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좆좆국이지만 찬란했던 꼴잘알 당나라시절 패션을 알아보자
1972년 중국 호남성에서 소사단의라는 의복이 발굴되었는데, 이 긴 소매 옷의 무게는 겨우 48그램이었다고 해. 이 정도면 말 그대로 "매미날개처럼" 얇은 시스루였을 듯. 물론 이게 외출복은 아니고 이 위에 뭔가를 걸쳤겠지만, 침실에서만 입었다고 쳐도 당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꼴잘알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겠지.
중국 왕조 역사상 가장 노출이 대담했던 것으로 잘 알려진 당나라지만 시대별로 노출의 정도는 차이가 있어.
위처럼 가슴을 절반 정도 노출하는 과감하고 바람직한 복장은 측천무후 이후에 유행했던 것으로 보여.
"또 나다 ㅎㅎ"
단흉이라는 복식인데, 지위가 높은 여성일수록 더 많이 노출을 했다지.
(장예모 감독, 주윤발, 공리 주연의 만성진대황금갑(滿城盡帶黃金甲)은 나름 고증이 잘 되었던??)
무후가 아직 최고 권력자가 되지 못했던 소시적부터 이런 노출 패션을 즐겼던 영향이라는데, 남편인 고종은 이게 썩 마뜩치 않았는지 두 번이나 "거 좀 가슴골좀 내놓고 다니지 마라" 라고 금지령을 내렸다고 해.
(쪼다 쉑! 그러니까 마누라한테 권력을 다 뺏기지!)
무후가 실질적인 황제 노릇을 하면서부터는 이런 반동적 조치도 사라지고 꽤 오랫동안 바람직한 시대가 이어졌음을 당시의 시에서 엿볼수 있어.
당나라 시기 이름난 시인 시견오의 시에 "長留白雪占胸前 / 앞가슴에 흰 눈이 쌓였구나" 라는 대목이라던지,
비슷한 시기 절강에서 활동한 시인 방간의 시에 "粉胸半掩凝晴雪 / 반쯤 내놓은 흰 가슴 맑게 갠 하늘 아래 눈같도다" 라는 대목이라던지,
구양형의 남향자라는 작품에서 "胸前如雪 / 드러낸 가슴 눈처럼 희고" 대목 등등...
역시 무후가 답이다!
측천무후는 좆같은 년인 줄 알았는데...
젖같은 성군이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