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의 운명을 바꿀 LCK 스토브리그가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번 스토브리그는 스타급 선수들이 한 팀에 뭉치는가 하면, 친정팀을 지킨 선수도 다수 등장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다이나믹한 상황이 자주 펼쳐졌습니다. 역대급 스토브리그라는 표현이 전혀 과하지 않을 정도죠.
과연 LCK 팀들은 어떤 방식을 통해 자신의 전력을 보강했을까요? 로스터 상황을 정리하는 한편, 간단한 전망을 통해 2022 시즌 팀별 준비 상황을 점검해보려 합니다. 내년 시즌을 미리 볼 수 있는 기회인 만큼 LCK를 사랑하는 팬이라면 끝까지 페이지 고정을 부탁드리겠습니다. / 디스이즈게임 이형철 기자
3일 오전 9시까지 완료된 이적을 기준으로 합니다.
# 이름만 빼고 거의 다 바꾼 팀: 젠지, DK, 농심, KT, 리브 샌박, 아프리카
2020, 2021시즌 반지원정대라는 이름의 슈퍼팀을 꾸리고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젠지는 이번 스토브리그를 통해 이를 악문 듯 큰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팀의 핵심으로 꼽히는 '비디디' 곽보성을 '피넛' 한왕호와 트레이드하는 한편, 한국 최고의 미드 라이너 중 하나로 꼽히는 '쵸비' 정지훈까지 데려왔으니까요. KT 롤스터(이하 KT)에서 맹활약을 펼친 '도란' 최현준과 아프리카 프릭스의 서포터로 활약한 '리헨즈' 손시우 영입 역시 좋은 포인트로 꼽힙니다.
브랜드 뉴 젠지는 농심 레드포스에서 검증된 피넛의 오더를 중심으로 경기를 풀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도란과 쵸비의 강력한 라인전은 물론, 여전히 건재한 룰러 등 팀적으로 가진 무기도 제법 다양하고요. 2021년 부진했던 리헨즈에 대한 우려가 있긴 하지만 보여준 게 확실한 선수인 만큼 반등 여지도 충분합니다.
▲ 젠지
IN: 도란(TOP/ KT), 피넛(JUG/ 농심), 쵸비(MID/ 한화생명), 리헨즈(SUP/ 아프리카)
스토브리그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라인업이다 (출처: lolesports)
'캐니언' 김건부와 '쇼메이커' 허수라는 핵심 라인을 붙잡는 데 성공한 담원 기아는 바텀에 '덕담' 서대길과 '켈린' 김형규를 영입하며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린 '고스트' 장용준, '베릴' 조건희와의 이별을 택한 만큼, 과감한 한 수입니다. 또한 담원기아는 국방의 의무를 수행할 '칸' 김동하의 자리를 젠지의 코어 유망주 '버돌' 노태윤으로 메꾸는 '굿 무브'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덕담과 켈린은 올 시즌 농심 레드포스에서 공격적인 플레이를 통해 많은 명장면을 만들어 낸 정상급 바텀 듀오로 꼽힙니다. 따라서 내년 시즌 담원 기아가 바텀을 중심으로 게임을 풀어갈 가능성도 적지 않죠.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은 덕담-켈린이 수년간 팀의 기둥 역할을 수행했던 고스트-베릴 듀오의 빈자리를 메워야 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베릴은 오랜 시간 담원 기아의 오더를 담당한 만큼, 자칫 큰 리스크가 될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과연 담원 기아의 새로운 인게임 사령탑은 누가 될까요? 덕담과 베릴은 자신들이 새로운 담원 기아의 바텀 듀오가 될 자격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 담원 기아
IN: 덕담(ADC/ 농심), 켈린(SUP/ 농심), 버돌(TOP/ 젠지)
버돌, 덕담, 켈린은 담원 기아라는 강팀에서 또 한 번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출처: 담원 기아)
아쉽게 롤드컵 진출에 실패한 농심 레드포스는 T1, 아프리카, 젠지 등 다양한 팀에서 선수를 영입하며 로스터 개편에 나섰습니다. T1의 로열로더 '칸나' 김창동, 아프리카의 정글러 '드레드' 이진혁을 데려온 데 이어 비디디, 고스트, '에포트' 이상호로 이어지는 미드-바텀 라인까지 구성했으니까요.
이중 눈길이 가는 건 비디디-고스트 듀오입니다. 두 선수는 과거 CJ 엔투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긴 인연으로 엮여있지만 정작 함께 경기에 나온 적은 거의 없었죠. 반면, 농심 레드포스에서는 사실상 주전 미드, 원거리 딜러로 낙점된 만큼 CJ의 마지막 혼을 담은 경기를 펼칠 것으로 보입니다.
