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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검투사들의 라인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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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탑'이라는 단어는 인터넷 등지에서 '고독함', '상남자'를 대체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리그 오브 레전드>의 포지션 중 하나인 '탑'이 가진 특수성 때문이죠. 탑 라인은 초중반 중요한 오브젝트인 '드래곤'과 멀리 동떨어진 라인입니다. 1차 타워와 2차 타워 간 사이도 넓으며, 혼자 라인을 서기 때문에 갱킹에 항상 노출되어 있죠. 게다가 한 번 차이가 발생하면 격차를 좁히기가 힘들어서 자연스럽게 탑 라이너에게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덕목은 1:1 라인전 능력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갱킹에 가장 취약하다는 특수성 때문에 탑 라인은 '정글러'의 개입이 무엇보다 중요한 라인입니다. 상대 정글러가 작정하고 탑 라인만 노린다면 제아무리 1:1 라인전을 잘하는 플레이어라도 말릴 수밖에 없죠. 덕분에 정글러와 탑 라이너는 최고의 파트너이면서도, 최악의 원수이기도 합니다. 말 그대로 견원지간이라고 할 수 있죠. 게다가 이런 모습은 <리그 오브 레전드>초창기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고독한 남자들의 라인, <리그 오브 레전드> 속 탑 라인 변천사를 알아보았습니다. /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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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 최강의 OP '쉔'과 브루저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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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 <리그 오브 레전드>의 스크린샷


<리그 오브 레전드>의 포지션을 확립시킨 'EU 스타일'이 등장하기 전에도 탑 라인의 모습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효율적인 미니언과 경험치 분배를 위해 플레이어 한 명은 꼭 정글에 가야 하고, 한 명은 혼자 라인에 서야 하는데 바텀 쪽에는 드래곤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탑 라이너는 혼자가 되었으니까요.

이런 경향은 EU 스타일이 정립된 이후에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혼자 라인을 서야 하는 만큼 1:1교전 능력이 강하거나, 성장하면 팀의 든든한 전위를 맡을 수 있는 브루저나 탱커 챔피언이 주로 탑 라인을 담당했죠. 서포터와 정글러에게 탱킹을 맡기기에는 성장력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원거리 딜러나 미드 라이너에게 탱커 포지션을 맡길 수는 없었으니까요.

특히 이 시절 랭크 게임 밴픽률 1위를 고수하며 누구나 인정하는 OP 챔피언이 있었는데요. 바로 '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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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이크 전 쉔


당시 쉔의 위상은 엄청났습니다. 패시브인 '기의 일격' 덕분에 체력 아이템만 갖춰도 무시무시한 딜링 능력을 갖출 수 있었고, Q 스킬 '날카로운 검의 체력 회복 덕분에 라인 유지력도 강했죠. 그림자 돌진의 도발 범위도 지금보다 훨씬 넓었습니다. 특히 궁극기인 '단결된 의지'는 자신에게도 보호막을 씌울 수 있었죠.

아직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던 <리그 오브 레전드> 초창기에는 전략전술이 부족했고, 혼자서 스플릿 푸시를 하다가도 궁극기를 통해 위험에 처한 아군을 보호하고 적군을 처단하는 쉔은 "막기가 너무나 힘들다"라는 평가를 받으며 항상 랭크 게임에서 밴을 당했습니다. 예전 랭크 게임은 1픽이 혼자 세 개의 챔피언을 밴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실수로 쉔을 상대팀에게 넘겨주는 순간 팀원의 따끔한 질책이 이어지곤 했죠.

image 이 두 스킬 덕분에 쉔은 라인전도 나쁘지 않으며, 체력 아이템만 둘러도 딜링이 나오는 '만능 챔피언'이었다


이런 경향은 초창기 롤챔스에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최초의 롤챔스인 '아주부 챔피언스 스프링 2012'에서 쉔은 152번이나 밴을 당했고, 5번 선택되어 4승 1패를 기록했습니다. 이후 스프링 시즌과 윈터 시즌까지 쉔은 항상 밴 리스트에 얼굴을 꾸준히 비췄습니다.

