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미래에 대한 슬픔을 담아 멍청했던 너에게 말하겠다.
다시 정렬되지 못할 미래에 관해 논하겠다.
죽어버릴 마지막 단추의 슬픔에 대해 논하겠다.
우리의 미래는 늘 어두운 밤이었다.
마지막 단추가 죽어도 너는 울지마라.
마지막 단추의 슬픔을 담아, 다시 너에게 고하겠다.
마지막 단추를 위해 울지마라.
네 뒤의 단추를 죽여라.
단추는 일렬로 서있다.
단추들이 구멍에 꿰여 일렬로 서있다.
멍청이 첫 단추는 구멍을 헷갈렸나보다.
단추는 제 2의 단추구멍에 들어갔다.
아아, 단추야, 너는 왜 거기 들어갔니.
제 2의 단추는 그 뒤의 단추구멍에 들어간다.
제 3의 단추는 또 그 뒤를 따라간다.
제 4의 단추는 또 그 뒤를 따라간다.
제 5의 단추는 또 그 뒤를 따라간다.
제 6의 단추는 또 그 뒤를 따라간다.
제 7의 단추는 또 그 뒤를 따라간다.
제 8의 단추는 또 그 뒤를 따라간다.
제 9의 단추는 또 그 뒤를 따라간다.
제 10의 단추는?
그래, 그렇게 만들어지는건 불규칙과 되돌릴 수 없는 미래다.
첫번째 단추의 멍청함 때문일까, 매정하지 못한 미련함 때문일까.
첫번째 단추는 멍청했다.
제 2의 단추구멍에 그 머리를 집어 넣은것이 그랬다.
첫번째 단추는 미련했다.
자신의 뒤의 단추를 밀어내지 못한것이 그랬다.
멍청한 것은 죄가 아니나 미련한 것은 죄였다.
멍청하게도 바보같은 행동을 했다면 적어도 미련하진 말아야한다, 미숙하진 말아야 한다.
냉정하게 제 2의 단추를 놔두고 제 3의 단추부터 끼워넣는 것이 옳다.
멍청한 제 1의 단추는 불쌍한 제 2의 단추를 위해 그 비루한 악어의 눈물을 흘려버리고 말았다.
마지막 단추가 죽는것에 슬퍼하지 마라 첫 단추야.
제발 제 2의 단추를 죽여줘.
제 10의 단추의 슬플 미래를 위해.
정렬되지 못할 내 미래를 위해.
라인전에서 솔로킬을 실패했음.
시도를 했으나 멍청함때문에 실패했음.
그 뒤가 너무 힘든거야. 계속 날 때리고, 나는 쳐맞고, 따이고.
화가 너무 나서, 그 모든것에 환멸이 나서 게임을 막했음.
그렇게 3데스쯤 기록했을때 나는 뭐에 화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음.
나에게 화를 내야하는건 맞는데 첫 솔로킬의 실패의 원인인 멍청함에 화를 내야하는가 아니면 그 뒤의 인정하지 못하는 미련함에 화를 내야하는가.
앞으로 꿰어질 단추들은 많은데 나는 왜 그 단추들의 슬픔은 모르는채로 첫 단추의 슬픔만을 생각하고 있을까.
두번째 단추인 나는 왜 첫 단추의 멍청함과 억울함만 곱씹으며 뒤의 단추들의 슬픔을 보듬어주려하지 않을까.
멍청함에 첫 단추를 잘못꿰도 상관없다.
하지만 미숙함에 두번째 단추를 꿰어버리는 실수를 하면 그대로 끝이다.
내 인생은 지금 10개의 단추라 하면 2개의 단추쯤에 와있는데 지금 제 2의 단추인 나는 나머지 단추들을 위해 지금의 나를 죽이겠습니다.

개옵붕들이 내 얘기를 얼마나 이해해줄지는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읽어준 개옵붕은 분명 착하고 나와 비슷한 일을 겪었거나 시를 좋아하는 옵붕이겠지.
탈론하다가 인생을 배운다.

이새기 해보면 희노애락 다 느낄 수 있긴 한데 희 5% 노 80% 애 1% 락 14% 임.
애매한 것이 현대미술로, 아름다움으로서 칭송받는 것을 보면.. 3데스 탈론과 인생 또한 그러한 각자의 모습이 있기에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거야 솔직히 처음부터 깔끔한 12/0/20보다는 점차 성장한 12/3/20이 더 멋있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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