▲ 농심 레드포스
IN: 칸나(TOP/ T1), 드레드(JUG/ 아프리카), 비디디(MID/ 젠지), 고스트(ADC/ 담원 기아), 에포트(SUP/ 리브 샌박)
농심 레드포스는 완전히 새로운 로스터를 꾸렸다 (출처: 농심 레드포스)
2018년 우승을 차지한 뒤 수년째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한 KT는 젠지에서 '라스칼' 김광희, '라이프' 김정민을 데려온 데 이어 '아리아' 이가을과 '에이밍' 김하람, '커즈' 문우찬까지 영입하는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치열한 영입 전쟁이 펼쳐졌음을 감안하면 제법 괜찮은 스쿼드를 구축한 셈이죠.
KT의 성패는 아리아에 달려있습니다. 아리아는 2021년 일본 리그 DFM 소속으로 팀의 첫 롤드컵 그룹 스테이지 진출을 이끌었는데요, T1과 EDG 등 쟁쟁한 팀들을 상대로도 번뜩이는 모습을 보여줬기에 팬들의 기대도 큰 상황입니다. 다만 리그를 옮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아리아는 2019년부터 쭉 일본 리그에서만 선수 생활을 해온 만큼, 이번이 실질적인 첫 번째 도전에 해당합니다. 한국인에게 LCK 적응이 웬 말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글쎄요. LCK와 일본 리그의 수준 차이가 제법 큰 편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되겠습니다. 아리아의 적응 여부에 따라 KT의 운명도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 KT
IN: 라스칼(TOP/ 젠지), 커즈(JUG/ T1), 아리아(MID/ DFM), 에이밍(ADC/ BLG), 라이프(SUP/ 젠지)
아리아의 적응 여부는 KT의 열쇠가 될 가능성이 높다 (출처: KT)
아프리카 프릭스 역시 로스터 전반에 변화를 줬습니다. 프랜차이즈 스타 '기인' 김기인을 중심으로 '엘림' 최엘림, '페이트' 유수혁, '테디' 박진성, '호잇' 류호성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로스터를 꾸렸죠.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던 지난 이적 시장에 비하면 제법 알찬 보강으로 보입니다.
특히 미드와 원거리 딜러 포지션에 캐리 롤을 수행할 수 있는 선수를 보강한 점은 인상적입니다. 페이트와 테디는 각각 리브 샌드박스와 T1에서 팀을 이끌며 다양한 명장면을 쏟아냈으니까요. 기인 한 명에게 너무 많은 게 쏠렸던 아프리카 프릭스 입장에선 큰 힘이 될 만한 요소입니다.
▲ 아프리카 프릭스
IN: 엘림(JUG/ T1), 페이트(MID/ 리브 샌박), 테디(ADC/ T1), 호잇(SUP/ T1)
확실한 캐리 라인 보강에 성공한 아프리카 프릭스 (출처: 아프리카 프릭스)
리브 샌드박스는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가장 '독특한' 컨셉의 로스터를 구성했습니다.
미드로 활약한 '도브' 김재연을 탑으로 영입한 데 이어 바텀 듀오에 젠지 2군 출신 '엔비' 이명준과 '카엘' 김진홍을 낙점했으니까요. 또한, 주전 미드로는 T1에서 잠시 주목을 받았던 '클로저' 김주현을 영입했죠. 어찌 보면 정글러 '크로코' 김동범을 제외한 모든 포지션에 물음표가 붙어있는 셈입니다.
리브 샌드박스의 의도는 명확합니다. 젊고 유망한 선수들로 로스터를 구성해 미래를 보겠다는 거죠. 포텐셜만 터지면 확실한 기틀을 만들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고요. 또한, 도브는 미드에서도 팀의 자원을 최대한 먹지 않는 안정감 있는 플레이로 정평이 나 있는 선수이기에 탑에서도 잘할 거라는 낙관적 평가가 적지 않습니다. 과연 리브 샌드박스의 '큰 그림'은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요?
▲ 리브 샌드박스
IN: 도브(TOP/ KT), 클로저(MID/ T1), 엔비(ADC/ 젠지), 카헬(SUP/ 젠지)
리브 샌드박스는 약간의 리스크를 동반한 매력적인 스쿼드를 구성했다 (출처: 리브 샌드박스)
# 하던 거 그대로 유지한 팀: T1, 프레딧 브리온
앞서 언급한 팀과 달리 큰 변화 없이 시즌을 준비 중인 팀도 있습니다. T1과 프레딧 브리온입니다.