그리고 쉔을 제외하면 당시에는 정말 다양한 챔피언들이 탑에서 활약했습니다. 지금은 정글러로만 나오는 '자르반 4세'나 '리 신', '올라프'도 탑 라이너로 자주 사용되곤 했죠. 특히 리메이크 전 이렐리아와 잭스는 누구나 인정하는 숙명의 라이벌이었습니다. 당시 커뮤니티에서도 이렐리아가 더 강하냐, 잭스가 더 강하냐로 열띤 토론을 벌이곤 했었죠.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에는 '텔레포트'가 잘 선택되지 않는 소환사 주문이었습니다. 프로 선수들도 '점화'를 선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죠. 덕분에 솔로 킬도 빈번하게 발생하곤 했는데, 당시 롤챔스에 있었던 제도인 '블라인드 픽' 덕분에 프로 경기에서도 같은 챔피언이 서로 물러서지 않고 혈투를 펼치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었죠. 특히 '막눈' 윤하윤과 '건웅' 장건웅 선수의 올라프 미러 매치는 지금도 손꼽히는 명장면입니다.


동일한 챔피언, 동일한 스펠을 들고 라인전을 펼친 건웅과 막눈 (출처 : OGN)


# '쉬바나-레넥톤'을 위시한 체력 메타

쉬바나와 레넥톤의 구 일러스트


'또바나-노잼톤'. 리그 오브 레전드를 사랑하시는 소환사 여러분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단어일 겁니다.

시즌 2 이후 2013년부터는 체력이 높은 탱커 챔피언들이 탑 라인을 지배했습니다. 워모그와 하위 아이템인 거인의 허리띠의 효율이 너무나 높았기 때문이죠. 게다가 당시에는 탑 라인과 봇 라인을 바꾸는 '라인 스왑'메타가 유행하고 있었죠. 자연스레 탑 챔피언은 2:1을 버틸 수 있고, 1:1라인전도 나쁘지 않으며, 골드 수급이 부족해도 탱킹력이 보장되는 챔피언이 주류를 이뤘습니다.

덕분에 레넥톤과 쉬바나가 탑 라인의 절대강자가 되었죠. '문도 박사'도 '오염된 대형 식칼', 속칭 '오대식'을 통해 2:1 라인전에서도 미니언을 파밍할 수 있다는 점이 발견되어 사랑받았습니다. 하지만 세 챔피언은 무난한 라인전 능력과 탱킹력을 가진 대신, 라인전에서 상대를 솔로 킬할 힘까진 없었기에 탑 라인은 피 튀기는 혈전을 벌이는 장소에서, 서로 방치된 채 지루한 파밍을 반복하는 장소가 되었죠. 사람들은 이런 양상을 보고 '또바나-노잼톤'라는 별명을 붙여 이를 비판했지만, 이들을 제외한 탑 라이너는 사용하기가 너무나 까다로워서 탱커 챔피언의 강점기는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 다시 찾아온 브루저와 '탑 캐리'의 시대

결국 워모그와 정령의 형상 등 탱킹 아이템이 너프되고, 탱커 챔피언들도 대거 너프되면서 '레넥톤-쉬바나'의 강점기는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빈자리를 리메이크된 '피오라'나 '다리우스', '럼블' 같은 챔피언들이 치고 들어오면서 다시 브루저 챔피언들이 탑 라인에 등장하기 시작했죠. 특히 이 시기는 탑 라이너가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었던 시기기도 합니다. 바로 '순간이동 메타'가 도래했기 때문이죠.

2014년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탑 라이너가 점화를 선택했지만, 3월 20일에 순간이동이 아군 포탑에 사용될 경우에는 쿨타임이 100초 감소하는 버프를 받으며 '순간이동 메타'가 탑 라인에 찾아오게 됩니다. 이제는 탑 라이너들이 라인 스왑에 고통받는 상태로 방치되거나, 그들만의 라인전을 펼치는 대신 필요한 순간에는 순간이동을 통해 아군에게 합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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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프된 텔레포트 (출처 : 라이엇 게임즈)


이 시기의 대표적인 탑 라이너를 뽑으라면 '마린' 장경환 선수를 뽑을 수 있습니다. 마린은 한때 전 세계를 호령하며, 전성기 SKT를 이끈 최강의 탑 라이너로 평가받는 선수죠.

