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다들 앉아보거라
내가 한 나라의 끝 이야기를 해주마
오랑캐에 밀려 남쪽으로 밀려간 나라가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나라는 영원한 번영을 누린 선비의 나라였다
그 나라는 사대부와 학문을 사랑했지만 유약했고
언제나 북쪽 오랑캐들에게 그저 돈으로만 평화를 사려고만 했다.
세상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비웃으며 곧 멸망할 나라라고 조소했다.
그 나라를 세상사람들은 송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초원에서 새로운 오랑캐들이 일어났고
송나라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위협을 느끼게 된다.
송의 북쪽, 금나라의 수도가 불탔을 때, 칸은 천둥같은 소리로 남쪽을 가리킨다
칸에게는 흰 말 한마리가 있었는데, 그 위에 탄 자는 활을 가지고 있었다.
칸이 두번째 소리를 외쳤을 때
다른 붉은 말이 나왔는데, 그 위에 탄 자는 이 땅에서 평화를 거두어 가는 권한을 받았다.
그리고 새로운 칸이 일어나자
창백한 말 한 필이 일어났고 그 위에 탄 사람은 죽음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지옥이 따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중국 대륙의 반을 지배하는 권한, 칼과 기근과 죽음, 그리고 송을 없애는 권한이 부여된다.
그러나 그들을 막아야하는 최후의 보루인 송의 군대는
고금을 통틀어 가장 약한 군대였다.
그들은 거란에게 졌으며, 서하에게 졌으며, 여진에게 졌고
이제는 그 모두를 멸망시킨 몽골과 맞닥드리게 된 것이다.
이윽고 세상의 절반을 불태운 악마의 군대가 그들의 성 앞에 당도한다
온갖 이국적인 사람들과 장비들, 그리고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내뱉는 인간의 무리들
그러나 유약하다고 여긴 선비의 나라, 송은
그 악마들에게 맞서 무려 40년간 싸운다
특히 거대한 장벽을 자랑하는 송의 최전선, 양양성은
무려 30년간 원의 모든 공격을 버텨냈고
바그다드를 불태우고, 키예프를 목초지로 만든 공포의 칸인 오고타이
제국의 최대판도를 이룩한 몽케 칸의 모든 공격을 막아낸다.
그러나 몽골에서 범상치 않은 자가 칸에 오르니
바로 쿠빌라이 칸이다.
그는 다른 칸들과 다르게 적인 중국의 문화에 대해 이해했고
자신의 지상 목표를 남쪽에 박혀있는, 중국인들의 최후의 제국을 멸망시키는 것으로 정한다
그리고 쿠빌라이는 이전의 몽골의 대칸들과 다르게 인내심을 가진 인물이었고
그는 5년간의 포위로 양양성을 함락시킨다.
사대부이자 장군인 범천순은 미친듯이 쏟아져오는 몽골군과 싸우다가
"나는 살아서 송나라의 신하가 되었으니, 마땅히 죽어서도 송나라의 귀신이 되리라!"
를 외치고 목을 매서 자결한다.
성을 지키던 또다른 장수인 우부도 백명의 결사대로 저항하다가 불길 속에 몸을 던져 자결한다
사실상 양양성이 함락된 시점에서 송의 멸망은 기정사실이 되버린다.
20만의 몽골군은 양쯔강을 넘는다.
그러나 악마들을 맞닥드린 송나라의 마지막 수군과 수비군 증
그 누구도 항복한 장수는 없었다.
심지어 간신인 가사도도 15만 병력을 다 잃었지만 항복하지 않았다.
수많은 사대부와 장군들은 몽골과 맞써싸우지만
상대는 세상의 절반을 불태운 악마들이었다.
결국 수도인 임안이 함락당한다.
그러나 사대부이자 재상인 문천상은 목숨이 다할 때까지 끝까지 싸우기를 천명했고
심지어 망명 정부의 사대부인 양진은 적진에 찾아가 일부러 사로잡히며 시간을 벌었고
그틈에 황제와 황제의 스승, 그리고 망명정부의 인원과 그들을 따르는 백성 20만명이
중국의 끝인 푸저우로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망명 정부를 지키기 위해 문천상은 악마들 마저 감탄할 정도로 분투했지만
결국 몽골의 명장 바얀에게 사로잡힌다. 그러나 그 역시 항복을 거부한다.
결국 악마들은 푸저우를 함락시키고
사실상 망명 정부는 뒤에는 바다밖에 없는 마지막 거점, 홍콩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항복을 입에 담지 않았다.
그들은 애산에서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중화왕조의 마지막 싸움을 준비한다.
어린황제, 신하들, 그리고 20만에 달하는 병사와 백성들은 애잔하면서, 한편으로는 비장했다.
황제의 스승이자 사대부인 육수부는 사실상 이것이 마지막임을 깨달았고
심지어 진중에는 송나라에게 황위를 양위해준 전왕조의 가문, 시씨 일족도 함께하고 있었다.
몽골군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들이 여태까지 싸운 그 어떤 상대보다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고, 항복한 장수인 장홍범을 보내어
군을 이끄는 장세걸과 육수부에게 항복 권유를 한다.
"나 역시 항복이 무슨 말인지 안다. 생명의 귀중하다는 사실 역시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단지, 주군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변심하지 않으려는 것 뿐이다."
장세걸을 이 말을 끝으로 장홍범을 돌려보낸다.
