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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 - 젠지전 승패 가른 애니, 승률 고공행진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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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CK에서 ‘가라, 티버!’ 소리를 들은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안 날 만큼, 애니의 LCK 출현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지난 2월 19일에는 LCK 역사상 최초로 미드 라인에 애니가 등장했을 정도로 상승세가 매섭다. LCK 역사 속에서도 서포터 포지션 정도에서 선택되던 애니가 갑자기 최전방 플레이메이커 노릇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13.3 패치 이후 급격히 유저와 프로신 모두의 취향을 저격한 곰인형 티버의 주인, AP 메이지 챔피언 애니의 등장 배경을 살펴보자. /장태영(Beliar) 필자, 편집=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19일 진행된 T1 - 젠지와의 경기에서 승패의 분수령이 된 애니의 이니시에이팅 (출처: LCK)

# 감지된 위험신호, 솔로랭크 승률 48위 → 5위


OP.GG에서 제공하는 솔로 랭크 챔피언 통계는 애니의 OP 이슈가 매우 심각한 수준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3.1b 패치까지만 해도 애니는 ‘undefined'(불분명함)이었다.

즉, 통계에도 잡히지 않을 만큼 유저들에게 외면을 받던 AP 메이지가 바로 애니였다. 하지만 13.3 패치와 함께 2월 20일 기준, 그랜드마스터 티어 구간에서 승률 54.35%로 5위 / 픽률 6.63% 5위 / 밴률 8.19% 5위를 기록할 만큼 지독하리만치 강한 OP(OverPowered - 지나치게 강한 캐릭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게임 길이별 승률은 애니의 OP성을 더하는데, 63개가량의 미드 챔피언 중, 초반부라 할 수 있는 25분까지의 승률이 13위, 중반부 승률(30분) 10위, 중장기전 승률(35분) 11위로 게임의 길이와 상관 없이 기복 없는 승률 상승폭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35분경에는 60.46%를 상회하고 있어 애니의 무시무시한 성능이 게임 생태계를 파괴하다시피 하고 있음을 통계로 짐작케 한다.

플래티넘 구간으로 시선을 낮추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승률 2위(54.17%), 픽률 3위(7.84%), 밴률 4위(11.4%)에 게임 길이별 승률은 25분 이후로 5위 아래로 내려가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 조작 난이도와 숙련도, 다양한 전략적 상황이 난무하는 고티어와 달리 티어가 낮아질수록 난타전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음을 고려하면, 애니는 티어 구간과 무관하게 난전 상황이나 전략적 운영 모두에서 고승률을 보장할 만큼 강력한 성능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미 그랜드마스터 티어 기준 애니의 승률은 53.52%로 전체 플레잉 게임 수 역시 1,022게임을 돌파해 유의한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렇다면 왜 애니가 고작 패치 한 번으로 소위 ‘떡상’을 해버린 걸까? 패치 내용부터 스킬셋 구성까지 살펴보도록 하자.


# 간단한 스킬셋, 강화된 생존력, 플레이메이킹. 3박자를 채운 AP 메이지.

 

애니는 <롤> 서비스 개시 당시 공개된 최초의 17개 챔피언 중 하나이기에 조작 난이도나 스킬셋 구성이 매우 단조롭게 구성되어 있다. 

이 말인 즉, 자잘한 버프에도 조작 난이도가 어렵지 않기에 승률 곡선은 쉽게 상승 곡선을 탈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하지만 이미 162개의 챔피언이 출시될 만큼 다양한 특성과 스킬셋 구성을 가진 챔피언이 난무하는 협곡에서 애니의 특색은 대단히 각광받을 만한 것은 아니다.

13.3 패치에서 진행된 애니의 조정은 애니의 특색은 살리면서도 성능은 강화하는 적절한 조정 사례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실제로 애니의 픽률만 보더라도 50위 권을 전전하던 챔피언을 한 순간에 최상위로 끌어올렸기에, 성공적인 패치였다.

물론, 라이엇의 의도대로만 생각하면 말이다. 라이엇의 패치 노트에는 ‘애니의 활약’을 기대한다거나, ‘편의성 상향’이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애니라는 챔피언이 갖는 근본적인 문제점인 취약한 내구력과 E스킬의 이속 추가를 제외하면 그야말로 절망적인 회피력을 모두 보완해 줌과 동시에 애니를 활용한 플레이메이킹 능력까지 완전히 보완하는 패치를 출시한 셈이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E스킬은 초반부에는 그다지 많은 이속 버프를 제공해주지 않지만, 후반으로 가면 마스터 레벨 기준 50%의 이속 버프를 제공한다. 더군다나 패치 이후 막강해진 보호막 흡수량과 짧은 쿨타임, 반사마법 피해에 스킬 공격 조건까지 생기면서 굳이 이속 버프에 기대어 맞딜을 회피하기 보다는 과감하게 탱킹하며 초중반까지 맞딜을 해도 불편함이 없는 챔피언으로의 개선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매우 짧은 공격 사거리와 높은 마나 소모량은 무턱대고 유저에게 맞딜을 감행할 용기를 부여해주지 못하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하지만, 애니에게는 티버라는 매력적인 소환수가 이러한 단점을 크게 상쇄한다.

