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컥, 그웬 공방의 문이 열렸다. 그웬은 깜작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빛이 안으로 들어오는 구조라 그웬은 누가 문을 열었는지 분간 할수 없었다. “누…누구세요…?” “하하! 장난 좀 쳐봤어.” 루시안이 호쾌한 목소리로 웃었다. 그웬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갑자기 자신에게 장난친 게 화났는지 루시안에게 큰소리치기 시작했다. “루시안! 천천히 문을 열어야 할 거 아니야! 그리고 아직 네 옷 수선이 다 안 됐다고! 3일 뒤에 오라고 한 말을 잊은 거야!” 그웬은 말을 끝마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조잘조잘 계속 소리치는 그웬을 루시안은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그웬의 손을 보게 됐다. “흠? 뭐지 그웬 그 손가락 사이에 낀 실은?” “어? 아, 마 맞다.” 그웬은 휙하고 뒤를 돌아버렸다. “뭐지? 뭐가 부끄럽기라도 한가?” 루시안은 그웬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웬은 더욱 어깨를 웅크리며 손을 보이려 하지 않았다. “흐음…그렇게 보여주기 싫다 이 말인가.” 루시안은 뒤돌아 턱을 이루어 만졌다. 그러면서 장난스러운 표정을 그웬이 보지 못하게 지었다. 루시안은 다시금 그웬에게 바짝 달라붙었다. 그리고 그웬이 어깨를 웅크리면서까지 숨기던 손가락을 보았다. “응? 이건…실뜨기?” 루시안의 말에 그웬은 포기하듯 한숨 쉬었다. “이런 건…어린애들이나 하는 거지…?” “뭘 말을 그렇게 해? 나도 어릴 때 했던 건데. 추억 돋기만 하는구먼.” “그럼 어린애들이나 하는 거잖아!” 루시안은 쿡 하고 웃었다. “그나저나 그웬 실뜨기는 누가 가르쳐 준 거야?” “…애쉬가….” “애쉬라면…그 프렐요드 여왕?” “맞아….” “흠…프렐요드 여왕이 뭐 하러 이런 후진 곳까지 왔을까.” “야!” 루시안은 다시 쿡 웃었다. 전에 와서 골탕먹었던 걸 돌려주려는 듯 루시안은 계속 쿡쿡 웃기만 했다. “어쨌든. 그 여왕님이 스웨터 짜는 법을 가르쳐 달라 길에 준것 뿐이야. 근데 가르쳐 주시다가 갑자기 어릴적 기억이 난다면서 실뜨기를 가르쳐 주더라.” 루시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그럼 너 이야기를 두 개 받은 거잖아.” “아…그러네…. 나중에 보답을 해야겠….” “무슨 보답?” 루시안의 말에 그웬은 말문이 막혔다. 루시안은 멍한 그웬을 보다 크게 웃었다. 그웬은 자신이 놀림감이 된 게 부끄러운지 뺨을 붉히면서도 이를 악물고 있었다. “아아! 그만!” 루시안은 웃다 나오게 된 눈망울을 손가락으로 슬며 말했다. “아…그래 알았어. 흠 근데 왜 실뜨기를 혼자 하고 있던 거야?” “아니…그냥 다음에 어떻게 하는지 안 떠올라서…. 아니, 그러면 넌 왜 갑자기 찾아온 건데!” 그웬은 바짝 열이 올랐는지 루시안에게 큰소리쳤다. “아, 맞다. 실 이야기 해주러 왔었지.” “실? 내가 줬던 거?” “그래. 그 실 말이야. 내 유물총을 찾아주긴 했지.” “그래서?” “흠. 궁금한가 봐? 난 아직 받을 게 없는데?” “윽…그런 게 어디 있어. 그냥 알려줘!” 루시안은 입꼬리가 올라갔다. “흠. 장사를 받기만 하고 주는 게 없으면 그게 장사는 아니지 않아? 이야기를 받으면 주는 게 있어야지.” 그웬은 한숨을 쉬곤 의자에 주저앉았다. 루시안은 그웬이 포기 한 줄 알고 있었다. “으음…좋아! 내가 네 아내한테 줄 스웨터 짜 줄게 어때?” “흠…그 정도면 뭐 나쁘지 않네. 좋아, 알려주지.” “진짜?” “그렇고 말고.” 루시안은 그웬 반대편 의자에 앉고는 주머니에서 말린 실 하나를 꺼냈다. “내가 아내하고 시간을 보낼지 아니면 실을 이용해 총을 찾을지 고민했거든.” 루시안은 손에 있던 실 말이를 두손가락으로 잡고는 그웬의 눈높이로 보여주었다. “처음엔 아무런 생각 없이 실 말이를 이렇게.” 