데뷔 초기만 하더라도 마린은 돋보이지 않는 선수였습니다. 당시 마린은 솔로 랭크 1위를 달성해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솔랭전사다운 강력한 라인전 능력이 팀 게임에서는 발휘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챔피언 폭도 좁았습니다. 특히 쉬바나를 잘 다루지 못한다는 것이 치명적이었죠. 하지만 2014년에 찾아온 '순간이동'메타에 대한 완벽한 적응과 솔랭에서 보여주곤 했던 특유의 오더 능력이 SKT와 조화를 이루면서 마린의 실력은 일취월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마린의 최전성기는 2015년이었습니다. 롤드컵 MVP 플레이어로 선정될 정도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탑 라인 메타를 주도해 나갔죠. '피오라'를 선택해 라인전부터 상대를 찍어누르기도 하며, '나르'나 '럼블'을 선택해 유연하게 상대방의 갱킹을 회피하며 텔레포트를 통한 운영으로 어느새인가 상대방과의 격차를 벌리곤 했습니다. 특히 '미드 상륙 작전' 같은 명장면을 보면 마린이 텔레포트를 통한 운영에 얼마나 능했는지 알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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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롤드컵 MVP로 선정된 마린 (출처 : 라이엇 게임즈)


그리고 마린 선수의 라이벌이라면 당시 '쿠 타이거즈'에서 활동하던 '스맵' 송경호 선수가 있었죠. 스맵 선수도 '피오라', '리븐', '다리우스'등 브루저 챔피언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탑 캐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줬던 선수입니다. 리븐을 픽해 롤챔스 최초로 탑 라이너 펜타킬을 달성하기도 했으며, 2016년 롤드컵에서는 케넨으로 혼자 G2의 모든 챔피언을 지워내는 명장면을 보여주기도 했죠.


리븐으로 롤챔스 최초 탑 라이너 펜타킬을 달성한 스맵 (출처 : OGN)


● 국밥챔과 칼챔이 양분한 현재

이후 패치에 따라 탱커 챔피언이 급부상하다가, 다시 브루저 챔피언이 다시 등장해 탑 라인을 휘어잡기도 하는 등 메타는 패치에 따라 돌고 돌았습니다.

지금은 다시 다양한 챔피언들이 맞서고 있는데요, '원소 드래곤'과 '공허의 전령'덕분에 탑 라이너의 라인전 능력과 텔레포트를 통한 타 라인 개입이 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상대방과의 라인전에서 우위를 점하고, 우위를 바탕으로 다른 라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칼챔'이 대세로 떠올랐죠. 하지만 칼챔은 라인전에서 상대를 압도하지 못하면 활약하기가 매우 힘들어집니다. 그렇기에 국밥처럼 든든한 탱킹을 보장하는 '국밥형' 챔피언도 다시 인기를 끌고 있죠.

이런 경향은 '2020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을 보면 잘 드러납니다. 월드 챔피언십 직전 서머 시즌만 하더라도 많은 리그에선 '칼챔'을 주로 기용하며 상대방 탑 라이너와 격차를 벌리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월드 챔피언십에서는 탱커 챔피언들이 상향을 받으면서 '오른', '사이온'과 같은 챔피언들이 사랑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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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 챔피언의 대표 '오른'과 칼챔의 대표 '제이스'


● 오늘도 "탑 캐리"를 당당히 외칠 수 있는 하루가 되길!

이런 탑 라인의 역사를 살펴보면 '고독한 라인'이라는 이미지가 괜히 생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1:1 라인전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고립된 라인인 만큼 '탑 캐리'도 쉬운 일은 아니다 보니 게임 승패보다는 상대방과의 라인전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탑 라이너의 이미지가 되었죠.

하지만 바텀이 무너지고, 아군 정글러는 상대방 정글러에 쫓겨 오도 가도 못하며, 미드 라이너도 밀려오는 라인을 겨우겨우 받아먹기만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잘 성장한 탑 라이너가 내려와 한타를 캐리하는 모습만큼 멋진 것은 없죠. 모두가 잊고 있을 때, 모두가 포기했을 때 탑에서 내려와 팀을 이끄는 모습은 마치 영화 속 슈퍼히어로와 같으니까요.

그러니 탑 라이너 여러분! 모쪼록 오늘도 여러분이 주도하는 '상체 게임'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탑 캐리'가 힘들다고 하더라도,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것만큼 멋진 일은 없으니까요!

3줄 요약

01. 그러니까

02. 정글러님

03. 3렙 탑갱...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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