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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테라 스포츠 이벤트, 그리고 롤 e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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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하는 구도가 있다. 펠레와 마라도나가 한 리그에서 뛰었다면? 메시와 호날두가 한 팀에서 뛰었다면? 류현진과 김광현이 원-투펀치를 이루는 팀이 있었다면? '페이커' 이상혁과 '데프트' 김혁규가 같은 팀이었다면?

이런 상상을 현실로 이루려고 한 시도들이 있었다. 바로 축구의 ‘ESL(European Super League; 유러피안 슈퍼리그)’와 골프의 ‘리브 골프(LIV Golf)’와 같은 '테라 스포츠 이벤트'의 출현이었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이들의 지향점은 서로 같다. "더 많은 부, 더 많은 자본, 더 많은 수입"(More riches, more capital, more income)

반대 의견도 아직 팽팽하지만, 스포츠가 전세계의 화합과 유무형의 공동체 가치 창출을 위해 기여해야 한다던 IOC와 FIFA 중심의 슬로건은 옛 말이 되어 가는 느낌이다. 코로나19의 도래로 스포츠의 가치가 바뀌어 가고 있는 지금, <롤> e스포츠 역시 더 이상 게임 이벤트가 아닌 스포츠로서의 잠재적 가치를 고민해야 할 시기가 왔다. /장태영(Beliar) 필자, 편집=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 테라 스포츠 이벤트란? 화끈한 자본주의 스포츠 이벤트의 신호탄


(출처: ESL)  

테라 스포츠 이벤트(Tera sports events)는 기존 스포츠 이벤트 경계를 무너뜨리며 새롭게 등장한 스포츠 이벤트를 의미하며, 두 가지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단위를 셈할 때, 활용하는 접두어로 메가(mega), 기가(giga) 다음의 의미이자, 그리스어로 괴물(Monster)을 뜻하는 ‘테라스(τέρας; teras)’에서 착안한 신조어다. 기존의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같은 성대한 스포츠 이벤트를 일컬어 메가 스포츠 이벤트라 부른 데에서 착안해, 괴물같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기존 스포츠 이벤트 생태계를 뒤흔들고자 등장한 글로벌 리그 이벤트를 주로 지칭한다.

왜 기가라는 표현으로 대체하지 않느냐는 물음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본디 메가 이벤트는 오직 올림픽이나 엑스포와 같은 전 세계적 이벤트를 부르는 단어였다. 그리고 올림픽의 큰 성공으로 각 종목별 협회나 연맹은 올림픽의 위상에 준하면서도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담은 종목별 이벤트를 런칭하길 소망했다.

올림픽보다 더 성대하고, 더 많은 자본이 흐르도록 노력에 노력을 더한 끝에 UEFA의 EURO와 FIFA의 FIFA 월드컵, 아시안 올림픽 평의회의 아시안 게임이 대표적인 메가 이벤트로 지칭된다.

두 번째는, FIFA 월드컵과 EURO와 같은 같은 종목 내 단체 간에도 서로의 대회 위상을 뛰어넘어 기가 이벤트의 선구자가 되기 위해 경쟁을 거듭하며 이벤트 규모를 확장시킨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2026년 유나이티드(북중미 연합) 월드컵은 본선 무대에만 48개의 팀이 합류할 정도로 대회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졌고, 2016년 EURO 대회를 기점으로 본선 진출 팀을 16개에서 24개로 늘렸던 UEFA는 EURO 2028을 기점으로 32개국 출전으로 대회 규모를 크게 늘리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메가 스포츠 이벤트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모두 멈춰버렸던 2020~2021년 동안 이들의 빈자리를 메울 스포츠 이벤트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죽하면 바다와 대륙을 건너 KBO 리그와 K리그의 중계권을 북미와 동남아, 유럽 등지에서 구매해 이원 중계를 할 정도로, 코로나로 인한 '스포츠-오프' 현상은 스포츠 이벤트 시장의 숨통을 거의 끊어버릴 정도였다.