결과적으로 사거리 싸움과 스킬 난사전에서 어느 정도의 유불리를 가지고 있다 보니, CS 수급이 원활하지 못하더라도 일방적인 다이브와 같은 집중 견제를 받지 않는 안정 지향형 운영을 가져간다면 기댓값은 빅토르, 카사딘, 라이즈 등 최근 프로신에서 자주 기용되는 AP 메이지들보다 더 높아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안정성에 날개를 달아준 E스킬 버프, 그리고 궁극기 티버의 스펙 상향은 애니의 기용률을 자연히 높일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퓨어’ 김진선의 바론 둥지 앞 W-궁 연계 3인 CC기 콤보. 8년 전 LCK에서 나왔던 명장면이다. (출처: OGN)  

애니가 높은 기용률을 보이던 2014년 ~ 2015년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애니는 소위 ‘플궁 스턴’ 콤보 빼면 시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단조롭지만 강력한 연계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시절 주목받던 스킬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적절한 시대 보정을 더했을 때의 위력은 굳이 여러 형태로 비틀어 설명하지 않더라도 위력적임을 절감할 수 있다. 

게다가 현재 미드라이너 생태계가 소위 ‘필밴’ 챔피언을 꼽을 만큼 절륜한 성능을 보이는 챔피언이 없음을 고려한다면 애니의 돌발적인 등장은 프로신을 비롯한 고티어 유저들의 선택지를 넓힌 셈이 되었다. 특히 빅토르를 제외하면 애니를 상대로 사거리 싸움에서 우위를 가지는 신드라, 오리아나 등의 여러 AP 메이지들이 0순위 선택지로 꼽히지 못하는 협곡 환경을 고려하면 애니의 전성시대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 애니 in 프로신, 어떤 포지션으로 부상할까?


글로벌 프로신에서 13.3 패치가 적용된 이래로 애니의 등장빈도가 점차 높아지는 가운데, 여전히 애니의 주 역할군은 서포터로 부각되고 있다.

LCS 스프링 2023에서 ‘후히’ 최재현의 서포터 애니가 처음 등장한 이래(2/15, TSM vs. GG)로, 총 12번의 출현 중 서포터로 8회, 미드라이너로 4회 기용된 애니는 서포터로 62.5%의 승률을 보인 반면, 미드라이너로는 50%의 승률을 거둬 적은 표본 속에서도 꽤 편차가 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전히 과거나 현재나 할 것 없이 애니의 최우선 역할군은 서포터로 꼽히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다.

한편, ‘불독’ 이태영이 전세계 프로신을 통틀어 이번 시즌 처음 기용한 ‘미드’ 애니는 영겁의 지팡이 빌드를 중심으로 초중반 안정성 및 강력한 후반 누킹 딜에 집중하는 빌드를 택했다. 2월 19일, 젠지전에서 ‘페이커’ 이상혁이 기용한 미드 애니 역시 영겁의 지팡이를 신화템으로 채용하는 빌드를 보여주었는데, 흥미로운 건 두 경기 모두 애니와 사거리 싸움에서 크게 유리한 아지르, 빅토르를 상대로 승리했다.

페이커의 빌드 선택 역시 '영겁의 지팡이'를 위시로 했다. (출처: LCK)


솔로 랭크에서 루덴의 폭풍을 채용해 라인전의 취약성을 극복하려는 템트리보다 오히려 생존력을 높임과 동시에 급작스런 이니시에이팅 환경에서의 지속력, 누킹 대미지 화력 증진 등을 고려한 선택지를 꼽았던 것이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다.

눈여겨볼 만한 경기는 단연 ‘페이커’의 애니가 빛을 발했던 2월 19일 젠지전이다.

서포터와의 스왑 가능성도 열어둔 밴픽 단계에서의 치밀함 외에도, 상대 정글러였던 ‘피넛’ 한왕호의 뽀삐와 ‘딜라이트’ 유환중의 서포터 애쉬 모두에게 견제를 받는 와중에 시야 장악의 핵심인 정글러를 끊어내는 장면이나, 41분 경 바텀 지역 내곽 포탑 앞에서 ‘페이즈’ 김수환의 드레이븐을 패시브-티버 콤보로 고사 직전까지 몰고간 플레이는 본인 커리어에서 처음 선보이는 챔피언이라 부르기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도로 절묘했다.

중요한 순간에는 항상 애니가 있었다 (출처: LCK)


특히 라이즈, 빅토르, 카사딘 등 한타에서의 영향력이 컸던 1라운드의 여러 미드라이너 챔피언과 달리 돌발적 상황을 유발할 수 있는 미드라이너 챔피언의 등장은 향후 2라운드의 메타 해석을 폭넓게 할 여지를 주는 하나의 시사점이 되기도 했다.

금요일부터 열린 LCK 2라운드 첫 주차는 라이엇이 선수들에게 던진 원딜 서포터의 파훼법, 미드라이너의 방향성 제시 등의 여러 숙제에 대한 해답을 어느 정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애니의 깜짝 등장 역시 이런 골치 아픈 숙제를 슬기롭게 풀어낸 여러 선수의 혜안이 빛난 답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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