하고 루시안은 실을 손가락에 감았다. “감고는 실이 선 방향으로 따라갔거든. 그때가 내가 우리 집 근처였지. 그런데 웬걸, 실이 우리 집 밭으로 향하더군.” 루시안은 손가락에 끼웠던 실을 다시 말곤 주머니에 넣었다. “우리 아내가 작은 밭을 하거든. 음. 정확히는 그냥 막당을 밭으로 갈아놓은 거에 불과한데. 어쨌든. 나는 그 밭으로 향했어.” “응!” 하며 그웬은 신이 난 듯 눈동자가 빛났다. “알고 보니 실이 향한 방향대로 밭에 내 유물총이 있더군.” “끝이야…?” 루시안은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그웬은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겨우 벌써 그리고 이게 끝이라는 생각에 그웬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진짜 끝이야…?!” 그웬이 재차 묻자 그제서야 루시안은 웃으면서 말했다. “실 이야기는 끝이지만, 더 할 이야기가 있어.” 그웬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장난치는 루시안에게 큰소리쳤다. “그만 놀리라고!” “하하. 알았어. 그날에 아내랑 시간을 갖게 됐지. 우연이 내가 밭에 있던 걸 보게 된 아내가 갑자기 나랑 밭 가꾸고 싶은 거냐고 물은 거야. 난 더 할 말이 없었지. 하기 싫다고도 하고 싶다고도 할 수 없었어. 선택은 내가 아니라 내 아내한테 있었지. 결국 세나는 나랑 같이 밭일하자고 하더군.” 루시안은 그 상황이 떠올랐는지 한숨을 쉬었다. “진퇴양난이었지. 결국엔 난 세나랑 같이 밭일을 해야 했어. 근데 같이하다 보니 꽤 재밌더군. 아내가 손가락으로 내 얼굴에 흙을 묻히면서 장난을 쳤지.” 루시안은 미소를 지었다. “난 괜스레 미소를 지었어. 발랄하게 장난치는 아내 모습이 귀엽더군. 나중엔 밭에 열려있던 복숭아도 따 먹을 수 있었지. 아내 말로는 나한테 주려고 심었다더군. 복숭아는 달콤했어. 아내랑 함께한 시간 같았지….” 그웬은 무언가를 이루어냈다는 듯 흡족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끝이야. 됐지?” “좋아. 충분히 좋은 이야기인데? 너한테 실 주길 잘했네.” 루시안은 싱긋 웃었다. 그웬의 말이 맞았던 것 같다. 실덕에 우연이 아내랑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 어쩌다 보니 둘 중 하나만을 고르려던 선택이 둘 다 행해져 버렸다. 루시안은 진지한 표정을 짓고는 그웬에게 말했다. “그웬. 난 사실 네가 처음 그웬 공방을 한다는 말에 사실 한숨이 나왔어. 너도 이제 인간인데, 너무 초라한 걸 하는 게 아닌가. 심지어 받는 게 돈이 아니라 이야기라는 사실에 더욱 한숨이 나왔지.” 루시안은 숨을 골랐다. “근데, 지금 보니까. 넌 나보다 더 가치 있는 일 하고 있는 것 같군.” 그웬은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별말씀을!” “좋아. 쾌활하니 보기 좋군. 나중에 또 올게. 아, 맞다 내일 와야 하는군.” “내일 또 이야기해줄 거지?” “글쎄다?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면 말이야.” 루시안은 천천히 그웬 공방을 나왔다. 덜컥거리는 문을 미끄러지듯 밀어 닫았다. 집으로 가는 길에 무슨 이야기가 또 펼쳐질까 루시안은 내심 기대했다. 그웬 공방의 가는 이유는 옷의 수선만은 아니란걸 루시안은 깨달았다. 그웬 공방은 옷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인생의 활력도 수선해주었다. 운명이든 우연이든 그웬은 그렇게 해주었다. 여전히 눈이 땅을 덮고 있었다. 오늘은 그때와 다르게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마치 깃털처럼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수만은 결정이 안착하여 만들어진 눈더미 위에 루시안은 발을 포갰다.