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원 게이밍(이하 담원)은 이번 롤드컵에서 폭발적인 경기력으로 우승컵을 차지하며 한국 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모든 선수가 제 역할을 한 가운데, 특히 서포터 '베릴' 조건희의 활약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2020년, 베릴은 말 그대로 압도적인 한 해를 보냈다. 자신만의 서포터 픽을 통한 플레이메이킹은 그의 장기 중 하나. 스프링 시즌 선보인 '마오카이' 서포터와 서머 시즌, 롤드컵에서 꺼낸 판테온 서포터는 다른 선수들에게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하지만 베릴의 프로 생활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원거리 딜러로 시작해 세계 최고의 서포터에 오른 '베릴'의 발걸음을 되짚어봤다. /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객원 기자 (출처: 라이엇 게임즈)
# '세체폿' 베릴의 출발점은 '원거리 딜러'였다
모든 프로 선수가 그렇듯, 베릴의 첫 도전 역시 그리 쉽지 않았다. 베릴은 김목경 전 담원 감독이 사비를 털어 만든 '미라지 게이밍'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는데, 어떤 선수건 신생 프로팀에서 활동한다는 건 그리 만만치 않다. 2부 리그 승강전부터 시작하는 경우는 더더욱 그렇고.
다행스럽게도 미라지 게이밍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며 순항하는 듯 했다. 2017 챌린저스 코리아 승강전에서 배틀코믹스를 꺾고 프로 무대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후 미라지 게이밍은 담원의 스폰을 받아 '담원 게이밍'으로 팀명을 변경하며 본격적인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재미있는 건, 당시 베릴이 지금과 달리 '원거리 딜러'였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는 솔로랭크로 1위를 찍은 바 있는 소문난 아마추어 원거리 딜러였다.
곱상한 외모를 자랑했던 베릴 (출처: 라이엇 게임즈)
그렇게 챌린저스에 입성한 담원은 개막 후 5연승을 질주하며 새로운 돌풍을 일으키는 듯했다. 베릴 역시 원거리 딜러로써 안정적인 경기력을 통해 힘을 보탰다.
하지만 담원은 이러한 상승세를 꾸준히 이어가지 못했다. 1라운드 막바지, 담원은 경험이 풍부한 CJ와 콩두 게이밍을 만나 연패한 데 이어, 2라운드에서는 최하위였던 RGS와 IGS에 연달아 패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담원의 앞길을 막은 IGS의 탑솔러는 현재 담원의 '코어'로 꼽히는 '너구리' 장하권이었다.
이후 담원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탑 라인에 너구리를 영입하는 한편, 손꼽히는 아마추어 미드라이너 '쇼메이커' 허수를 영입하는 등 젊은 피를 수혈한 것이다. 베릴 역시 서포터로 포지션을 변경하며 '호잇' 류호성과 2인 경쟁 체제를 이뤘다.
하지만 결과물은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압도적인 상체의 힘을 바탕으로 정규 시즌 2위에 올랐지만, 포스트 시즌에서 '에버8 위너스'에 패하며 LCK 승격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베릴 역시 교체 투입되어 역전의 발판을 만들고자 했지만, 결국 4경기에서 게임을 내주며 1부 승격에 대한 꿈을 접어야 했다.
담원은 에버8 위너스에 패배하며 쓴잔을 마셔야 했다 (출처: 아프리카TV)
절치부심한 담원은 부족한 경험을 채우기 위해 스베누, H2K 등에서 활동한 원거리 딜러 '뉴클리어' 신정현을 영입하는 승부수를 던졌고, 이는 좋은 결과물로 이어졌다.
강력한 상체는 물론, 뉴클리어-호잇 바텀 듀오마저 안정감을 바탕으로 경기를 풀어가자 담원은 폭발적인 경기력으로 챌린저스 코리아를 찍어누르기 시작했다. 2018 챌린저스 서머, 담원은 13승 1패로 승강전에 진출했고 BBQ와 배틀코믹스를 연달아 꺾으며 당당히 LCK에 진출했다.
그렇게 담원의 실질적인 '첫 번째 걸음마'가 시작됐다.
# 베릴, 2019 리프트 라이벌즈를 통해 처음으로 이름을 알리다
2019년 개최된 '리프트 라이벌즈'는 담원의 무시무시함이 제대로 드러난 첫 번째 국제대회였다. 특히 담원은 창단 후 첫 번째 국제대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조별 리그에서 중국의 TES를 격파하며 LCK의 결승 진출에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이어진 중국과의 결승전, 담원의 상대는 LPL 징동 게이밍이었다. 당시 LCK는 결승전에서 킹존이 IG를, T1이 TES를 격파했지만 그리핀이 FPX에 패배하며 2:1로 쫓기고 있었다. 분위기를 내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담원의 승리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담원은 경기 초반 불리한 흐름에 놓였다. 바텀에서 상대에게 킬을 내주는 한편, 경기 중반 한타에서도 상대에게 대패했기 때문이다. 5경기까지 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슴할 무렵, 베릴의 플레이메이킹 능력이 빛나기 시작했다.