언제 재개될 지 모르는 초대형 스포츠 이벤트 시장은 다른 의미로, 새로운 스포츠 이벤트 세력의 진입장벽을 크게 낮추는 기회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ESL(유러피안 슈퍼 리그)였다.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 6개팀, 스페인 라 리가 3개팀, 그리고 이탈리아 세리에 A 3개 팀, 도합 12개 팀이 규합해 출범을 도모한 ESL은 미국 최대의 은행자본인 JP모건으로부터 약 60억 달러(한화 약 8.03조 원)를 투자받아 리그를 구축하고, 첫 시즌 예상 수익으로 13조 원에 달하는 추계를 낼 만큼 장밋빛 미래를 그렸다.

ESL은 구상 초기부터 대륙 연맹인 UEFA와 총회인 FIFA의 큰 반대를 마주하며 현재 난관에 봉착한 상태지만, 이들의 탄생 배경은 결국 “지속 가능한 막대한 수입의 창출”에 있다. 코로나로 인해 FC 바르셀로나와 같은 초거대 클럽이 재정적 파탄 상태를 맞이하고, 잉글랜드의 빅클럽 역시 막대한 부채상환의 압박에 시달리게 되었다. 결국 안정적이고도 막강한 수입원이 확보된 틀 안에서 화려한 축구를 구사해 팬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겠다는 복안인 셈이다.

(출처: 리브 골프 홈페이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엔터테인먼트 요소의 도입에 있다. 기존 월드컵과 EURO, 그리고 올림픽은 경기와 경쟁 그 자체에서 빚어지는 감동 드라마와 희열, 카타르시스 등이 매력 요소였던 데 반해, ESL나 리브 골프와 같은 테라 스포츠 이벤트들은 경기 도중에도 얼마든 경기 외적인 볼거리와 놀 거리, 즐길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리브 골프의 경우, 슬로건을 ‘골프의 미래’라 칭하며 의장대가 개회 선언을 알리는 팡파르를 울리는가 하면, 개인전으로 여겨지던 골프의 축을 팀전으로도 쏠리게 하는 등 색다른 시도로 골프의 보는 맛과 노는 매력을 더했다는 평을 받는다. 특히 조용하고 평화로운 플로워 관람 문화가 도드라진 골프에 맥주는 물론 클럽 디제잉까지 더해, 하나의 엔터테인먼트 이벤트로 골프가 발돋움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롤> e스포츠, 테라 스포츠 이벤트로의 가능성 있나?

  앞서 언급했듯, 테라 스포츠 이벤트는 태생적으로 엔터테인먼트성 이벤트의 특성을 가진 채로 출범했다. 국내에서 테라 스포츠 이벤트의 개념을 처음 주장한 박재민 와우 매니지먼트 그룹 수석국장은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스포츠에 발을 내딛기 어려운 형국임을 감안해, 스포츠의 엔터테인먼트적 성격에 대한 강화를 크게 강조했다. 그의 저서 <스포츠 마케팅의 미래>에서는 미국의 사례를 예로 들며, 팬 경험을 극대화하는 스포츠 이벤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많은 프로 스포츠 이벤트의 사례들은 경기와 경기의 수익성에 큰 초점을 두고 있지만, <롤> e스포츠, 특히 LCK의 경우는 국내의 여러 프로 스포츠 이벤트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가령 지난 8월 28일, LCK 서머 결승전이 열렸던 강릉 아이스 아레나는 결승 전날 ‘팬 페스타’ 라는 이름의 전야제 행사를 개최하며 인근 일대를 ‘롤’ E스포츠 팬들의 열기로 가득 메웠다.

특히 인플루언서와 리그 내 레전드를 다수 섭외해 옛 향수를 불러 일으킴과 동시에, 행사 중간 중간 코스프레 퍼포먼스까지 더하며 단순히 경기를 보러온 팬들이 마치 ‘하나의 축제’를 보러온 듯한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경기 시작 전 소위 ‘트래시 토크’ 영상을 통한 분위기 돋우기, 오프닝 영상에서 활용된 다양한 가상현실 및 증강현실 기술의 향연 등은 코로나 시대에 감히 다른 스포츠들이 어려워했던 기술과 밀착감의 연속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즉, LCK를 비롯한 <롤> e스포츠는 규모와 자본력을 떠나 테라 스포츠 이벤트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했을 뿐더러, 오히려 테라 스포츠 이벤트를 지향하는 많은 종목과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벤치마킹 사례로 다가가고 있다.