결국 몽골군은 마지막 남은 송의 무리를 향해 총공격을 지시한다
결국 중국의 끝, 애산에서 황족과 신하들은 송의 마지막 군대를 가지고 최후의 항전에 나선다
최후의 결전에서 몽골군은 육지의 송나라군을 완전히 포위해버렸고
그들은 먹을 게 없어서 바닷물을 먹고 구토를 하면서도 버텼지만
결국 전멸하고 만다.
수백척이 넘는 함선이 차가운 바다 밑으로 가라 앉았고, 수만명이 물 위로 떠오르지 못했다.
그 시각 육수부는 어린 황제에게 송의 역사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자 육수부는 어린 황제와 함께 물에 뛰어든다.
이 때 황제는 "내 다시는 제왕의 핏줄로 태어나지 않겠다!"라는 말을 남기며 죽었다.
황제의 어머니인 양태후도 물에 뛰어들었다가 구출되지만
"일이 이렇게 되었는데 내가 더 살아서 무엇을 하겠나"
라고 외치며 다시 물에 몸을 던져 자결한다.
7살의 마지막 황제, 그의 어머니, 황제의 스승, 황족들, 신하들 모두 바다에 몸을 던져 자결한다
몽골 기록에 따르면 다음날 바닷가로 밀려온 시체만 10만구가 넘었다고 한다.
다행히도 장세걸이 이끄는 송나라의 마지막 수군은 살아남았다
그는 남쪽으로 가서 투쟁을 이어가려고 했지만, 하늘은 그들에게 천둥과 벼락을 내린다.
폭풍우 속에서 마지막을 직감한 장세걸은 하늘에 대고 외친다
"신이 송을 위해 힘쓸 일은 이제 다 끝나고 말았습니다. 정녕 이것이 하늘의 뜻입니까?
하늘이 만약 송을 망하게 하려는 것이 그 뜻이라면, 신과 여기 있는 모두를 이 바다에 잠겨 죽게 해주소서."
그리고 풍랑이 배를 삼켜버린다.
애산에서의 패배 소식을 접한 문천상은 낙담한다.
쿠빌라이는 그런 그를 어떻게든 자신의 신하로 만들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그는 황제가 가라앉은 남쪽 바다를 바라보며 처형당한다.
이로써 쿠빌라이가 20살의 나이에 시작한 전쟁은 그의 나이 64세에 끝나게 된다.
그야말로 몽골의 한 세대 전부를 소진한 유일한 전쟁이었다.
송의 역사는 수많은 굴욕적인 역사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송나라의 사대부를 보고 글이나 외울 줄 알았던 머저리라고 불렀다
그러나 송은 역대 어느 왕조와 비교해도 더 장렬하게 순국하고
뜻을 꺽지 않았으며, 모두 황제를 지키며 바다속으로 가라앉는다.
즉 사대부들이 최후의 궁지에서도 혈전을 벌이며 황실을 위해 목숨을 바친행동은
송 왕조가 3백년간 사대부를 우대한 것에 대한 최상의 보답이었고
유약하다고 여긴 문관정치의 보람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내가 젊은 시절 보고 들은 이야기를 마치마
사족이지만 나도 장세걸 장군과 함께 그 배에 타고 있었지....
하지만 다행히도 난 살아남았고 이곳에서 너희들의 할애비가 될 수 있었단다
하지만 장세걸 장군님의 말과 다르게 할아버지는 살아남았잖아요?
그럼 결국 우리를 지배하는 몽골도 다시 무찌를 수 있다는 말 아닌가요?
하하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내 대에서는 최선을 다했건만 결국 그걸 이뤄내지는 못했구나
이 모든 일은 너에게 맞기마 중팔아
애산 전투로부터 60년 뒤
강남 호주의 가난뱅이 농부 진씨는 일가를 꾸렸고
어린 손자, 손녀들에게 자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해주었다.
송의 화려한 수도인 임안, 황제를 모시고 도착한 애산
불길 휩싸이는 배들과 태풍이 몰아쳐도 의연한 장세걸 등
그렇다 진씨 노인은 애산 전투의 생존자였다.
어린 황제도, 육수부도, 장세걸도 모두 하늘을 저주하며 죽었고
그의 함대도 태풍에 휘말려 침몰했지만, 진씨는 극적으로 구조를 받아 살아남는다
그리고 온갖 고생끝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에게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상처 였지만 동시에 평생의 자랑이기도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손자, 손녀들은 똑같이 눈물을 흘렸고
그 중에는 막내 외손자인 중팔이도 있었다.
그리고 중팔은 장성하여 몽골에 대항하는 반군의 장군이 되고
똑같이 자신들의 선조를 몰살했던 애산에서
몽골군을 몰살하게 되고
최후에는 중화를 지배하던 몽골의 지배를 끝내고
다시 한족의 왕조를 여니
그가 바로 명나라의 태조 주원장이다
애산 전투로부터 90년
끝까지 항전했던 어느 한 남송 한족 병사의 외손자가
기어이 송을 집어삼킨 악마들의 대제국을 거꾸러뜨리고 다시 한족의 나라를 세운 것이다.
장세걸은 송을 멸하려면 모두 물에 빠져 죽게해달라고 절규했지만
하늘은 기어코 한 사람을 살리고, 그 사람의 후손으로 하여금
송을 멸망시킨 몽골을 멸하게 했으니
과연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