장은 “선수들에게 제도 설계 이후 자료를 배포하며 안내할 예정이다.”라며 “아직까지 제도와 관련해 대화를 나눈 적은 없다.”고 말했다. LCK 사무국이 선수의 연봉 및 계약 체계과 직결되는 새로운 제도의 도입을 두고, 선도입-후설명의 프로세스를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정훈 사무총장은 “리그와 팀이 선수의 권익을 대변하지 못하면 선수들이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드는 것은 당연하고 제지할 생각은 없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지난 스프링 스플릿 당시 프레딧 브리온(현 OK저축은행 브리온)의 진영선택 오전달 사건의 도화선이, 리그가 선수는 물론 팀의 권익조차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팬들의 성토로 이어진 사례로 미루어 볼 때 LCK는 내부적으로 얼마나 건강한 리그인가를 되짚어 볼 필요는 있다.
(출처: 프레딧 브리온 유튜브)
LCS는 깊은 곪음 끝에 파업이라는 강경책을 들고 나왔다. 건강하지 못한 조직임을 구성원인 선수들이 먼저 인지한 것이다. 건강하지 못한 리그 환경은 결코 LCS만의 문제가 아니다. LPL, LEC는 물론, LCK도 리그에 내재된 불합리와 불만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파업이 결코 최선은 아니지만, 고요한 호수에 과감히 바위를 던져 울림을 준 LCS의 사례로 미루어 볼 때 지금보다 울림 있는 의사 표현은 권장할 만한 조짐이라 할 것이다.
‘연령이 낮고 현역으로 활동하는 선수가 대부분이어서’, ‘결성해도 권익을 대변하지 못한다면 유명무실한 단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LCK 사무국의 과거 이야기는 이번 LCS의 사태를 통해 더욱 선수들의 권익과 불만에 귀기울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게 만든다.
LCK의 국제전 성적은 물론 뷰어십 등 대외적인 지표들은 매우 건강한 편에 속한다. 하지만 리그 내적인 논란은 매 시즌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매 스플릿 시즌마다 논란의 중심에 자리한 경기 운영 관련 논란은 LCK에 대한 팬과 선수 모두의 신뢰를 스스로 깎아 먹는 일이 됐다. LCK 사무국 차원에서 매번 내놓는 대안만으로 더이상 구성원과 이해관계자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선수들의 단합된 목소리가 대두될 경우 LCK는 공정성과 신뢰에 큰 타격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중국의 교서, 손자병법은 승리를 위한 최선의 전략으로 ‘부전이승(=不戰而勝 最善勝)’을 제시한다. LCS의 사례는 결국 긴 평행선을 달리며 서로 잃는 것 뿐인 전투를 치르는 게 바람직할 지, 싸우지 않고 화합하는 길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당연한 정답뿐인 고민을 여러 리그에 던진 것이다. LCK에게도 주어진 이 고민이, 과연 어떤 현답을 향해 나아갈지 지켜볼 일이다.
코로나 이후 e스포츠에 대한 여러 우려가 팬들 사이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LCS 사태는 이번 우려가 표면적으로 나타난 사례라 할 만하다 LCK 역시 지금까지 해 온 치열한 고민에 덧붙여, 보다 확실한 현답을 찾아나갈 때다. (편집자 주/ 출처: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