<롤> e스포츠는 업계에서 매력적인 벤치마킹 사례 중 하나로 연구될 만큼 발전했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 <롤> e스포츠, 테라 스포츠 이벤트로의 진보를 위한 장애물은?

  최근 기업을 넘어 개인에게도 강조되고 있는 CSR(사회적 책임)과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차원의 접근은 테라 스포츠 이벤트를 주관하는 이들에게는 등한시되는 부분이다. 가령, 올림픽과 월드컵이 전세계인을 하나로 모으는 대화합의 장이자, 다양한 가치의 지향과 지속을 논하는 스포츠 정신을 지향한다면 테라 스포츠 이벤트는 첫째도 자본, 둘째도 자본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은 통계 자료를 인용하며, 2022년 e스포츠를 선망하고 즐기는 관객들의 규모가 6억 4,000만 명 규모로 폭증하리라 전망했다. 특히 e스포츠 시장의 자본 비중이 과거 광고와 티켓, 스폰서쉽 중심에서 미디어 중계권과 스폰서쉽으로 재편 및 이분화됨에 따라 중계권 계약의 규모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음에 주목했다.

과거 NFL의 경우, 1983년 연간 5000만 달러 안팎의 중계권 계약이 연간 2억 달러 이상에 달할 때까지 무려 15년이 걸렸던 것과 달리, 북미의 LCS는 중계권료 총액이 5배로 폭증하고(3억 → 15억 달러), 연 평균 2억 달러 이상에 도달하기 까지 고작 2년이 걸렸다.

단일 종목의 중계권료가 폭증하는 동안, 전세계 e스포츠 협회를 대표하는 IeSF는 주관 대회에서 <롤> e스포츠를 지난 2019년부터 정식 종목으로 선정하지 못하고 있다. 라이엇 게임즈는 롤드컵 체제 정착 후 <롤> e스포츠에서 활약하는 프로 선수들의 서드파티 국제대항전 라이센스를 거의 내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계권료와 부가수입으로 <롤> e스포츠의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는 반면, 협회는 힘을 잃어 선수들의 권익 보호에 힘쓸 단체나 연맹보다 대회를 주관하는 기업의 힘이 커진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물론 대회 전반을 주관하는 라이엇 게임즈의 사회적 공헌 수준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포용력을 상실한 채 무한하게 확장만 거듭할 경우 제동력은 누구의 몫인지조차 불분명해지기 마련이다. ESL과 리브 골프의 주체가 초거대 자본(JP모건 / 사우디 국부펀드)라는 점과 비교하면, 규모만 다를 뿐 통제 받지 않는 권력이 e스포츠 이벤트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 셈이다.

역설적으로 통제 받지 않던 협회 중심의 막강한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ESL과 리브 골프가 탄생된 것을 감안하면, 혹자는 ESL과 리브 골프가 인기를 구가할 때 이들의 횡포는 누가 견제할 수 있냐는 물음을 제기했다. 과거 방송사 중심의 게임 중계 시장에서 주도권을 게임 업계가 가져옴에 따라 불거졌던 소위 ‘공공재’ 논란과 비슷한 차원의 접근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비록 유명무실해졌지만, 프로당구협회(PBA)와 대한당구연맹(KBF) 간의 상호 공조를 위한 노력도 이러한 테라 스포츠 이벤트로서의 e스포츠를 꿈꾸기 위한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어 보인다. 특히 KeSPA와 LCK 사무국 간에 오랫동안 이어진 협력 관계는 상대적으로 자본만을 중시하던 여러 테라 스포츠 이벤트와 달리 내적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사례가 될 수 있다.

<롤> e스포츠는 테라 스포츠 이벤트를 꿈꾸는 기존 종목들에게는 환상적인 롤모델로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만일 <롤>의 아성에 도전하는 또 다른 게임이 등장해 독야청청에 가까운 질주에 제약이 생겼을 때, 과연 그들을 포용하고 지지해줄 세력은 누가 될까?

인간이 제 몸을 스스로를 껴안을 수 없듯이, 테라 스포츠 이벤트의 활황 속에 벤치마킹 사례가 될 정도로 발전한 <롤> e스포츠는 그들의 롤모델로서 더 큰 변화를 단행할 적기를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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