지나치게 많은 선수를 활용한 탓에 부침을 겪었던 T1은 손석희 감독 대행이 팀을 잘 추스리면서 극적인 반등에 성공했습니다. 그 결과 롤드컵 4강에서는 담원 기아와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 역사를 장식할 만한 멋진 명승부를 펼치기도 했죠. 이에 일각에서는 T1이 '빅네임'을 영입해 대권에 도전할 수도 있다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다만, T1의 움직임은 상당히 고요합니다. 팀의 핵심 '페이커' 이상혁과 계약을 연장한 걸 제외하면 분주히 선수단의 몸집을 줄였으니까요. CEO 조 마쉬에 다르면 T1은 곧 2022 시즌 로스터를 공개할 것으로 보입니다. 팬들이 기대한 빅 사이닝은 아직 없는 상황, 과연 T1은 특별한 보강 없이 '좀아쉬'운 결말을 맺는 걸까요? 아니면 누구도 기대치 않았던 깜짝 영입이 진행되는 걸까요?
▲ T1
IN: 애스퍼(SUP/ 1군 콜업 및 코치 겸임)
지금까지의 흐름만 봐선 이것이 T1의 주전 로스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출처: T1)
자이언트 킬링을 통해 수많은 팬의 '세컨 팀'으로 자리 잡은 프레딧 브리온은 '호야' 윤용호를 제외한 주전 선수 전원과 연장 계약을 체결하며 기분 좋게 스토브리그를 시작했는데요, 이후 '소드' 최성원과 '모건' 박기태를 영입하며 로스터 구성을 마치는 모양새입니다.
현재까지 공개된 로스터만 보면 프레딧 브리온의 컨셉은 2021 시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탑은 최대한 든든히 버티되 한타 페이즈를 통해 변수를 만든다는 거죠. 소드나 모건 역시 과거 LCK에서 보여준 플레이 스타일을 그대로 이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 프레딧 브리온
IN: 소드(TOP/ 휴식 후 복귀), 모건(TOP/ 한화생명)
# 베일에 감춰진 팀: DRX, 한화생명e스포츠
DRX는 현시점까지 새로운 로스터에 대한 어떠한 메시지도 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중국에서 돌아온 모 감독과 베테랑 원거리 딜러를 중심으로 팀을 꾸렸다는 이야기가 들리긴 하지만, 아직 공식적인 메시지는 전무한 상황이죠. 만약 세간에 떠도는 소문대로 로스터가 갖춰질 경우 DRX는 2022 LCK의 강력한 다크호스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저기서 약간의 '힌트'가 전해지고 있는 만큼, 머지않아 공식 발표가 진행되지 않을까 싶네요.
2021 서머 DRX는 그야말로 굴욕적인 시즌을 보냈습니다. 기대를 모았던 유망주들이 잇따라 적응에 실패하면서 단 2승에 그쳤기 때문이죠. DRX가 준비한 '새로운 팀'은 과연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요?
신인 선수 위주로 팀을 꾸렸던 DRX는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출처: DRX)
마지막으로 소개할 팀은 한화생명e스포츠(이하 한화생명)입니다.
한화생명의 올겨울은 참으로 춥고도 험난합니다. 팀의 코어였던 쵸비와 '데프트' 김혁규를 놓친 데 이어 모건과 '아서' 박미르 등 주전으로 기용한 선수들마저 팀을 떠났기 때문이죠. 설상가상으로 2군에서 좋은 경기를 펼치던 '마스크' 이상훈과의 계약도 종료됐습니다. 각종 매체와 63빌딩에 선수단 사진을 게시할 때만 해도 희망적이던 한화생명의 분위기도 순식간에 얼어붙었습니다.
일각에서는 한화생명이 '육성'을 천명했다는 이야기도 들리는데요, 만약 사실이라면 조금 현실성 떨어지는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육성이라는 단어는 겉보기엔 매우 근사합니다. 어린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 그들을 키워 팀의 새로운 중심으로 삼겠다는 거니까요. 하지만 현실, 특히 스포츠의 육성이란 그리 쉬운 과제가 아닙니다. 경기에 내보내기만 하면 어떻게든 경험치를 먹고 성장하는 게임과 현실은 엄연히 다를뿐더러, 실제 잠재력을 확인하는 과정도 매우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이죠.
만약 한화가 확실한 코어 없이 어린 선수들'만으로' 정규 시즌에 임할 경우, 극단적인 결과를 마주할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고통받는 건 이를 지켜볼 한화생명 팬분들과 패배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어린 선수들이 될 거고요.
다행스럽게도 아직 한화생명엔 약간의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얼마 전 공식 트위터를 통해 "아직 명확하게 결정된 건 없는 상황"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죠. 과연 한화생명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한화생명의 '큰 그림'은 무엇일까 (출처: 한화생명e스포츠)
2줄요약 01. CJ 팬 입장에서 농심 레드포스 보고 거의 행복사했습니다 02. 그래 이렇게라도 행복하면 되는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