전령 앞 한타에서 '마법공학 점멸'을 활용한 깜짝 이니시에이팅으로 신드라를 자른 데 이어, 드래곤 앞 싸움에서 점멸로 상대 선수 4명을 띄우는 슈퍼 플레이를 선보이며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킨 것이다. 이에 국내 중계진은 "알리스타가 꿈에 나오겠다"라는 멘트를 통해 베릴의 플레이를 극찬하기도 했다.
매드라이프의 알리스타를 연상케 했던 베릴의 슈퍼 플레이 (출처: 라이엇 게임즈)
담원의 돌풍은 그해 롤드컵에서도 계속됐다.
담원은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플레이-인 스테이지'를 폭격했고, 조별 리그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IG'를 잡아내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베릴 역시 '뽀삐'를 서포터로 활용하는 등 플레이메이커로서 꾸준히 활약했다. 하지만 담원의 질주는 8강까지였다. '코리안 킬러' G2를 만난 담원은 어려운 경기를 펼친 끝에 3:1로 분패했고, 베릴 역시 '오른' 등을 꺼내며 분전했지만 경기 결과까지 바꿀 순 없었다.
# 판테온과 함께 정상에 오르다
2020 스프링, 모두의 예상과 달리 담원은 크게 흔들렸다. 이재민 감독이 합류하긴 했지만, 그간 팀을 이끈 김정수 코치와 김목경 감독의 빈자리는 꽤 커 보였다. 실제로 담원은 케스파컵에서 DRX에 0:2로 패한 데 이어 스프링 시즌 1라운드에서도 승패를 반복하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스프링 2라운드, '고스트' 장용준을 영입한 담원은 급속도로 안정감을 되찾았다. 특히 고스트가 바텀에서 홀로 라인전을 하는 사이 베릴이 적극적으로 다른 라인에 개입하는 '담원 스타일'은 많은 팀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특히 오공, 마오카이 서포터는 오직 베릴만이 선보일 수 있는 조커 카드로 꼽혔다.
궤도에 오른 담원은 압도적인 모습으로 서머 시즌 우승컵을 차지했고, 이어진 롤드컵에서도 우승 후보다운 경기력으로 당당히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올랐다.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정상의 자리에 오른 담원 (출처: 라이엇 게임즈)
이 과정에서 베릴은 그야말로 절정의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과시하며 팀을 이끌었다. 특히 솔로 랭크에서의 피나는 연구 끝에 등장한 '서포터 판테온'은 베릴의 시그니쳐 픽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서머 시즌 판테온 성적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2020 서머 시즌 판테온이 올린 13승 중 무려 8승이 베릴의 손끝에서 나왔다.
베릴의 '판테온' 활용은 롤드컵에서도 이어졌다. 2020 롤드컵, 서포터 판테온은 10승 7패를 기록했는데 그중 4승은 베릴이 거둔 승리였다. 특히 베릴은 결승전 1세트에서도 판테온은 활용해 상대 위치를 계속해서 찾아다니는 등 이른바 '서포터 캐리'를 선보이며 경기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 베릴 "롤은 또 다른 나를 보여주는 매개체"
담원 공식 유튜브에 올라온 인터뷰에 따르면, 베릴은 "게임을 할 때와 평소 나의 모습은 다른 것 같다"라며 "게임은 또 다른 나를 보여주는 매개체"라고 밝혔다.
실제로 인 게임 보이스를 들어보면 베릴의 경기 외적인 모습과 내적인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경기 전에는 팀원들에게 친근한 농담을 던지기도 하지만, 게임 안에서는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임하기 때문이다.
'판테온 서포터' 같은 픽 역시 결코 쉽게 만들어진 게 아니다. 베릴은 인터뷰에서 다양한 해외 리그를 챙겨보는 한편, 새로운 픽에 대한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판테온 서포터 역시 솔로 랭크에서의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탄생한 베릴만의 시그니쳐 픽이다.
누구보다 유머러스하지만, 경기 안에서는 누구보다 진지한 '베릴'은 끝없는 노력을 통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2021 시즌, 베릴과 담원이 걸어갈 행보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3줄요약 01. 킹베릴 02. 짱베릴 03. 갓베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